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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16. 2024

슬픔의 포도 7

 7     

  “무슨 일이냐?”

  영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사람이 어디로 나갔는지 모르겠어.”

  영수의 말에 놀란 어머니가 바짝 다가앉았다.

  “초저녁에 즈그 언니한테 전화한다고 계단에 앉아 있더만. 방에서는 전화가 안 되냐?”

  “누구한테 전화가 오기는 한 것 같은데.”

  “누구말인데?”

  “몰라. 나도.”

  영수는 전에 살던 아파트까지 다녀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한들 소원했던 어머니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나가서 찾아 봐야지.”

  밖은 어둠이 약간 가셔 있었다. 영수가 차에 오르자 어머니는 옆자리에 탔다. 오늘 밤에만 몇 번을 오르내렸던 길을 다시 더듬어갔다. 무성한 벚나무 가지들이 파도처럼 검게 일렁거렸다. 안개도 옅게 드리웠다. 수풀 사이를 자세히 보라고 하던 어머니가 말했다.

  “저기 가서 한 번 물어보자!”

  영수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마하보디 선원 쪽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새 사람이 일어났나 보군. 영수는 중얼거렸다. 둘은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괭이질 하고 있던 사람은 노파였다. 어머니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잘 걷지도 못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해요. 치료를 받고 있는데 혹시 밤에 여기 안 왔는가 해서요.”

  “아, 그 때 전화한다고 여기 찾아왔던 그 처자 말인갑니더. 근데 밤에는 안 왔니더.”

  그 때 영수는 일하다 말고 소희를 데리러 부랴부랴 차를 몰고 내려왔다. 여기까지 운동하러 왔다가 전화를 좀 하고 싶어서 왔어. 전화할 데가 없으니까 그렇지. 소희의 대답이 떠올랐다. 

  “그래요? 혹시 오거든 위에 공장으로 연락 좀 해 주세요.”

  영수의 부탁에 노파가 대답했다. 

  “예, 알았니더.”

  둘은 다시 아랫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차를 세우고 수풀 속을 뒤지기도 했다. 옅은 안개 속에 드러난 하늘의 조각달을 보자 영수는 서글퍼졌다. 헤르만 헤세의 시도 떠올랐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 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혹시 남자가 있어 나간 것은 아닐란가 모르겄다.”

  어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란 영수는 갑자기 앞날의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남자한테 전화가 하나 오기는 했는데 알 수가 없어.”

  영수는 이제 갈 데까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가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자신을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문제의 남자가 전화를 받고 자기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해 준다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진이 즈그매가 보험 한다고 다니면서 중늙은이하고 바람을 피우는 것을 잡았는데, 지금은 애가 보고 싶어서 와도 안 만나 준다고 하드라.”

  어머니는 이십 년도 넘은 조카며느리 일을 끄집어냈다. 젠장 남의 일이 아니로군. 일이 이렇게까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수는 어머니에게 입을 잘못 놀린 것을 후회했다.

  엑셀은 자작저수지를 지나 청소년수련원 앞을 지나쳤다. 이미 지나온 곳을 다시 가려니 조금 전 일들이 떠올라 고통이 배가 되었다. 

  “일단 파출소에 가서 신고나 하고 가자.”

  “녜.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 해달라고 하고 가요.”

  사연리 슈퍼를 지나 주남파출소를 찾는 동안 조금씩 날이 새고 있었다. 길을 아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집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파출소를 발견하자 영수는 마당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근무 중이던 경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부근에 사시는 분들입니까?”

  “사람을 찾습니다. 저는 이 위에 대명식품에 살고 있구요.”

  영수가 전후사정을 설명하자, 배가 불룩 나온 경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실종신고를 하고, 저하고 같이 찾아봅시다.”

  경장이 영수에게 인적사항을 자세히 물었다. 연락처, 인상착의까지 자세히 적은 후에 경장이 실종신고명부를 덮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찾으면 파출소에 연락을 해 주세요. 신고를 해제해야 되니까.”

