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산호 Sep 10. 2024

무대일가 16

16


“우리 반에서 누군가 이 일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거나 혹 그 전에 이 녀석들이 이상한 낌새를 보인 것을 본 사람이 있으면 꼭 내게 이야기를 해주기 바란다.”  

조회시간에 들은 선생님의 말씀에서 창수는 기어코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았다. 키가 작지만 머리를 길게 기른 음악 선생님은 의외의 일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수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아이들 틈에 앉아 입을 다물고 태연히 앉아 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이번 일에 창수가 연루된 것을 알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이 나가고 나자, 창수는 마음 한 켠이 조마조마하고 떨리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이 속내을 알까도 두려워진다. 순간적으로 창수는 담임 선생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까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 일이 두려워진다. 전교생의 웃음거리가 되고 반 친구들이 코나 귀 아니면 신체의 다른 부분이 없는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할 것이 분명했다. 선생님들도 그럴 거야. 날 그렇고 그런 놈으로밖에 생각지 않을 거야. 창수는 집 나간 아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본다. 지금껏 창수는 명예라는 것을 존중해왔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면 죽고 싶을 것이다.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일주일이 지나자, 창수는 그 일에 약간 무감각해졌다. 두근거림은 미약해지고 죄책감도 묽어져 있었다. 창수는 설마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가출했던 아이들이 돌아오랴 싶었다.

  창수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등교해서 아침자습을 하고 있다. 한참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한창수, 나를 따라 와라.”  

  갑자기 나타난 담임 선생님이 창수를 지명했다. 순간 아주 날카로운 햇살이 그의 머리 속을 통과한다. 그는 미로 속에 갇혀 버둥거린다. 에이, 될 대로 되버려라. 창수는 체념했다. 의지를 버릴 때처럼 마음이 평화로운 때는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서서 창수는 일주일 전에 이 고장을 떠났던 네 명의 가출자들을 본다. 그들은 나란히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옆 반 선생님이 마대 자루를 들고 있다. 창수는 복근을 경멸이나 원망으로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창수는 선생님이 이르는 대로 움직인다. 가출자 넷은 오랫동안 씻지 못해 꾀죄죄한 얼굴에 때가 절은 옷차림, 조금 전까지 울어서 생긴 눈물 자욱 등으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다. 복근이 창수를 힐끔 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창수는 정복자다운 입장에서 중얼거렸다. 난 너를 용서한다. 너는 밀고자가 아니다!

  가출 학생들의 취조를 도맡고 있는 옆 반 선생님이 창수 앞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된 것인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봐.”  

  빨간 바탕에 검은 꽃이 그려진 티를 입은 선생님은 늘 입고 다니던 팔꿈치에 가죽을 댄 골덴 마의를 의자에 걸쳐놓고 있다. 기가 질린 창수는 말을 더듬는다. 창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창수는 처음 복근이와 만나게 된 일부터 구영회관에서 민성이와 만난 일, 그러다 나중에 같이 가기를 거절했던 일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야?”   

  선생님이 주는 공포 때문에 창수는 예, 하고 대답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창수는 용희를 통해 그들의 가출을 말렸다는 것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그것 때문에 용희도 사건의 증인으로 교무실에 불려온다. 용희는 고개를 숙이지도 어깨를 움츠리지도 않고 걸어 들어온다. 진술을 할 때도 그렇다. 용희는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듯 분명하고 또렷한 말투를 구사한다. 그런 용희가 창수는 부러웠다. 용희는 분명 나와는 달라. 나는 불순물이 섞인 인간이야.   

  영수는 늘 창수를 용희와 비교해서 말하곤 했다. 영수에게도 용희는 남자다움을 갖춘 남자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이후 창수는 형의 말대로 용희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했고, 용희가 친구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거의 존경심에 가까운 눈초리로 보았다. 창수는 용희가 말하는 어투를 흉내내게 되었고, 모자의 한쪽을 눌러쓰고 한쪽 손을 교복 바지 주머니에 찌르는 버릇을 들이려 했다. 그렇지만 창수는 조금도 달라지지 못했다. 창수는 여전히 불순한 공상을 하고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다행히 용희는 진술을 마치자마자 다시 교무실 밖으로 나간다. 사실 용희는 우연히 도망자들의 모의를 알았달 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창수에게 다가온다.  

