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가운데,
양말 하나가 뒤집힌 채 놓여 있다.
잠에서 덜 깬 남자가 방에서 나오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머리 위로
빨래바구니를 들어 사정없이 내용물을 쏟아붓는다.
"양말 뒤집어 벗지 말랬지.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내가 니 양말이나 빨라고 있는 사람이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여화정이 남편 장영국에게 감정을 쏟아내던 장면이다.
양말 하나를 향한 분노였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훨씬 더 깊고 복잡했다.
그날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이라면,
그게 단지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존중도, 사랑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시간 속에서
끝내 눌러두었던 감정이 그녀의 말한마디,
굳게 다문 표정에서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흔들었다.
사람의 감정은 늘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 터져 나온다.
뒤집힌 양말,
씻지 않고 놓아둔 컵,
늦은 연락 한 통.
겉으로 보면 별일 아닌 일들이
안에서
오랫동안 쌓여 겹겹이 상처를 보듬고 있다.
덮어둔 채 지나온 침묵들,
처음엔 그저 작고 가볍게 여겼던 서운함들.
그래서 대부분은 애써 넘기려 할 것이다.
별일 아니라며,
괜히 쪼잔해 보일까 봐.
혹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상대에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오면
'말해도 달라질 게 없겠지' 싶은 체념,
'이런 감정조차 이해받지 못하겠지'하는 두려움이
조용히 마음속에 눌러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참아왔던 마음이
양말 하나를 빌미로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묻는다.
"갑자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터진 건 양말 때문이 아닌데,
사람들은 되레 그 순간만을 문제 삼는다.
그 마음이 벼랑 끝에 다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여 있었는지는 돌아보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장면만을 보고
너무 쉽게 말해버린다.
사람의 마음은 타이어를 닮았다.
달리던 중에 생긴 작은 구멍은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서서히 약해져 간다.
그러다 속도가 붙거나
길이 조금만 거칠어져도
결국엔 감당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끝내 완전히 터져버리고 만다.
오래 참고 굴러온 마음은
그렇게 큰 굉음을 내며 찢어지고 만다.
대부분은,
사소한 일에 감정이 터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있었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쌓이고, 눌리고,
혼자 견디던 그 끝에서
마지막 한 조각이 무너져 내린 것뿐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사소한 일에 유난스러워 보일 때,
그 감정의 뿌리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안의 작은 구멍들 역시
그냥 덮어두지 말고,
한 번쯤은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괜찮은 척하며 지나온 마음들이
더 깊어지기 전에,
혼자 참고 넘기느라
다 잃어버리기 전에,
괜찮은 척 지나온
당신의 그 마음,
너무 늦지 않게 꼭 한번,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