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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Jul 30. 2024

무대일가 10

            10     

  “논 서 마지기를 동규가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이 아이라, 나허고 느그 아부지가 상(床)장사를 해서 번 돈을 우리가 외한아씨헌테 질궈 달라고 맽기났었는디, 그 돈이 질고 질어서 그 돈으로 논을 산 걸 그 놈이, 동규 그 놈이 내 놓으라고 안 허냐. 내가 애초에 느그 아부지보고 다른 논은 사도 그 논은 사지 말자고 했거든. 그 논이 어떤 논이냐, 바로 느그 한아씨가 살림을 몽땅 팔아 가지고 대전으로 감서 다른 사람헌테 팔아 넨기고 간 논이여. 그래 나는 그 논은 죽어도 못 산다, 죽어도 안 헌다고 해도 저 우에 한아씨가 아가, 그래도 느그 시아부지가 부치던 논잉께 느그가 사는 것이 그래도 안 좋겠냐고 하도 달래서 어쩔 수 없이 샀드만 내가 오늘 날 이 말썽이 날지 알았제. 왜 말썽이 안 나겄냐? 허기사 그 때 그 장사라도 안 했으먼 논이 어디 있어, 우리한테. ”

  소리꾼의 입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창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물은 이 골 저 골의 개울을 따라 흐르다가 바위를 때리기도 하고 나뭇잎을 띄우기도, 벼랑을 만나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섭의 내면도 웃거나 울고 보이지 않게 얼쑤, 하고 외치며 추임새를 하고 있다. 전주댁의 창과 아니리가 시작될 때마다 무슨 새살이 그리 많아, 하고 퉁을 주었던 것은 사실 동섭의 본심이 아니었다.  

  “느그 아부지허고 같이 상 장사를 다니든 때 어쨌는지 아냐?” 

  동섭은 아내가 왜 또다시 ‘시절가’로 방향을 잡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어서 자리를 피하고 싶다. 누구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길을 가다가 어떤 짓을 했는지를 들을 때는 동섭도 기꺼이 청중이 되고 싶지만 그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집안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간다.

  “내가 참 고달펐니라. 집에서 먹는 거 맨키로 밥 한 숟구락 따땃이 묵을 수 있냐, 잠 한 번 제대로 뜨뜻한 구들막에 등 지짐서 잘 수가 있냐. 고생은 되지만, 그래도 그것이 돈이 된께…… 그 말라비틀어진 집구석이 뭐가 좋다고, 이깐 놈의 집을 못 잊어 가지고 들어오자고, 들어오자고 나헌테 온갖 까탈을 느그 아부지가 다 부리고…… 내가 뭐허러 이런 고생 허냐고 험서 집으로 가자고 조르는데, 못 당해서 내가 들어오고 말았제. 글고 큰 박바가지에다가 밥을 얻어 가지고 디밀어 주먼 이녁 입만 입인가 먹어 보라는 소리는 고사허고, 혼자 묵다가 배추 짐치 없다고 배치 짐치 얻어 오라고 시킨 남자가 바로 저 남자여! 이 집구석에 내가 뭘 볼 것이 있다고 시집을 와 가지고, 이날 이때꺼정 이고생을 허는지…… 내가 느그들만 아니었드라도 벌써 짐 싸 갖고 도시로 나가서 혼자 살았을 텐디…… 하기사 나야 지금이라도 도시 나가서 넘의 집 식모살이를 해도 열두 번을 더 허고, 식당에 가서 일을 허고 살아도 내 한 몸 어디 가서 못 살까. 저 놈의 남자가 뭘 볼 것이 있다고 이리 사는지. 넘들 겉이 따땄허게 말 한 마디를 헐지를 알아, 넘의 남자들 겉이 재구락시럽게 일을 잘 허기를 해, 넘의 속에 부예나 지르고. 그러고 나서 풀어줄지도 모르고. 언제는 이모네 큰딸이 우리 집에 한 번 와 보고는 놀래드라. 느그 아부지 겉이 밥상 잘 던지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안 허냐. 가도 지가 안 본 것을 봤다고 허지는 안 컸제. 원래 느그 한아씨가 상을 잘 던졌느니라. 그런께 느그 아부지도 그 본을 따서 그러는 것이제. 느그들일랑 절대 그런 본은 뜨지 마라. 글고 느그들은 성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야 헌다. 어쨌거나 우애 있게 지내야제, 느그 아부지 성제들 겉이 그렇게 지내서는 못쓴다……. 근디 느그 아부지는 느그 한아씨가 뭐라고 허먼 말대답 한번 헌 적이 없는 사람이여. 그렁께 동네 사람들이 아부지를 보고 느그 증조 한아씨가 새로 난 것 겉다고 안 허냐. 그런 느그 아부지를, 느그 한아씨나 할매, 삼촌들이 어디 사람 취급이나 헌지 아냐. 천하에 둘도 없는 벵신 정도로나 생각했제…….” 