  “어디로 갑니까?”

  “일단 위로 올라가면서 길섶이나 개울에 써치라이트를 비추어 봅시다. 천천히 올라가세요. 제가 뒤를 따라갈 테니까.”

  경장이 혼자 순찰차를 몰고 엑셀 뒤를 따라 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이런 일은 처음이야.”

  “두 번 세 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제.”

  어머니 말에 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어장 부근에 이르자 경장은 순찰차 지붕에 달린 써치라이트를 켜고 개울을 뒤지기 시작했다. 영수도 차를 세우고 소희가 실족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맸다. 나무나 수풀, 바위 사이까지도. 소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수색을 하다가 경장이 다시 차에 오르는 과정이 길게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영수도 차에서 내렸다가 올랐다. 대명식품입구까지 뒤졌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여기는 없는 것 같군요. 자주 있는 일이지만, 실종된 사람이 돌아와도 연락을 해주지 않아 저희가 욕을 먹습니다. 혹시 실종자한테 연락이 오면 신고를 해제해 주세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경장이 경례를 붙이며 파출소로 돌아가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들을까봐 조심조심 계단을 오른 끝에 영수는 문을 열었다. 무심코 아이들 방문을 열었다. 작은방에서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둘은 큰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면 되지?”  

  영수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그런 자식이 마땅치 않은 듯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떡해? 혼자 애들 데리고 살면 되지. 요새 그런 남자들 많아.”

  “나 혼자서 어떻게 애들을 키워.”

  어머니는 영수의 말에 조금도 공감하지 않았다. 그녀는 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다.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 년하고 사는 것보다야 낫지. 난 내일 아침 묵고 갈란다.”

  영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이기적이었나. 가만 생각해 보니 어머니와 소희는 신혼 초부터 지금껏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것은 영수의 잘못이 컸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얼마나 인색하고 꽁한 성격인지 잊고 있었다. 서운한 감정 때문에 전세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요구할 정도였다. 한편 소희는 우둔하고 고집스러웠다. 며느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꼭 하려고 했다. 시부모님 생신이나 제사 때마다 음식을 준비해갔다. 그러나 고부간의 불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이 때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영수는 가장 고통스러운 위치에 있었다. 부모님에게서는 마누라만 위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아내에게서는 효자 아들을 남편으로 둔 자신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겠느냐, 고 외쳤다.  

  사이가 피폐해지는 것을 견디다 못한 영수는 본댁과 왕래를 끊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일체 연락도 않고 본가에 가지도 않을 거야. 영수는 소희에게 말했다. 이후 얼마동안 양쪽은 소원한 상태로 지냈다. 그러나 명절 때가 되자 소희는 친정어머니 조언대로 음식을 장만해서 시댁을 방문했다. 만나서 좋아질 것 같아 그랬다고 나중에야 말했지만 한번 나빠진 관계는 다시 좋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궁박한 처지가 아니었다면 영수는 어머니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영수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갔던 그날을 떠올렸다. 집이 문이 잠겨 있자, 영수는 시장으로 갔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시장 안에서 손수 재배한 채소를 팔고 있었다. 그 일이 세탁소를 그만둔 어머니의 소일거리였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발견한 영수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뭐하세요? 그동안 별 일 없으시구요.

  어머니는 물끄러미 영수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금세 고개를 돌렸다.

  누가 아는 체를 해? 누구신가요?

  어머니는 아직도 그 때의 감정, 그 안에 있었다. 당황한 영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열무를 파는 육십 대 여자의 주름진 모습을 보았다. 낯익은 모습인 듯했지만 몸서리치며 금방이라도 달아나고 싶을 만큼 싸늘했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 여자와 어떤 사이인가. 영수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게 한 신에게 묻고 싶었다. 

