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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영수는 엑셀 차문에 넣어 두었던 과일칼을 꺼냈다. 소희는 그것을 보았지만 영수를 말리지 않았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진달래관광으로 가. 시내 터미널 부근에 있어.”
“거기서는 이런 놈인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회사 직원들한테는 얼마나 잘 보이려고 하는데. 기사들끼리 한 이야기도 회사에 몰래 일러바치고 하는 가봐.”
갑작스럽게 시내로 나섰다가 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희가 먼저 가자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불쑥 생각이 떠오르자, 소치석이 일하는 진달래관광으로 핸들을 돌렸다.
“어디야, 어디?”
“건너편에 차를 대.”
진달래 관광 사무실 앞에 차를 세운 영수는 사무실 문을 거칠게 밀어제쳤다. 소희가 먼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고 영수가 뒤를 따랐다.
“저, 저!”
소희가 더듬거리며 말하려고 했다. 그쪽에서 먼저 소희를 알아보았다.
“청소했던 아줌마네요.”
“그 놈 어딨어요? 소치석 그 놈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소희의 울부짖음에 안쪽 상무 석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정장차림에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50대였다.
“이 새끼 지금도 여기서 일합니까?”
얼굴이 벌게진 영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상무는 침착하게 말했다.
“예, 지금 진주 쪽에 가 있습니다.”
“이 새끼 당장 죽여 버려야지. 이렇게 나쁜 놈이 어디 있습니까? 이 새끼, 스토킹 새끼! 저 사람이 여기 청소하러 다닐 때 매일 따라다니며 괴롭혀서 하는 수 없이 만나 주었더니, 나중에는 밖에서 남자를 만난 것도 죄라고 하면서 남편한테 알린다고 협박도 했어요. 이 나쁜 놈이. 이 놈 이런 짓 한두 번 한 놈이 아닙니다. 스토킹하고 협박으로 돈 뜯고 사는 놈이 틀림없어요.”
“아줌마 혼자 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일자리가 급했던 소희가 일부러 혼자 산다고 한 모양이었다. 영수는 이왕 내친김이라 싶어 계속 몰아붙였다.
“이 놈이 틈만 나면 전화 하고, 전화 안 받으면 협박 문자 보내고. 보낸 게 다 남아있어요. 이런 놈이 여기서 계속 일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착실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소희가 한 말이 맞는 듯했다. 회사에서 잘릴까 봐 소치석은 비굴하게 군다고 했다. 기사들끼리 주고받은 말도 회사에 건넨다고 했다.
“이 자식이! 제 마음대로 안 되니까 온갖 욕을 다 하고, 제 번호도 알고 있다고 내내 문자를 보냈어요. 지금 이 자식을 대주세요. 나쁜 놈의 새끼! 내가 만나면 죽여 버릴 거야.”
상무가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소치석에게 말했다.
“지금 여기 와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잠시 상무는 소치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자식, 지금 당장 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지금 남해에 가 있어서요. 일단 받아보시지요.”
영수는 전화기를 들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너 지금 어디야, 자식아! 너 당장 잡으러 가야겠어. 이 나쁜 자식. 내 마누라 뒤를 밟지 않나, 술 먹자고 하지를 않나? 온갖 협박을 해서 여관에 데리고 가지를 않나? 너는 개새끼야, 성폭행 했어, 안 했어?”
소치석은 영수의 말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침착했다.
“김영길이 그 놈이 기사들 모아놓은 자리에서 제가 나쁜 놈이라고 온갖 욕을 다하고 자기 애인이라고 선포를 했는데 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나는 몇 번 만난 거 밖에 없어요. 둘이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그동안 알고 계셨습니까?”
순간 영수는 당황했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리야 싶어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서 제가 뒤를 한 번 캐보라고 문자를 안 보냈습니까? 그런데 그 놈한테 고맙다고 밥까지 샀다면서요. 하하하!”
소치석은 영수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한 달 전쯤인가 영수에게 문자를 보내기는 했다. 그러나 영수는 조금도 소희를 의심하지 않았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날 판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전 부인이 몰래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조용히 뒤를 캐보십시오.’
