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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산호 Sep 24. 2024

무대일가 18

 

                             8

 

  집을 나온 후 영수는 말 없이 걷는다. 창수는 뒤따라오고 있다. 영수는 학교 일을 봐주는 이 주사의 집 옆, 초등학교 정문 앞 버드나무 아래에 놓인 평상에 앉는다. 조금 전에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인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가 창수에게 말하는 투는 격앙되고 심각할 수밖에 없다. 창수가 가출하려 했다는 것은 영수로서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그는 신음을 냈었다.

  “이 순간부터 나는 네게 절대로 손을 안 댄다.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네 맘대로 살면 된다.”  

  영수의 말에 창수는 거의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면 좋으련만. 영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창수는 무표정하게 영수가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다. 영수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창수는 자신의 진심을 알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내가 괜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곤란하다.  

  “내 행동에 대해 후회는 없어. 넌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대되는 애였으니 말이야. 그간 너를 때리고 다그친 것도 다 널 잘되라고 한 처사였어. 나는 그랬거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떤 길을 택해 걸어야 할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거든. 만약에 내게도 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정말 너무나 많아. 무게 있는 언어로 내게 호령을 하고 군기 있고 엄격한 생활을 할 것을 명령해준다면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겠지. 이렇게 빗나가지는 않았을 거야…그러니까 내가 네게 했던 것은 내게 형이 있었다면 받고 싶었던 것을 해주려고 한 거였어.  

  “형은 내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영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평소의 창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렇게 착하고 고분고분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넌 아마 내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 거야. 너도 내 나이가 되면 내 심정을 이해할 거야. 당장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창수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여기서 영수는 약간 용기를 냈다.

  “내가 얼마나 널 생각했는지 알려면 내가 쓴 일기장을 보면 알 거야. 지금은 물론 그 계획을 포기했지만. 거기에 보면 앞으로 네가 받아야 할 교육과정과 소용될 교육비가 제 나이별로 되어 있어. 내가 돈 벌어 널 대학까지 보내려고도 했어.”

  “그래요?”

  “나중에 창수가 잘 되면 제게 감사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랬는데…….”     자신이 빠졌던 함정에 창수를 빠지게 하지 않기 위해 영수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계획대로 실행에 옮겼다면 그는 분명 좋은 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그 계획을 접어야 했다. 창수에게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데까지는 갈 수 없었다. 즉 그는 주님의 종이 되겠다는 결심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창수의 정신적인 면을 강화해 주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만 해도 난 순진했어. 영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순진’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제 나는 우리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 자식을 낳기만 했을 뿐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아. 그들은 무관심한 부모이며, 자신들의 일 외에는 관심이 없어.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우리 집 안의 큰아들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네가 큰아들이다…부모님이 되어 가지고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밀어주기는커녕 되레 못하게 막고, 또 내가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찬바람이 씽씽 분다, 불어! 그래서 오래 전부터 생각한 일이지만 네게 장남 자리를 물려주고 오늘 저녁에 나는 죽을 작정이다. 내가 이렇게 너한테 내가 죽으려고 하는 것을 알려주는 이유는 첫째, 누군가에게 나는 가노라, 는 말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고 둘째,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집에 가서 하지 말라고 하면, 네가 안 할 것 같아서다. 만약에 누군가 이 일을 알고 방해하게 된다면 그건 몹시 곤란한 일이 아니겠니? 그리고 이런 짓이 비록 주님께는 죄를 짓는 것이지만, 이렇게 사느니 오히려 죽는 것만 못한 것을 어쩌겠니. 부디 내가 죽거든 이 집안을 잘 이끌어 나가기 바란다.”

  비록 부모가 아닌 창수를 상대로 한 말이지만 할 말을 다하고 나자, 영수는 속이 후련해진다. 집으로 가자마자, 창수는 부모님께 내가 죽겠다고 한 말을 고스란히 전할 거야. 그러면 그들도 어떤 결단을 내리겠지. 내내 무관심한 그대로 있던지 나를 찾아나서던지. 버드나무 아래서 영수는 창수에게 손을 흔든다.

  “잘 가!”

  말끝에 영수는 내 인생이여, 사랑이여, 행복이여, 젊음이여, 하고 끝도 없이 되뇌고 있다. 그 길로 그는 저수지를 관리하는 동우네 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와 동우는 구암 교회의 신자이자 친구였다.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나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난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기도 하고, 서로의 언행에서 믿음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찾아내서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동우야!”

  아래채에서 동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늦게 웬일이야?”

  동우는 그에게 웬일이야, 라는 말을 배운 이래 늘 그 말을 써먹고 있었다.  

  “오늘 전주에서 내려왔는데 좀 심란해서.”

  동우가 영수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문을 비켜섰다. 동우도 영수집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영수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렇게 애끼다 죽을 때 싸 들고 가라고 했지.”

  “부모한테 악담을 했구만.”

  “그렇게라도 해야지, 대들고 싸울 수는 없잖아.”

  영수는 피식 웃고 바닥에 덜퍼덕 누웠다. 무얼 더 물으려던 동우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동우가 불을 끌 때까지 영수는 멍청히 흘러나오는 생각들에 몸을 맡긴다. 내게도 좋은 시절은 있었어. 초등학교 때 나는 학교의 유명인사였으니까. 말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우상이었어. 전교 어린이 회장도 지냈지. 비록 졸업식 때 교육감 상은 받지 못했지만. 마이크를 잡고 아침 조기회 청소를 알리기도 했었어. 그 때 다들 여자 같은 미성이라고 입을 모았지. 내게 이런 시절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내 초라한 꼴을 봐라. 난 경쟁에서 밀려났고, 다시는 그 때 그 화려한 자리로 복귀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래, 잠이 안 와?”