  수많은 생각이 흐르고 난 후 영수는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애 엄마가 아파요.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어려운데 일하는 곳에서는 나가라고 할 것 같고 지금 참 힘들어요. 어머니가 하루 이틀 가서 일 좀 봐주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안 할지도 몰라요. 좀 도와주세요.

  어머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아버지가 나타났다. 남루한 옷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버지 모습 역시 영수에게는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은 어머니와 달랐다.

  “어찌 그리 연락이 없냐? 너는 내가 죽으면 올 거야.”

  아버지의 말에 영수는 가슴이 뭉클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몰라요. 무관심하고. 내가 왜 자주 안 오는지도 모를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를 미워할 생각은 없어요. 저는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이처럼 무능하게 살고 있으니. 

  “자, 전화번호하고 주소하고 여기 적어주고 가라.”

  아버지는 호주머니 안에서 볼펜과 누런 종이를 꺼내들었다. 영수는 연락처를 적은 후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그동안 뭐하고 지냈냐?”

  그제서야 아버지가 영수의 안부를 물었다.

  “별로 안 좋아요. 어머니를 좀 모시고 갈려고요.”

  “그래?”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영수에게 말했다.

  “난 가봐야겠다. 힘들어도 잘 지내고. 어머니한테 할 이야기 있으면 해.”

  “그럼 조심해 가세요.”

  아버지가 자리를 피해준 후 비로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언제 오라고? 지금은 이 물건들을 팔아야 되고. 내일 버스 타고 가면 안 되냐?”

  “지금 힘들면 내일 와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다시 제자리, 자신이 살고 있는 공장이층으로 영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애초에 마당찮은 걸음이었다. 

  “나 아침 묵고 고만 갈란다.”

  “아니 내가 지금 이런데도 집에 간다고?”

  “오늘까지 있기로 했으니 그냥 갈란다.”

  어머니의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영수는 말리고 싶지 않았다. 

  “느그 아부지 밥 챙겨주어야 된다. 차 타는 데까지만 태워다 주라.” 

  아직 어린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가 이혼하라고 말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영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혼을 하라고요? 그럼, 어머니가 애들을 키워줄 거요? 라고만 물었을 따름이다. 무슨 권리로? 내가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히 말씀하시는군요. 이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그때 어머니는 가타부타 응답이 없었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영수는 아이들에게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라고 이르고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아침 설거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정말 갈 거요?”

  “가야지 그러면 날 보고 어쩌라고. 언제까지 여기 있겠냐? 공장장한테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처럼 영수는 어머니에게 매달릴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이 서글퍼졌다. 아니 생각해 보니 그는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린 기억이 없었다. 

  “바쁘니까 저 앞 버스 정류장에까지만 데려다 주라.”

  “그러죠.”

  얼마 후 영수는 어머니를 태우고 대명식품을 출발했다. 

  “왜 저기 안 내려주고?”

  자작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을 때 어머니가 물었다.

  “아, 오늘 시내에 가야 돼요. 고용보험 교육이 있어서. 교육을 받아야 실업급여를 탈 수 있다네요.”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줄라고?”

  “그래야지요.”

  가는 동안 어머니는 영수에게 바람 피웠던 성진이 엄마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 영감이 죽고 나서 성진이를 한 번 찾아왔었지. 근데 성진이가 즈그 엄마를 보려고 해야 말이지.”

  어머니는 그 부분에서 통쾌한지 목소리가 커졌다. 영수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대신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들판 어느 곳에 소희의 모습이 몇 번이나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년이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니 이참에 잘됐다. 이혼해라. 내가 즈그 집에 간다고, 시간 맞춰 나간다고 했는데, 로타리에서 나를 따돌리고 가버렸지. 그래서 나는 다른 버스를 타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그가 어찌했냐? 그냥 날 버려두고 가버렸지.”