  전주댁의 말에 약간의 과장이 섞였지만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동섭도 알고 있었다. 가슴이 울컥해진 그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사실 난 그런 인간이다. 내게 맞는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가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그곳이 있으면 가고 싶다. 여기는 내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전주댁의 입에서 늘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지나간 과거사를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기도 하고 전에 했던 것을 윤색해서 내놓는 수도 더러 있다. 전주댁의 말솜씨는 동섭의 장모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처가에 들를 때마다 장모도 동섭을 붙들고 온갖 사설들을 늘어놓았다. 전주댁의 입심은 집안 내력이었다. 

  문득 동섭은 영수를 떠올렸다. 영수는 한 번도 전주댁의 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던 것이 조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방을 쓰면서부터는 식사 때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큰방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동섭은 영수를 소재로 한 장모의 사설을 떠올렸다. 장사를 위해 아이들을 처가에 맡겨 두었을 때, 아직 어린 영수가 뚤방에서 창수를 업는다고 하다가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사건이었다. 

  “다리가 부러져 아가 우는디 어디 보일 데가 있어야제. 교회 전도사를 찾아갔드만 대나무로 부목을 대서 매주데. 근디 아가 낮에는 울도 않고 잘 놀드만 밤이 된께 울고 보채드라고. 그래서 하는 수 있는가.” 

  장모는 하는 수 없이 부목을 묶고 있던 끈을 조금 풀어주었다. 그러자 영수는 잠이 들었노라고 했다. 영수는 예수로 인한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착하고 평범하고 도드라진 데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한 몇 년 사이 가족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수는 남의 집에 기숙하는 남처럼 웃거나 우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과묵하고 음울했다.

  영수는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한 다음 해 남원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껏 동섭은 아이들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영수의 입학식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애들은 낳아 놓기만 하면 제가 알아서 큰다, 라는 말을 은연중 믿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입학하면서 영수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때까지 살았던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학업에 매진하는 듯이 보였다. 매달 집으로 날아오는 성적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섭은 좋아만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거역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학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죄를 짓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수는 무분별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지 의지력만 갖추면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돈을 타 내는 데도 막무가내였다. 그 때문에 전주댁은 매번 속을 끓였다. 

  불볕 같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영수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려왔다. 

  “병원에서 그러는데, 얼굴과 손발이 부어오르고 먹을 때마다 토해서 몸조리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대요. 간호해 줄 사람도 옆에 있어야 한 대요.”

  그것은 일종의 신경성 위장병에다가 영양실조까지 겹친 것으로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게다가 영수는 날 때부터 허약했다. 그런 영수가 지나치게 학업에 몰두했으니 병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후로 가족들은 영수가 매일 아침 거름자리에서 토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음식이든 먹는 족족 토하는 것이다. 전주댁은 영수에게 끼니때마다 죽을 먹게 하면서 일정량만 먹이는 식이요법을 썼다. 그리고 위장병을 앓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별별 민간요법을 다 동원했다. 특히 부기를 빼는 일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위장병에 있어서 부기는 병의 호전이나 악화를 잴 수 있는 척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영수의 병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 병은 오랜 시간 꾸준히 치료,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규칙적이고 영양 있는 식사를 섭취해야 호전되는 병이었다.

  영수가 집으로 돌아온 지 이 주일이 지났다. 

  들에 나갔다가 돌아온 직후 동섭은 우체부로부터 한 통의 등기 우편을 받았다. 전주댁은 하던 일을 마저 하고 돌아오겠다고 뒤에 쳐졌다. 전주댁은 본인의 말대로 근성이 있어서 한 번 일에 손을 대면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일했다. 도대체 몸을 돌보지 않았다. 

