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기다리던 어른에게로

by 봄볕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어릴 때의 내가 사십이 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작은 운동화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앞으로 씩씩하게 선

어린 내가

해맑은 미소로 물어온다.


"거긴 행복해?"


어릴 적 나는 마음이 쉽게 다치면서도

금세 다시 앞으로 나아가던 아이였다.


그때의 용기가 세상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엔

나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단단한 심지가 있었다.


그 힘으로 나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두려움 없이 계속 걸을 수 있었고,

멈춰 서면 다시 시작할 방향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남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먼저 스스로를 믿는 힘이 약해졌다.

남들의 평가에 갈대처럼 흔들리다 보니

결국은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밀어 두고,

나를 돌보는 일마저 어색해지면서

나는 조금씩 나에게서 더 멀어졌다.


그러다 문득,

잃어버린 나의 한 조각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두고

오랫동안 멀리 걸어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떨어져 있던 조각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의 용기를 품고,

휘청거려도 다시 일어서던 오뚝이 같은 힘을 간직한 채.


세상의 기준보다

내 마음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걷던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은연중에도 놓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어릴 적 기대했던 어른은

지금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막연히 상상했던 어른은

여유롭고, 단단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슬픔에도 중심을 잡고,

불안에도 기댈 어깨 하나쯤은

스스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생각보다 자주 흔들리고,

남들의 말 몇 마디에도 마음이 조각나고,

때론 사소한 일 앞에서도

어른인 척 숨을 고르는 데에 온 힘을 쓰곤 한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굳건해지는 일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계속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버티는 마음과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일.


문득,

그 작은 아이가 내게 다가와

먼지 묻은 손바닥을 내밀며

조용히 속삭인다.


완성된 어른의 모습이 아니어도,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나여도 괜찮다고.


나는 그 말에 기대어

이렇게 대답하며 나아가고 싶어진다.


"응, 여기도 괜찮아."


서툴고 흔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려는 지금의 내가

어쩌면 그 아이가 가장 바라던

어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대답을 허공에 띄워두고

아주 오래도록 천천히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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