전 부인이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영수는 그 문자를 무시해버렸다. 이미 소희로부터 그런 문자가 올 것이라고 들은 터였다. 그 때 소희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더니 더러븐 새끼, 라고 혼자 욕을 퍼부었다. 문자는 기억이 났지만 소희가 했던 말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소희가 무어라고 했었지. 문자가 오기 전에 무어라고 했는데. 내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게끔 넌지시 말했는데. 영수는 자신의 기억력을 탓했지만 그 장면만 어렴풋이 떠오를 따름이었다.
“김영길? 이 두 놈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나쁜 새끼들.”
영수는 처음으로 김영길을 만난 때를 떠올렸다.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 용궁예식장 앞에서였다.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으니까 곧 올 거야.”
소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 아래쪽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오네. 호리호리하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앞에 섰다.
“이 분이야. 나를 도와주었다는 사람이.”
그 말에 영수는 인사를 하며 김영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힘들었을 때 많이 도와주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영수는 김영길의 손을 잡으며 언뜻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날씨가 좀 쌀랑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기 전골 먹으러 갑시다.”
소희가 길 아래쪽에 있는 쇠고기 전골식당을 가리켰다. 그녀가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다가 넘어질 듯 기울자, 영수보다 먼저 남자가 퍼뜩 부축해주었다.
“어서 몸이 나아야 하는데.”
그 말에 영수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겼다. 순간 말이나 행동이 어딘가 눈에 익어보였다.
“그러게요. 도와주셨다니 참 고맙습니다.”
그들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이곳에 한 번 온 적이 있는 듯 주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주문을 한 건 소희였다. 그들은 쇠고기에 수제비를 넣은 전골을 먹었다. 땀을 흘리며 영수는 김영길에게 몇 번이나 국자를 들어 수제비를 덜어주었다.
“아, 괜찮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김영길의 말에 영수는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보았다.
“요즘에는 뭐라고 하고 다녀요? 그 놈은.”
“지가 전에도 여자 여럿 건드려봤다고 자랑을 하지를 않나, 새로 하나 만나는 애가 있다고 하지를 않나, 원!”
김영길의 갸름한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러나 영수는 내색하지 않고 소치석에게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너 이 새끼 당장 여기로 와, 아니면 당장 경찰 부를 테니까, 당장 올라와!”
“못 갑니다. 일하다 말고 어떻게 갑니까?”
“뭐라고? 이 자식이!”
“허허 근데 김영길한테 고맙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임마! 알고도 모른 척한 거다 왜?”
“와 대단하구만! 얼굴도 두껍네. 좋다고 같이 살 거 같던데. 그런 걸 모른 척하고. 철판 깔았나?”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얼굴이 벌겋게 단 영수는 상무에게 헐떡거리며 말했다.
“이 자식 당장 올라오라고 하십시오. 집어넣기 전에.”
“죄송합니다.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고 도착하면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됐습니다.”
전화기를 건네주고 영수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112를 눌렀다. 상무가 그런 영수를 무색하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38구경 권총을 찬 경찰관이 사무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또 한 명의 경찰관이 따라 들어왔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관광버스 기사들이 원래 이런 놈들입니까? 아주 유명한 제비새끼들입니다.”
영수는 경찰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둘은 영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영수의 말이 끝났을 때 둘 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찰관이 나섰다.
“지금 기사는 어디 있습니까?”
“남해에 가 있습니다.”
옆에 서 있던 상무가 나서서 답변했다.
“그래요?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경찰관은 서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영수에게 말했다.
“일단, 이런 일은 고소장을 써야 수사가 개시됩니다.”
“그래요?”
“경찰서 민원실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서 바로 쓰지요. 그래도 되지요?”
“녜. 그래도 수사의 단초가 되는 것인데 잘 써야 합니다. 제가 잘 하는 대서소 한 군데 알려드리지요.”
이왕 내친김이었다. 영수는 이제 섶을 지고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기세였다.
“됐습니다. 여기 종이하고 펜이나 주십시오.”
영수는 그 자리에서 고소장을 썼고 기다리던 경찰관에게 접수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경찰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김영길은 어떻게 된 거야? 이야기 안 한 부분이 있잖아.”
차에 오르며 영수는 소희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다 할 기회가 없었어.”
