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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Aug 06. 2024

무대일가 11

제2부 

1    


           


  동섭은 물을 길러 왔다가 두 노파가 우물을 막고 있는 바람에 몇 분 동안 부근 논들의 수원지인 자그마한 방죽으로 눈길을 준다. 방죽 아래로 층계층계 내려가며 배열된 계단식 논들은 모두 그것을 젖줄로 삼고 있다. 방죽 너머로 보이는 막앞산(지명)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을 공동소유의 산이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은 구영 마을 김씨 선산이다. 제각집 아래로는 신작로가 있고 덕산까지 이어진 들판 가운데는 월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이 진장과 밧지내기(지명)를 지나는 동안 더욱 강대해져 마을을 지나고 있다. 


  잡담을 끝낸 노파들이 일어서자, 동섭은 물을 푸기 위해 돌계단을 내려간다. 그는 사각형 콘크리트 우물에 양동이를 살짝 집어넣는다. 물이 양동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꿀꿀거리는 소리를 낸다. 안에 물이 가득 고이자, 그는 가뿐하게 양동이를 들어올려 계단처럼 만들어진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순간 수조 안의 물이 출렁거리고 우물 벽에 매달려 있던 푸른 이끼들이 춤을 춘다. 그는 곁에 담배를 한 대 물고 쪼그려 앉는다. 조금 전 두 노파가 오래도록 우물에 앉아 있었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머쓱한 기분에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허물어져 있는 집터와 앵두나무를 본다. 


  길 아래 푹 내려앉은 지반의 초가집에 살았던 사람은 말상의 남자와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였다. 남자가 처갓집에 찾아가 집의 기둥에 머리를 쿡쿡 찧거나 술에 취해 마당에서 비틀거리다가 버르적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가 바란 것은 돈이 있는 장인이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장인은 내내 그러기를 주저했다. 사위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면 논이나 밭을 팔아야 했다. 사실 농부의 전답은 가족들에게 삶에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집을 사주고 난 후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를 들어주면 그 다음에도 들어 주어야 하고, 또 그 다음에도 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두려웠으리라. 


  장인은 주로 토방 위에서나 아니면 방안에서 얼굴이 길고 키가 장대처럼 큰 맏사위의 행패를 목격했다. 그러다가 딸 가진 사람이 죄지, 하면서 사위를 달래 쌀가마를 지워서 돌려보냈다. 하지만 맏사위는 술만 취하면 처갓집에 찾아와 집타령이었다. 


  어느 날인가 말상의 남자는 처갓집에 대한 근거 없는 복수심으로 동네 처녀를 건드려 애를 가지게 했다. 그런 뒤 처갓집 사람들 눈이 있으면 보시오, 라고 외치며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를 작은방으로 내쫓고 처녀를 안방에 들어 앉혔다. 이에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여자는 두 아들과 딸을 낳은 정실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대꾸 한 마디 못하고 작은방으로 물러났다. 


  처녀에게서는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작은방에서 기거하며 큰방의 군불을 때고 두 사람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밤마다 벽을 통해 들려오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짐승처럼 소리 없이 울었고, 조금도 사랑할 수 없는 갓난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말상 남자의 턱에 여드름처럼 돋기 시작한 뾰루지가 잠시도 멈출 줄 모르고 성장하더니 이윽고 지붕 위에 매달린 조롱박과 같은 크기의 혹이 되었다. 이후 말상의 남자는 ‘혹쟁이’ 라고 불리게 되었다. 혹, 바로 이 혹을 보며 팔 하나를 쓰지 못하는 여자는 얼마나 쾌감을 느꼈을까. 필시 하늘의 천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이것 때문에 말상의 남자가 죽게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혹쟁이가 죽고 나자, 처녀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친정에 와서 살다시피 했고, 아이들도 외갓집을 자신들의 집으로 알고 성장했다. 그런데 작은아들, 꼭 아버지를 닮은 자식은 자라면서 말상 남자의 모습과 행동을 그대로 닮아갔다. 이것이 늘 여자를 불안케 하는 원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둘째아들은 열일곱 여덟이 되면서부터 동네 청년들과 술을 퍼마시고 돌아다녔고 툭 하면 싸움질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팔다리가 찢겨지거나 부러져 들어왔다. 이런 아들을 보다못한 여자가 아들을 진정시킬 의도로 원불교 부속 중학교에 입학을 시킨 일이 있다. 하지만 새로 산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 아들은 갈기갈기 찢긴 교복에 피를 묻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외쳤다.  


  “이 오살을 헐 놈아, 이 혹쟁이 도승아!” 


  이렇게 외치던 그녀는 자식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그런 씨를 뿌린 혹쟁이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자가 대를 물려가며 악물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불시에 들었을 것이다. 아들은 이 욕을 그 자리에 서서 듣고 있지 않았다. 집안의 장독을 부수고 그릇을 집어던졌다.  


