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에세이
"내 인생 망해버려 참 잘됐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인생이 망했다는데, 그게 어떻게 잘된 일일까?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엔 '망했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의외로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 된다.
전날 새벽까지 벼락치기하고 들어간 시험.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쓰던 펜마저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문제를 풀다 말고,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
"아씨, 망했다."
그날 시험은 정말 망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다음 시험만큼은 절대 벼락치기하지 않겠다 다짐했고,
공부 계획표도 다시 꼼꼼히 짰다.
그렇게 나는 공부법도 몰라 전전긍긍하던 학생에서,
좋아하는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매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돌아보면,
그날의 '망했어'가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나은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는데,
괜히 농담처럼 말하다가 분위기를 망친 적도 있었다.
친구는 내 말을 오해했고,
우리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돌아서며 조용히 후회했다.
"아씨, 괜히 말했어."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진심을 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억지 웃음 뒤에 숨지 않고,
조심스레 차분히 내 마음을 꺼내는 연습을 했다.
말이 망한 날,
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했던 날도 있었다.
내 마음 다 줬다고 믿었는데,
돌아온 건 차가운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날 밤,
"진짜 사람 잘못 봤네. 사람 보는 눈도 참 없지..."
하며 혼잣말을 삼켰다.
그 관계는 끝났지만,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갔다.
상처도 내 일부가 되었고,
신중함은 나의 무기가 되었다.
사람을 믿는 일은 더 조심스러워졌지만,
나는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큰 기대를 안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고,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지인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워,
"망했다..."는 말을 몇 번이고 삼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실패가 없었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과연 알 수 있었을까?
망했다고 믿었던 퇴사 이후,
오히려 나다운 일을 찾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길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가장 솔직한 신호,
그게 어쩌면 '망함'일지도 모른다.
모든 일이 꼬이고,
의욕도 사라지고,
하루가 엉망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튀어나온 말.
"진짜 내 인생 망한 거 같아."
그 말 끝에 찾아오는 정적.
그 침묵 속엔,
아주 조용히 움트는 작은 변화가 있다.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병원 진료실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 한 장만으로도
다시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망했어도, 잘됐다고.
우리는 종종 "망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의 끝엔
언제나 조금 더 나은 '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후회도, 체념도, 자책도
겪어본 사람만이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망했기에 다시 시작하고,
망했기에 길을 틀고,
망했기에 더 단단해진다.
그러니 가끔은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씨, 망했네!"
그리고 조용히 덧붙이는 말.
"... 근데 또다시 살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