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돌아가는 길에도 이유가 있다

by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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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며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내가 운전대를 잡든, 누군가의 옆자리에 동승해 있든

길을 잘못 드는 순간, 나는 으레 이렇게 말하곤 한다.


"괜찮아. 어차피 길은 다 연결되어 있어.

덕분에 새로운 길도 가보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같은 상황 앞에서도 반응이 전혀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된다.


조금만 돌아가도 "아, 짜증 나. 이 길은 또 어디야!"

여행 얘기를 꺼내면 "거긴 너무 멀어서 피곤해."

맛집에서조차 "생각보다 맛이 너무 별로네."


불편함이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들.

그 틈에서 즐거움은 자리를 잡기도 전에 길을 잃어버린다.


물론 그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살다 보면 피곤한 날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스러운 순간도 있다.

하지만 늘 부정부터 쏟아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느 순간 내 마음에도 불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즐거워야 할 여행도, 가벼운 식사도,

산책처럼 소소한 순간들까지

마치 '잘 해내야 하는 일'처럼 느껴져

조금만 엇나가도 분위기가 금세 서늘해진다.


타인을 향한 존중 없이

모든 상황을 자기 기준으로만 해석하는 사람.

작은 불편함조차 견디지 못하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주변에 쏟아내는 사람.


말의 기운은 공기 같아서

보이지는 않지만 금방 퍼지고, 쉽게 스며들고, 오래 남는다.

처음엔 "오늘 무슨 일 있었나?" 하고 넘기던 이들도

몇 번 더 마주하다 보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처럼 몸이 먼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길을 잘못 들어도

"어? 이런 길도 있었네." 하고 웃어주는 사람.

음식이 예상과 달라도

"새로운 맛인데? 괜찮다."라고 여유를 내는 사람.

비가 와도 "비 오는 여행은 또 다른 운치가 있지." 하며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똑같은 풍경도 더 따뜻하게 보이고,

똑같은 하루도 한결 부드럽게 흘러간다.


생각해 보면 삶은 언제나 운전과 닮아 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갈래에서 멈춰야 하고,

처음 보는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그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

그저 처음 가보는 길일뿐이라는 걸

나는 운전을 통해 배웠다.


실수한 길 앞에서 타박부터 건네는 사람인지,

그럴 수도 있다며 웃어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보며

도착할 곳과 그 사이의 풍경을 믿고 걸어가면 좋겠다.


불평보다 가능성을,

불만보다 방향을 보여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삶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언제나 더 따뜻한 쪽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돌아가든, 헤매든, 잠시 멈추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과 걷는다면

내가 가는 길은 결국

어김없이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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