  등기 우편은 영수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발송한 것이었다. 동섭은 젊은 우체부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우체부가 대문간을 나서기도 전에 겉봉을 뜯었다. 그는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학부모에 대한 인사가 있고 그다음으로 영수의 무단결석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학부모님과 상의를 하고자 하오니 1980. **. **시까지 학생과 함께 출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끝부분에는 경고성의 말이 씌어 있었다. 지정된 날짜까지 학교에 출두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퇴학 처리가 되오니 꼭 학교로 나와 주시라는 것이다. 

  동섭은 몇 번이나 편지를 읽고 내용을 확인했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이상한 충동이 이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한곳으로 모인 충동이 끓기 시작할 즈음에 그는 고개를 돌려 혹시 어딘가에서 자신의 행동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편지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선반 위에 얹혀있던, 뚜껑이 없는 사각의 검은색 나무 상자를 내렸다. 그 안에는 가장 중요한 것들. 즉 집문서, 논문서, 밭문서,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석봉 친필 천자문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받은 등기 우편을 상자 맨 아래에 넣고 그 위로 문서와 서첩을 다시 포갰다. 그런 후 나무 상자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담배 봉지에서 가루를 집어내 얇은 종이에 놓은 후 빙빙 돌려서 말았다. 마지막으로 종이에 침을 살짝 묻히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그는 종이를 붙이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성냥을 켜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잠시 후 그의 코와 입에서 나온 잿빛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과거에 동생들에게도 이런 짓을 했을까. 문득 그에게 죄책감이 일었다. 이것은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나는 어차피 녀석을 끝까지 밀어줄 자신이 없고. 그놈이 나를 이해해 줄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중은 생각지 말자,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도록 하자. 동섭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폐부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찼다. 이 상태대로 계속 있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 그는 약간 흥분되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위한다는 말처럼 허울 좋은 것은 없다. 그것은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식에게 희생하는 풍토는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통지문이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을 회관에 간다고 했던 영수가 급하게 집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동섭은 자신이 한 짓은 까맣게 잊고 그놈, 참!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저리 경망스럽게 뛰어오지, 라고 생각했다. 영수가 바짝 코앞에까지 다가왔을 때도 그랬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하고 무슨 원수가 졌길래… 아버지가 되셔  가지고 자식 앞길을 막을 수가 있다는 겁니까? 아부지, 하늘이 무너져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다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몇 마디에서 그는 영수가 허둥지둥 달려온 이유를 겨우 알아차렸다. 영수는 마을회관에 있는 공중전화를 통해 학교에 전화한 것이다. 영수는 울먹이며 대든다. 예상치 못한 영수의 반응은 그는 당황했다. 어찌해야 한다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쩌면 환각일지도 모른다.

  동섭이 말이 없자, 영수는 더욱 기세가 올라 퍼부어 댔다. 아버지는 정말 사람도 아니라는 말까지 해댄다. 그럼에도 그는 할 말이 없었다. 외양간의 소처럼 눈만 깜빡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전주댁은 안타까워 어쩔 줄 몰랐다. 궁색한 변명이라도 좋으니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동섭에게 바라고 있다. 그러다가 도저히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자식 역성을 들기라도 할 것처럼 전주댁은 동섭을 나무랐다. 

  “나중에 자식한테 무슨 원망을 들을라고 이런 짓을 했소?” 

  여전히 동섭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는 냉정한 상태에서 영수가 분에 넘치는 짓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를 내심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그가 기대했던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영수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아버지를 지렛대 삼아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줄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영수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였다. 영수는 전주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겠다는 의사를 통보한 후 동섭에게 전주 시내에 월세방을 얻어 주고 매달 소요되는 학원비를 대 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하제?”

  전주댁의 말에 영수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주댁은 곧잘 논을 팔아서라도 자식들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사람 중에 속했지만 아직은 그런 시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현실로 눈앞에 닥치자, 겁을 내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후 동섭은 늘 술을 입에 대고 살았다. 하루에 한 병씩 마시던 막걸리를 두 병으로 늘렸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격해진 감정을 이기지 못해 집에 돌아오면 밤새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거나,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사소한 일에도 곧잘 화를 냈다. 창수나 경수가 자신의 말에 대꾸하거나 거역하면 그는 조금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매를 휘두르기도 하고 버럭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전주댁이 말릴라치면 그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내일이란 것은 없어, 죽고 나면 인생은 그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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