  어머니 기억 속으로 한 번 들어간 것은 한 번도 잊혀진 적이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정보가 거기 들어갈 수 없기는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다가 섬뜩하게 튀어나왔다. 이것은 놀랄 사이도 없이 듣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한 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언제까지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한 번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면 언제까지고 나쁜 사람이었다. 반면 영수는 지나간 일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쉽게 잘 잊었고 그 당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한 장의 그림 같은 사진이었다. 그 밖의 감정은 몸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다가 삶의 어느 순간 고통스러운 지점에서 미칠 것 같은 환상이나 악몽으로 되살아났다. 

  버스터미널에 어머니를 내려 준 후 영수는 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밤을 겪은 후, 피부에 닿는 공기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매일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이제는 알 듯했다. 감각은 예민하게 촉수를 드리우고 신경은 팽팽한 것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했다. 아침을 먹으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해도 뜨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아니야, 태양은 떠오른 적도, 진 적도 없어. 늘 사람이 사는 지구가 움직였어. 인간은 태어나고 또 죽고 사라지며 반복을 계속했고. 그 분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을 거야. 이럴 때는 꼭 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군 그래. 왜 그럴까. 인간인 나로선 어찌할 수 없이 신이 만든 운명에 당하기만 하느라 그런가. 

  맞다, 영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소희가 입원했던 병원에 가 보는 거야. 그 곳에 가서 물으면 뭔가 실마리가 나올 거야.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서둘러 차를 몰았다. 대현병원 앞에 도착하자, 영수는 소희가 입원했던 이층 병실로 곧장 들어갔다. 환자들이 하나 둘 복도를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영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 병원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했던 칠십 대 할머니를 찾았다. 칠십 대의 그녀는 문 옆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집 사람이 어제 저녁에 집을 나갔는데 혹시 아는 것이 있어요?”

  “내가 아저씨 처음 왔을 때 안 물었니더? 누구냐고?”

  영수의 흥분된 목소리에 비해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침착했다.

  “저는, 아니 제가 애들 아빠라고 그랬지요.”

  “낮에 수박 사 온 남자가 있었다고 안 했니더? 그 남자하고 둘이서 입을 맞추고 좋아서 죽드라고.”

  영수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을 만큼 충격에 빠졌다. 그 때 젊은 여자 환자가 영수에게 다가왔다. 소희 맞은편 침상에 있던 환자였다. 소희가 그녀와는 가까이 지내고 자주 이야기를 했던 듯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할머니들 식판도 잘 들어드리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좀 이상해졌어요. 걷는 것도 이상해지고 말도 어눌해지고. 그러다가 한 남자가 수박을 사들고 왔길래 내가 남자에게 물었지요. 오십은 되어 보였는데 호리호리하고 사람이 좋아보였어요. 남편이려니 싶어, 아저씨냐고 물었더니 별 스스럼없이 그 남자가 애인사이라고 하드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순간 영수는 가슴이 벌떡거리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소희에게 자주 문자를 보내고, 한밤중에 태워 간 남자가 분명했다. 아, 이런! 영수는 탄식했다. 이곳에 왔을 때 할머니 말을 허투루 들었던 게 잘못이었다. 그때 자세히 알아두었더라면 영수는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 남자, 관광버스 기사라면서요. 그 놈들 유명한 놈들이요.”

  다른 여자 환자가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는 듯 나섰다. 

  “아이고, 우리 올케도 말이요. 시아주버니가 달래서 데려다 놓으면 그 때뿐이요. 잘한다 해 놓고 며칠이면 그만 도로 나가버리고 없어요. 한 번 바람 난 여자는 안 돼요. 딴 놈하고 놀아난 년을 뭐하러 데리고 살아요. 그런 여자는 잊어버리는 게 좋아요.”

  이번에는 환자를 간병하던 한 노파가 나섰다. 그녀 역시 흥분해 있었다. 무엇이 이들을 날뛰게 하는지 영수는 생각해 볼 새가 없었다.

  “그 년놈들 잡아다 콩밥 좀 멕이요.”

  “그 새댁 그리 안 봤드만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영수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다 싶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 이래 가지고는 나도 살 수가 없네요.”