  “왜 내게 혹쟁이의 도승이라는 말을 해!” 


  그것을 보며 여자는 그래도 그 말은 듣기 싫은가 보다 생각했다. 


  몇 년 뒤였다.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에게 뜻하지 않은 행복이 찾아왔다. 얼굴이 얽은 큰며느리를 보아 내내 마음이 개운치 않았는데 바로 그 며느리가 그녀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아오셨을까, 그러고도 두 아들과 딸을 키우셨다니, 정말!” 


  그 즈음 며느리가 한번씩 무심코 내뱉던 말들이었다.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는 행복에 불안해하면서도 내내 그런 시간이 지속되기를 소원했다. 얼마 동안은 그녀의 바람 대로였다. 큰아들이 운수회사에 다니며 짐을 나르는 동안 며느리는 억척스럽게 보험 일을 해 나갔다. 그리고 주말이면 꼭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갓난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며느리는 작은아들에게 취직도 시켜주었다. 그것도 시시한 회사가 아니고 전문대학을 나온 자들이나 들어가는 그런 국영회사였다. 그러면서 큰아들 내외는 동네의 큰집을 사서 한 팔을 쓰지 못하는 여자와 동생들이 살도록 해 주었다.  


 그런데 그 구조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사를 잘못한 것일까. 아들 내외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랐고, 그와 더불어 며느리의 극진한 봉양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기대했던 여자는 놀라운 사건을 전해 들었고, 그 때까지 며느리로부터 받은 환대는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을 잠시 빌려온 것임을 깨달았다. 놀라운 사건이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녀가 믿고 의지하려던 큰며느리가 보험을 하던 중 알게 된 중늙은이와 함께 달아나 버린 사건이었다. 그 후 그녀는 잠깐동안이지만 작은며느리에게서 큰며느리 모습을 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아들 결혼식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기대를 한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와 함께 고아처럼 자란 둘째며느리는 본인이 곧잘 하는 말처럼, 제 살기에도 바쁜 여자였다. 


  환상에서 깨어나자, 동섭은 평평한 계단 위에 두었던 한 점 파문이 일지 않은 양동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위의 것은 평생 부모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야 하는, 한 팔을 쓰지 못하는 부엉댁의 불행한 일대기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구박을 받기도 하고 환대를 받기도 하며 살아왔다.  


  동섭은 처갓집으로 돌아왔다. 고랑에 사는 서지영이 마당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마을의 어느 농부보다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대영면 일대의 독자들에게 신문을 배달해주는 것이 서지영의 직업이다. 서지영은 전주댁의 아재뻘이 되는 사람으로 동섭의 처갓집 일에 주제 넘는 관여를 해왔다.  


  “신문을 돌리러 가지 않소?”  


  “오늘은 신문이 없는 날이요.” 


  그는 신문을 구독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희멀건 얼굴에 난 짙은 수염 때문에 작은 체구의 서지영은 야성적으로 보인다. 그는 이 사람에 눌려 여태까지 처갓집 일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처갓집 일에 관여해서 재산이라도 챙기려 든다는 말을 동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결코 아니었다. 


  마당에 펴놓은 멍석과 마루 위, 방안에서 열 두서너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동섭의 장인이 살아 있을 때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다. 하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노파와, 순진하지만 약간 굼떠 보이는 양자가 사는 집에 동네 사람들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로 대성이었다. 이곳 저 곳으로 뛰어 다니며 심부름도 하고 급하면 상도 날라다주고 있다. 건달 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대성은 얼마 전에 얻은 국영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밥을 먹고 휭하니 나가버리든지 전날 마신 술을 깨지 못해 이런 날 오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이혼한 유성이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자주 내려오지 못하게 된 것도 한 이유다. 이후 대성은 처와 함께 자청하여 외갓집 일을 거들고 있다. 외갓집 은혜를 갚는다고 입으로 말하며. 문득 동섭에게 이혼하는 마당에 만나게 된 형수에게 지껄였다는 대성의 말이 떠올랐다. 전주댁에게 들은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고 모질 수가 있을지 이해가 안 가. 마지막 한 푼까지 더 받아 내려고 형사가 죄인 취조하듯 하는데 옆에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여.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놈은 그렇게 하면 안 돼. 왜냐먼 그 놈은 보험을 했기 땜시 발 넓은 즈이 성수가 아니었으먼,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 좋은 회사에 못들어가제. 즈이 성수나 된께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대리시험 쳐 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제.’  


  그런데 동서(강종문)이 보이지 않는다. 동섭은 장수댁과 삼형제는 보았지만 동서를 본 기억은 없었다. 사람이 좀 신실하고 진득한 데가 없이. 휘둘러보다가 동섭은 식사를 하기 위해 멍석으로 가서 앉았다. 


