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익숙한 것들과 멀어질 때

by 봄볕

'라테는 말이야'

처음엔 그저 참신한 유행어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려왔다.


예전이 더 좋았다는 그리움으로.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낯섦으로.

그리고 세상이 너무 빨라졌다는,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나는 아직 거기까지 못 따라갔어.'

차마 꺼내지 못한 속마음이

익살스럽게 농담처럼 고개를 내민다.


변화 앞에선 늘 유연하지 못했던 나.

익숙한 걸 좋아했고,

새로운 것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멈칫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가장 최근엔, 베스킨라빈스 키오스크 앞에서 그랬다.

끝없이 펼쳐지는 화면 속 메뉴,

어디를 눌러야 할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았다.


길어진 줄을 보자 조급함과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

조용히 자리를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카페 메뉴판 앞에서도 비슷한 순간을 겪는다.

청포도 에이드, 자몽허니블랙티, 애플망고요구르트.

예쁘고 감성적인 이름 앞에서 늘 당황이 먼저 올라온다.


'이 중에 뭘 고르면 실패하지 않을까?'

'너무 달면 어쩌지?'

'크림이 올라가 있는 건가?'

별일도 아닌 선택 하나에도 머릿속은 괜히 바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책상 위 슬라임을 치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연하게 모양을 바꾸는 슬라임처럼

나도 단단히 굳지 않고,

펴지고, 접히면서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요즘은 왜 이토록 낯설고 버겁게 느껴지는지.


카톡 하나 보내는 일도,

처음 듣는 유행어를 따라가는 것도,

새로 바뀐 어플에 적응하는 것도,

아주 작은 변화 앞에서

마음은 쉽게 지치고야 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조금 더 빠릿했고,

조금 더 능숙했던 것 같아서.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지금을 살아낸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을 건너고,

도망치고 싶던 마음도 눌러가며

완벽하진 않아도 유연한 모습으로.


어떤 날은

뒤처지는 것 같아 마음이 작아지고,

또 어떤 날은

눈앞에 일조차 괜스레 버겁게 느껴지겠지만.


그 모든 날을 지나고 나면

내일은 또 어김없이 나를 맞이할 것을 안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닌 하루였겠지만,

나에겐 작은 용기가 필요했던 하루.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버텨낸 나에게

오늘은 조용히 이 말을 건네고 싶다.


괜찮았다고,

정말 너를 응원한다고.


나는 오늘도 흔들리고, 머뭇거리지만


조금 느려도,

조금 서툴러도,

내 마음 다그치지 않게

다정히 안아주면서.

다시, 한 번의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모양을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슬라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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