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길은 잃어도 마음은 잃지 않으려는 너에게

by 봄볕
AdobeStock_350576900.jpeg


운전을 하다 보면 길을 잘못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곤 한다.

“괜찮아, 어차피 길은 다 연결되어 있어.”

대단한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황하고 조급해질 마음을 먼저 붙잡아 두기 위한

작은 주문 같은 말이다.

이 말을 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루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연신 짜증을 내다가,

무심코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게 되었다.

잔뜩 일그러진, 낯선 표정.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서야 내가 뱉어낸 불평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와

결국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을 안내해도

“덕분에 새로운 길도 가보네.” 하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높여보는,

그런 사소한 변화들 말이다.

여전히 길은 막히고,

예상은 자주 빗나가지만

그 안에서 내가 머무는 마음의 결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삶도 그렇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한 교차로에 멈추게 되고,

처음 가보는 길로 들어서게 되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종종

이 길이 잘못된 건 아닐까,

지금 내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쉽게 의심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쪽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처음가보는 길이라는 사실과

아직 알 수 없다는 여지.

비록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도,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일지라도

내가 마음의 방향만 놓치지 않는다면

이 길 역시 어딘가로 이어져 있을 거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익숙하지 않은 길 위에서

조용히 같은 말을 되뇐다.

“괜찮아, 어차피 길은 다 연결되어 있어.”

아직은 그 말을 완전히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3화53. 기다리던 어른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