  “자, 일어나서 따라와.”

  창수는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 밖의 복도로 나간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듯 선생님은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창수는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창수는 선생님을 믿고 의지한 적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모습을 떠올린 적도 없다.  

  “학기 초에 가정방문 갔을 때 부모님이 너를 잘 봐달라고 하면서 곶감까지 주셨는데, 왜 그런 짓을 생각하게 된 거야? 집이 싫었어?”  

  “아버지는 매일 술 드시고 고함지르고 공부 좀 할려면 불 끄라고 하고, 형은 형대로 공부하라고 때리고 괴롭히고.”

  숨기고 싶었던 집안 일을 털어놓게 되자 창수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이건 엄연히 도피야. 사람은 누구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다들 참고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사람이 없을 경우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아픔이나 상처를 생각해서 말이야. 어찌되었든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어. 자, 열 대만 맞아, 엎드려!”  

  선생님의 말대로 창수는 창틀에 엎드린다. 하지만 엉터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선생님은 창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 못해.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엉터리야, 엉터리! 그리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현실이 창수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시시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짓들로 보였다.

  창수의 엉덩이에 매가 떨어져 내리며 탁 탁 소리를 낸다. 창수는 조금도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자, 들어가자!”  

  선생님의 뒤를 따라 창수는 교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그 때 수업을 마친 여 선생들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들이 여자임에 창수는 더욱 부끄러워진다. 이제 나는 이들의 사랑을 엿볼 수 없게 되었어. 이들은 이 일을 쉽게 잊지도 않을 것이고,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고 날 볼 수 없을 거야. 창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 때 누군가가 건너편 책상에서 굵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창수에게 들려온다.

  “바로 저 놈이 주동자라구.”

  나무통처럼 굵고 허리가 굵고 키가 작아 드럼통처럼 생긴 교감 선생님이다. 교감 선생님의 집게손가락은 창수를 가리키고 있다. 주동자, 주동자라구? 창수는 무리 속에 있기를 원한 적이 없고, 무리를 이끌려고 한 적도 없다. 주동자, 처음으로 접해보는 말의 충격에 창수는 잠시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무감각하게 보아 넘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일을 언어로 지칭했을 때 그것은 그 때부터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어떤 경우에 사용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여태까지 그것에 사람들이 부여한 수많은 느낌까지 실어 온다. 주동자라는 말은 원래 있던 용기에서 나오자마자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조사가 끝나자, 취조 담당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창수와 도망자들은 팬티와 런닝만을 걸친 채 교실 밖으로 나온다.  

  “자, 다 같이 운동장 열 바퀴를 돈다. 실시!”  

  그들은 열을 지어 운동장을 돌기 시작한다. 채 몇 미터도 가지 않아 창문으로 사람의 머리가 하나씩 둘씩 나온다. 그들이 팬티와 런닝 차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가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한 전교생은 눈과 귀를 그들에게 집중시켰다. 이 장면을 못 보면 영원히 후회한다는 듯 유리창이 검게 바뀔 정도로 빽빽이 달라붙는다.  

  운동장을 도는 동안 창수는 힘들거나 숨이 차지 않았다. 그러나 팬티와 런닝만을 걸친 채 모든 학생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싶을 만큼 절망감을 준다. 창수는 옆과 뒤를 돌아본다. 놈들은 어떤 기분일까. 제일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달려오는 민성이를 제외한다면, 다른 세 명의 도망자들은 조금도 풀 죽은 모습이 아니다. 서로 쳐다보며 시시덕거리기도 하고 창가에 서 있는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는 등 의기양양하다. 그들의 뻔뻔스러움이 창수는 저주스러우면서도 부럽다.   

  그들은 정학을 당한 일주일 동안에도 의기양양했다. 나무에 거름을 주고 풀을 베면서도 학생들을 만나면 아주 자랑스럽게 도회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말했다. 도회지에서 보았던 신기한 것들, 짜장면을 배달하던 때의 일들 따위에 허풍을 섞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다른 학생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반면 의외의 인물이었던 창수는 가출을 하려했던 문제아로서, 친구들을 배신했던 자로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였다.

이전 14화 무대일가 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