  어떻게 아래층까지 내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없이 병원을 나온 영수는 공중전화기 앞에 섰다. 교리에서 제과점을 하는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 

  “어제 저녁에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와요. 지금 병원에 왔더니 사람들이 관광버스 기사하고 바람이 난 게 틀림없다고 하네요.”

  “막내가 그럴 리가 없어요. 잘 알아봐요.”

  “알아보고 말고도 없어요. 이젠 끝났어요.”

  영수는 고함을 지르며 울먹였다. 그런 후 교회할머니에게도 전화를 했다. 영수의 말에 교회할머니 그다지 놀라는 음성이 아니었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음성도 뚜렷하지 않았다.

  “요즘 바람날 것 같다고 하더니 대체 무슨 일이야?”

  “언제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많이는 안 됐어. 돈 준다던 여자 때문에 한 번씩 통화할 때 그랬어.”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중얼거렸다. “들어올 거야, 들어올 거야.” 그런 후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영수는 차를 몰고 노동사무소로 향했다. 그사이 몇 번이나 소희에게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제 다시 돌아갈 길이 없는 건 아닐까. 이제 끝난 건 아닐까.

  강의는 지겨웠다. 고용보험과 실업급여 부정수급자의 처벌에 대해 교육을 받았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건 예비군 교육보다 더 지루하군, 하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들 입을 다물고, 어서 빨리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아이엠에프 이후 정리해고 되었을 때도 그는 이 교육을 받았다. 생활비로는 턱없이 적은 액수였지만 어려운 형편에 포기할 수 없었다.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생활비가 바닥이 나 있었다. 

  노동사무소를 문을 나섰을 때는 점심 무렵이 거의 다 되었다. 이제 집에 가도 됩니다, 라고 강사가 말했을 때 영수는 반가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소희가 없는 집을 생각하자, 견딜 수 없는 서글픔에 우울해졌다. 

  대명식품이 가까워지면서 영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소희가 돌아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그렇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구나.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전혀 모르던 남남이었는데 십여 년을 같이 산 후에 헤어지려니 가슴이 이다지도 아플까. 그러면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소희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얼마 후 그는 차를 세우고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올라 갔다. 그 때 공장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그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들은 반가워했다. 맨 마지막으로 나온 공장장이 영수에게 말했다.

  “교육은 잘 끝나고?”

  “예, 교육을 받아야 급여를 준다니까요.” 

  “자네 집사람이 전화를 했드라구. 핸드폰으로 연락이 안 왔던가?”

  “아니오.”

  “연락 한 번 해봐. 목소리가 영 안 좋던데.”

  공장장이 가고 난 뒤 영수는 소희 폰으로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꺼져 있었다. 최근 통화기록도 살펴보았다. 소희에게서 온 부재 중 전화도 없었다. 아, 이제 궁금하지 않아. 이제 끝난 일이야. 

  오후에 공장장은 창고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쁘게 일할 때는 일하고, 오늘처럼 일거리가 없을 때는 좀 볼 일도 보고 창고정리도 하고 그러는 거지. 자, 가자구!”

  흰 고무신에 개량 한복을 입은 공장장이 앞서 걷고 영수는 약간 뒤쳐져 걸었다. 공장장은 개집 앞에 있는 커다란 창고 문을 열었다.

  “저 안에 물건들 보이지?”

  “녜.”

  “저기에 보이지. 우리 공장에서 만든 물건들이 전국에 있는 지부에 팔려나가는 것들이야. 대명원도 있고 멸치나 죽염도 있고.” 

  설명을 마친 공장장이 문을 닫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창고 문을 열었다. 농기구와 공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 여기 좀 쓸고 정리 좀 하고.”

  바닥에는 쥐들이 까놓은 벼 껍질이나 곡식들이 있었다. 영수가 비로 바닥을 쓰는 동안 공장장은 연장들을 벽에 걸었다.

