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다는 말이 가장 아팠다._ 힐링에세이
고등학교 시절,
H라는 친구 집에 처음 놀러 간 날이 떠오른다.조막만 한 몸집에 반달 같은 눈웃음이 참 포근했던 어머니를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사정이 있어 H의 자취 집에서 몇 달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맛있는 간식을 들고 와 내게 건네곤 하셨다. 사회에 나온 뒤 가끔 H를 만나면 늘 친구에게 "꼭 좋은 거 사 먹이고 보내."라며 신신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내 결혼식 날엔 축의금까지 따로 챙겨 보내 주실 정도로 참 살뜰하셨다.
나는 그 따뜻함이 늘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했다.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늘 이기적이었다.
"언젠가는 꼭 찾아뵐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시간을 미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명절이 되면 가끔 생각이 나 어머니께 안부 인사를 드렸지만,
"조만간 꼭 찾아뵐게요."
그 약속은 늘 말 뿐으로 매듭 됐다.
한 번은 죄책감에 건강식품을 주문해 H의 가게로 보낸 적이 있다. 그날, 어머니는 내 선물을 받고 많이 우셨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또,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그리고 1년 뒤,
어머니가 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결혼식 날,
마약성 진통 패치를 붙이고도 끝까지 결혼식을 지키던 가녀린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어머니는 가족사진 촬영을 앞두고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같이 찍자. 넌 내 딸이니까."
그렇게 친구의 결혼식 앨범, 가족사진 속에 나는 함께 담겼다. 그날 이후, 두어 번 더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난히 날씨가 좋던 어느 날, 어머니의 부고장을 받았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나는 참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늘 곁에 있을 거라 믿었기에, '나중에 가도 되겠지?'라는 핑계로 약속을 미뤘다.
세상엔 지키지 못한 '조만간 보자.'의 약속들이 흩어져 있다.
'마음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고.'
'보고는 싶지만, 아직은 바빠서.'
그렇게 미뤄진 말들이 '조만간'이라는 인사 속에 결제되지 않은 장바구니처럼 쌓여간다.
누군가 말했다.
시간이 남아야 만나러 가는 사람은 진짜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고, 진짜 소중한 사람은 시간을 내서 만나러 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생각한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 늦기 전에 시간을 내야 한다.
후회로 남기기 전에 지금, 발을 내디뎌야 한다.
때로는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그 짧은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다시 이어 줄지도 모른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