“자꾸 숨기면 내가 자기를 믿기 어렵지.”
“그동안 소치석이 나한테 시도 때도 없이 협박을 해대길래 참다못해, 김영길 씨를 찾아갔어. 이 사람이 나한테 친절하게 해주었거든. 청소하러 버스에 올라가면 매번 메모지가 있어. 식사 안 했으면 휴게소 식당에 밥 먹으러 오라고. 그런데 나는 안 갔어. 밥 사준다고 덥석 가서 얻어먹을 수도 없고. 그랬는데 이 일이 터지고 나서 도움을 청할 데가 없는 거야. 생각다 못해 그 사람을 찾아갔어. 다른 일 같으면 자기한테 이야기 했을 테지만 남자 문제라 이야기도 못하고. 내가 밖에서 남자와 술 마셨다고 했으면 자기는 당장 이혼하자고 했을 거야. 지금이야 상황이 이러니 안 그런다고 해도. …연락을 했더니 소치석이 보낸 문자를 폰으로 보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다 보내주었고, 내가 몇 번 만나 제발 도와달라고 했어. 김영길 씨는 좋은 사람이야. 어떻게든 날 도와준다고 했어. 어느 날은 소치석이 이런 이야기를 기사들한테 하더라는 거야. 청소하던 그 여자 돈이 좀 있을 것 같지 않냐고. 그래서 김영길이 그랬대. 뭐라고, 이 제비 새끼 같은 놈이? 그러면서 한바탕 싸웠다는 거야. 아무튼 그 사람은 신사야, 소치석 같이 여자를 힘으로 어찌해 보려는 놈은 아니야.”
“어떻게 가까워지게 되었던 거야?”
“그 놈한테 시달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김영길, 이 남자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는 거야. 뭐 그럴 수는 있지만, 이 남자는 소치석처럼 개망나니는 아니었지. 신사는 신사지. 억지로 여자를 취하는 그런 남자는 아니었어. 그 남자가 도망가서 같이 살자고 하는 것을 내가 불륜은 싫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한 번은 집 앞에까지 와서 전화를 했드라고. 나올 때까지 안 가겠다고 말이지. 얼마나 놀랬는지 음식물 쓰레기 비운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어. 그 때 보문단지 가는 길에 있는 방갈로에 갔는데, 나는 소치석 그 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그 남자는 들어주고. 그러면서 술을 몇 잔 마셨어. 그리고 똑바로 말했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이야. 그 놈 때문에 만났는데 김영길 씨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그런데 집으로 오려고 하는데 김영길이 갑자기 휴대폰이며 지갑이며 던지며 고함을 지르는 거야. 연못 있는 쯤에 차를 세우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이야. 나도 그랬지. 우리 집안에는 이혼한 사람도 없고 불륜을 저지른 사람도 없다. 나도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그랬어.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지. …그런데 사람 일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며칠 후 저녁 무렵이었다.
“김영길이 그 놈 집을 알 거야. 이 남자도 이혼하고 혼자 셋방을 얻어서 사는 것 같았어.”
영수는 소희가 김영길의 집을 알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평소에도 자주 드나들었던 것일까. 소희 말대로라면 집으로 가는 길이라 몇 번 집 앞에 내려주었다는 것인데. 아, 서로 믿지 못하면 어찌 서로 살 수 있을까. 소희가 몇 번이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영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네 발 달린 짐승 따라 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고.
소희는 본 채 옆에 딸린 집으로 걸어가 샷시문을 두드렸다. 무언가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대문 밖에 선 영수에게 돌아왔다.
“샤워하고 있는데 좀 기다리래.”
둘은 서로 얼굴을 보다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주택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목에 수건을 걸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영수는 그 남자를 보자 속이 울렁거리고 복잡했지만 인사를 한 후 물었다.
“제가 고소를 한 건 아시지요? 그 놈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쩌겠습니까? 기사들 사이에서는 인제 사람 취급도 안 해주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경찰에 가서 진술을 해줄 수 있는가요?”
“그건 어렵습니다. 여기는 같은 동네나 마찬가지라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진술을 하고 여기서 어찌 삽니까?”