  식사를 마치자 동섭은 대성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집을 나선다. 집 입구를 나서려고 하자, 길 위로 대나무 이파리가 뻗어져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이파리를 당겨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그만둔다. 함석지붕이 얹힌 공동우물이 나온다. 물을 길러 온 사람들 대신 빨래를 하는 아낙들이 앉아 있다. 그곳을 지나치자, 마을에서 유일하게 소 2마리를 키우는 세동이네 집이 나온다. 그는 아직 한 마리의 소도 없다.    그 다음 처갓집 소유의 ‘점뚱’이 보인다. 그 곳에는 아름드리 호두나무 수십 그루가 자라고 있다. 올 가을에도 그는 호두를 따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매년 몇십 가마니의 호두를 생산해 내는 아름드리 나무를 보자, 동섭은 태어난 후 과수를 한 그루도 심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죽기 전에 아무 것도 남길 게 없군.  


  민자라 불리는 약간 모자라는 여자아이가 사는 집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은 돌을 얼기설기 얽어 놓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보기 힘든 담이다. 다들 돌과 돌 사이에 자갈을 넣거나 진흙을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담 꼭대기에 기왓장을 입혀 담을 세우고 있다. 그 곳을 지나자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서 있는 한 채의 슬레이트집이 나타난다. 몇 해 전 부엉댁이 이사해 사는 집이다.  


  계단을 거의 다 올랐을 무렵 동섭은 갑자기 배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많이 먹었나?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은 영수가 돼지 뒷발톱처럼 틀어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마신 막걸리 때문이다. 그러면서 복부가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노동으로 인해 굵어진 손가락, 햇빛과 비와 바람으로 인해 수십 년 간 단련된 몸이 쉽게 고장날 리 없어!  


  마루에는 창수와 경수, 재문이와 재선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길을 줄 여력이 없었다. 그는 황급히 변소 앞까지 뛰어가 일곱 단으로 된 나무 사다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변소 안으로 들어가 쪽문을 닫는다. 이 화장실은 도회지 사람들이 일명 ‘이층변소’ 라고 부르는 것이다. 동섭의 집 화장실도 이와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아래층에 돼지가 살고 그 위에서 사람이 볼일을 본다. 돼지는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꿀꿀거리며 반가운 인사를 하고, 그 위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은 돼지의 거동을 주시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볼 일을 봐야한다.  


  문득 동섭에게 이 곳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대성이 처가 떠올랐다. 아이를 낳기 위해 시댁으로 와있던 대성이 처가 볼 일을 본다는 것이 그만 아이가 쑥 나와버렸다고 했다. 여자가 애를 낳을 때면 조심을 해야지. 그러다가 애가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했어 봐, 누군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순간 전주댁에게 생각이 옮아갔다. 전주댁은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들에서 힘들게 일했다. 그러다가 잠시 집으로 들어간다고 한 후 10시간이 넘게 걸려서 아이들을 낳았다. 그런 전주댁에게 그는 미역국을 끓여준 적도 산후조리를 해준 적도 없다. 어머니에게 맡기거나 앞집 아주머니에게 모든 과정을 다 맡긴 채, 그런 일에 남자는 참견을 하지 않는 것인 줄 알고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가 출산의 고통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후 전주댁을 통해서였다.  


  ‘그 때는 삼칠일이라고 쉬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 애 낳고 제 손으로 탯줄 자르고 물 끓여다가 핏덩이를 씻긴 사람들도 많았제. 그러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여? 애 낳고 몸조리를 못해서 애 하나 낳고 나면 폭삭 늙고, 애 하나 나면 폭삭 늙는 거제…… 이모가 그런디, 대성이 처도 우리 시어머니처럼, 한 마디 누가 뭐라고 허먼 숨이 꼴딱 넘어감서 뒤로 자빠지는디 아주 가관이드래. 입으로 허연 게거품을 내뿜고 꼭 간질 있는 사람 같이 사지를 떨고 발광을 해서 사람들이 팔 다리를 주무른다,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는구만.’ 


  그 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인 듯했다. 전주댁이 간혹 사람들의 말을 별다른 생각 없이 그대로 옮기는 바람에 잘못 알게 된 적도 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큰 일이었다. 파평 윤씨도 이런 증상이 있다. 아직까지 이런 경련을 일으킨 적은 없지만 나도 이 소질을 물려받은 건 아닐까. 그리고 자식에게 물려준 건 아닐까. 그는 불안해졌다. 안면이 마비되고 어쩌다 눈 아래 주름이 떨리는 건 뭘까. 그로서는 이 증상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일을 의논할 의사도 모르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곳도 없었다. 까짓 것,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는 불안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한껏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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