  동우는 영수가 죽으려고 작정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공부나 해.”

  영수는 대꾸도 없이 혼자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세상에 검정고시에 세 번이나 떨어지다니. 나 같은 인간은 살 가치가 없다. 머지않아 영혼이 빠져나간 내 육신은 흐느적거리고 부패할 것이다. 더러운 욕심과 애욕에 시달렸던 육체는 썩어서 식물의 거름이 되고 한 줌 흙이 될 것이다.  

  부모로부터 어떤 연락도 오지 않는다. 새벽 2시쯤 영수는 동우가 잠을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집을 빠져나온다. 내가 지상에서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곧 지구가 생기고 난 이후 죽어간 많은 생물들 중 하나가 된다!  

  집 옆의 효자비를 지나자 개울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영수는 옆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곧 좁고 높은 여수로 다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난간도 없는 위태한 다리에 선다. 아래로 떨어지면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다리다. 발을 헛디뎌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던 어린 시절이 그에게 떠오른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순간 그는 이것을 깨닫는다.  

  여수로를 지나 그는 저수지 둑을 오른다. 눈에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버림받은 자식의 눈물이구나. 저수지 둑 아래로 내려간 그는 옷을 벗어 돌 위에 반듯이 개켜놓는다. 운동화도 벗어 그 위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오랫동안 주인에게 봉사한 것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서다. 이것들은 내가 죽었다는 표식이 될 것이며, 부모님께는 적잖이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그 분들도 이만한 고통은 치러야 한다. 그는 또다시 중얼거린다.

  그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온 노끈을 쥐고 큰돌을 찾아 헤맨다. 그도 노끈으로 돌과 자신의 몸을 연결해야만 시체가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수지 둑이 끝나는 동쪽을 향해 갔다가 그는 들기에 벅찬 돌을 발견한다. 됐어, 바로 이거야! 그는 돌에 입은 한 번 맞춘 후 돌을 들고 옷을 개켜 놓은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어떤 외압에도 풀리지 않도록 돌과 허리에 노끈을 단단히 묶는다. 그런 다음 바위를 두 손으로 안아 걸음에 방해를 주지 않도록 배 쪽으로 끌어당긴다. 준비가 끝나자, 그는 동네산 쪽을 바라본다. 어둠에 묻힌 거대한 장벽이 그와 마을을 가로막고 있다. 그는 그 너머의 집을 향해 잠시 동안 절을 한 후 이윽고 물속에 발을 내딛는다. 그 때 잠시 말라 있던 눈물이 또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하마터면 발가락에 나뭇가지가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그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그는 검은 물속을 찰랑거리며 걸어 들어간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허연 물체 하나가 갑자기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육신이 있기 때문에 갖게 되는 환각일 거야. 그것이 그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한다. 놈은 죽음을 인도하는 사자일 거야. 그런데 어쩐지 귀신의 얼굴이 그의 눈에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 그는 그것의 정체를 깨닫는다. 귀신은 남자처럼 보이지만 남자가 아니다. 그보다 네댓 살 많은 어사리의 처녀였다. 그녀는 어느 해 무슨 일인가로 저수지에 몸을 던졌고 동네 사람들이 온 저수지를 뒤져 머리칼을 잡고 시신을 저수지 밖으로 끌어냈다.   

  아, 한 가지 잊은 일이 있다.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주님을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죄를 짓는 마당에 무슨 면목으로? 또 그러다가 귀신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 순간 영수는 계통발생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인생을 더듬어 올라가다가 수천 년 전 진화가 되기 전 조상들의 의식까지 몸으로 느낀다. 그러자 몸이 찌릿한 감동이 온다. 이것이 생명의 정리작업인가 보다.

  그것이 끝나자, 지금껏 전혀 본 적이 없는 근엄한 얼굴의 사형집행관의 모습이 물 위로 떠오른다. 그 자는 무표정하고 메마른 인간을 많이 닮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그는 진지하게 생각한다. 언어는 내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있을 때만 소용이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다. 당연히 내가 세상에 남길 말은 없는 셈이다.  

  “없습니다.”

  재판관이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육친에게 할 말은 없냐?”

  그는 조금 전에 작별인사를 하려 했다고 말하려다가, 집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불효자는 먼저 가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빌어먹을 눈물아, 이제 더 이상 흘릴 일도 없으니 양재기로 쏟아지든 동이로 쏟아지든 네 맘대로 쏟아지려무나! 의식이 끝나자, 사형집행관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물 속으로 사라진다.  

  드디어 물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이제 얼마만 더 들어가면 그는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걸어감에 따라 물은 그의 목, 입, 코를 삼킨다. 이 때 무엇인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지더니 하늘이 밝아진다. 그것을 본 그는 가슴과 뇌에 벅찬 오르가즘을 느낀다.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솟아오른다. 처녀귀신도 별똥처럼 꼬리를 내흔들며 사라진다. 지금껏 그는 이런 빛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허깨비만 보고 산 거야. 주여, 당신이나이까? 그 분이다! 그 분은 지금 막 죽으려고 하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 때 뒤에서 동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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