영수는 기가 막혔다. 김영길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영수는 어스름 속에서 소희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믿었던 남자가 이럴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소희는 말이 없었다.
“혹시 소치석이 보냈던 문자를 봤습니까?”
“예, 보내주어서 봤습니다.”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오, 지우고 없습니다.”
김영길이 아니면 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없었다. 영수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기사들은 뭐래요?”
듣기만 하던 소희가 입을 열었다.
“다들 그 놈 나쁜 놈이라고 하지요. 제비새끼만도 못한 놈이라고 욕은 하지요. 저는 이제 그 놈하고 말도 안 섞어요. 제가 진술을 못해 주어서 죄송합니다. 이해를 해 주세요.”
“아니오. 괜찮습니다.”
소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는 지금까지 이런 장면 속에 있는 자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선가 본 기억도 없었다. 신은 알까. 아마 모른 척할 것이다. 어떻게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
“그 놈, 집은 어딥니까?”
침묵을 깨고, 영수가 김영길에게 물었다. 그가 대답도 하기 전에 소희가 나섰다.
“여기서 멀지 않아. 내가 집 부근에서 한 번 내려준 적이 있어. 가면 혹시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집으로 쳐들어가야겠어. 집에 누가 있는데?”
“마누라하고 고등학교 다니는 애들 둘이 있는데 영 못 사는 마을이던데.”
“일단 그 놈 마누라한테 사실을 이야기해야겠어. 이 일을 알면 얼마나 놀라겠어. 전화번호가 몇 번이야?”
영수는 핸드폰을 꺼내 한바탕 벌어질 전쟁을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벨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중년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치석의 부인 되십니까?”
“예, 누구십니까?”
여자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침착했다. 영수는 이제 그 목소리가 파도를 타겠지, 생각했다.
“당신 남편이 버스 청소하던 아줌마 협박하고 돈 뜯고 성폭행한 거 압니까?”
저편에서 잠시 말이 없더니 곧 대답했다.
“좀 돈을 빌려 쓰기는 했다고 하던데 별 일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집 남자는 그런 남자는 아닙니다.”
“아니 내가 그 여자 남편인데 그 놈이 온갖 협박을 다 했어요. 쫓아다니면서 만나달라고 하고, 술 마시자고 하고, 전화비 없으면 좀 내달라고 하고. 그러다가 이제 회사도 그만두고 안 만난다고 하니까 남편한테 알린다고 협박하고. 제가 지금 정주경찰서에 고소장을 넣었으니까 조사가 들어갈 거요. 내가 그 놈 집어넣을 거요? 절대 가만 안 둡니다. 집이 어디요? 당장 내가 찾아갈 테니까.”
“집이 어디고 간에 여자가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그러요? 경찰서에 고발을 하든 처넣든 맘대로 하시오.”
여자가 먼저 전화를 덜컥 끊었다. 여자가 흥분하여 날뛰는 꼴을 보고 싶었던 영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자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갑네요. 집어넣든지 맘대로 하라는데요.”
영수는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소희는 말없이 그를 보기만 했다. 영수는 용기를 내서 김영길에게 말했다.
“부탁 좀 드립니다. 진술 해 줄 수 있습니까?”
김영길은 머뭇거리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진술을 해줬다고 알려지면 저는 이 바닥에서 일하기 힘들어요.”
“혹시 그 놈 집은 아십니까?”
“별로 친하지 않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봅시다.”
하는 수 없었다. 영수는 김영길에게 실망하는 빛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소희가 그 놈을 내려주었다는 정강동 부근에서 시작하여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황매공원 쪽이야.”
영수는 엑셀을 몰고 시가지를 향해 내려갔다. 소희가 멈추자고 한 곳은 오래된 기와집이나 슬레이트집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아래채인데 별로 큰집이 아니었어.”
소희가 기억을 따라 한 발 두 발 불안한 걸음을 내디뎠다. 영수는 놈을 만나게 될까 가슴이 떨렸다. 어두워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 보았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몇 집을 더 기웃거렸다. 마당에 들어서려다가 인기척에 놀라 나오기도 했다.
“분명히 이 부근이었는데, 이상하다.”
소희의 말에 영수는 어딘가에 숨어 웃고 있을 소치석의 모습이 떠올라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