  일을 하며 영수는 첫날 공장에 나갔을 때를 떠올렸다. 대충 이삿짐을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녹동댁이 와 있었다. 그녀는 손티가 아니었다면 고왔던 얼굴임에 틀림없었다. 

  “안녕하세요?”

  메주콩을 씻던 그녀는 영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포대에 담긴 콩을 플라스틱 대야에 붓고 물로 씻었다. 그런 후 대나무 소쿠리에 받쳐 물기가 빠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건 내일 하면 되니까 놔두고 청국장 방에나 가 보세.”

  녹동댁은 약간 굽어 있는 허리를 펴며 아이구, 소리를 냈다. 

  영수가 그녀를 따라 간 곳은 이불과 담요가 덮인 청국장 방이었다. 방안은 열기로 인해 후텁지근했다. 담요를 벗기고 청국장을 뜨자, 실처럼 가는 줄이 일어났다. 여기에서 띄운 청국장에 꿀을 버무려 환을 만들었다. 이것을 전국에 있는 지부에 판매했다.

  “이제 그만하고 주스나 하나 먹자고. 얼굴을 보니 총각 같구만. 지금이라도 장가가면 되겠어.”

  그녀의 말에 영수가 속없이 웃었다. 그녀는 창고에서 포도주스를 가지고 왔다. 

  “오늘은 일이 많이 없네요.”

  “응, 대명원 만드는 날이 좀 바쁘지. 동네 할머니들도 여럿 오고.”

  녹동댁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지자, 창고 안으로 돌아와 있다. 할머니들은 일찍 돌아간 것이 틀림없었다. 소희가 없어진 것을 알면 할머니들은 무어라고 할까. 영수는 걱정이 아니라 두려워졌다. 그들이 실망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긴 이런 일은 늘 있어 온 일일 거야. 사람이 생겨나고 자라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사는 것처럼 보였던 여자가 도망을 치고. 남자는 미친놈처럼 헤매고. 아마 이런 일은 무수히 일어났겠지. 그 반대도 그렇고. 

  일이 끝나자, 공장장이 막 냉장고에서 꺼내온 포도주스와 소보루빵을 가지고 왔다. 

  “여기 깊은 산중에 이사 와서 좀 답답하지? 우리는 내 여기 살아서 모른데 도시 살다가 온 사람은 답답하다고 하드라고.”

  공장에 대해 몇 가지 물을까 했지만 영수는 그만두었다. 소희의 일로 인해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아, 전씨. 내가 자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고향도 비슷하고 말이야.”

  “어, 그러십니까?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영수는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내 고향에서 가깝든 그렇지 않든 무슨 소용인가. 영수는 전라도가 고향이었지만 경상도가 고향인 소희와 결혼했다.

  “내가 영산에서 택시운전을 하다 여기 오기는 했지만, 살기 힘들어 온 것은 아니야. 개인택시 몰고 다녔으니까. 처음에는 재미삼아 몇 번 여기 놀러 와서 일도 거들어 주고 하다가 마침 자리가 있어 눌러 앉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여기 오니까 죽겠더라고. 산은 탁 가로막혀 있고, 옆에 식당이 있나 술집이 있나. 이건 완전 산중이거든. 밤 되면 완전 절간이야, 절간! 그러니까 자네 마누라가 적응 못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야. 어디 가서 술을 한 잔 할 수 있나, 사람을 만날 수 있나. 오입을 할 수 있나… 내가 공부하기 싫어 농고를 다녔지만 집은 살만했어. 진짜야! 살다 보니까 농사짓는 거 적성도 안 맞고 해서 도시로 나갔는데, 만난 게 유랑극단이야. 거기 따라다니는 게 그렇게 재밌는 거야. 기도도 보고 했는데 참 재미있었지.” 

  저녁이 되자, 소희가 궁금해진 영수는 다시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뜻밖에 통화음이 들렸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그래, 달라질 것은 없지.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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