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업계의 영업사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뉴스를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이어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그 사람이 네 남편은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연락들.
그때의 숨이 턱 막히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신랑도 같은 업계, 같은 영업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한 때, 그도
상사의 차가운 말 한마디,
매일같이 쌓이는 실적 압박,
예상하지 못한 지속된 승진 누락,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고립감 속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퇴근 후 돌아온 얼굴은 늘 무표정이었다.
말없이 밥을 먹고,
불 꺼진 방, 커튼마저 닫은 채
오랫동안 그는 아무 미동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 요즘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어느 날, 조용히 꺼낸 그의 말.
죽고 싶다는 외침보다 더 아픈 고백이었다.
그 말 안에는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한 마음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많지 않았다.
그저 곁에 머무는 일이었다.
밥을 차리고, 퇴근을 기다리고,
둥을 토닥이며, "나 여기 있어."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
하지만 그를 다시 세운 건,
나 혼자만의 손이 아니었다.
작장 안에도 그를 끝까지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무거운 침묵을 의심하지 않고 지켜봐 준 팀원들.
무너지는 마음을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손을 내밀어준 상사 한 사람.
그들이 있었기에,
무너지던 마음이 조용히 멈출 수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다.
이기적인 말 대신,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
잘못을 따지기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
우연히 그 시절 즈음, 한 곡의 노래를 들었다.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생일날 살구꽃이 피어서야."
그 문장이 마음 깊숙한 곳을 찔렀다.
죽고 싶다는 말이,
너무 사소한 이유로 들려서.
그래서 더 슬펐다.
갈매기가 울어서.
신발끈이 풀려서.
당신이 너무 아름답게 웃어서.
그건 나와 상관없는 세계 같아서.
그래서 더 외로웠다고,
노래는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 노래 가사와 참 많이 닮아 있다.
청년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괴롭고,
중년은 삶의 무게에 지쳐 말을 잃고,
노인은 더 이상 불러줄 이름이 없고,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익숙해져 간다.
학생은 성적 때문에 울고,
직장인은 실적 때문에 무너지고,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를 잃고,
아빠는 가장이라는 무게 앞에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그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모두가 조금씩 상처 입은 채 살아간다.
누군가 '죽고 싶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당황해서 얼버무린다.
"그래도 살아야지."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 말들은 위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때론 너무 날카롭고, 너무 성급하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아니라
상처에 바르는 소금 같을 때가 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진심 어린 한숨 하나가,
억지로 내민 희망보다 더 나을 때가 있으니까.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죽을 각오로 살아보라고.
하지만 이미 죽음의 문턱에 발을 걸친 사람에게
그 말은 너무 멀고, 너무 무정하다.
삶을 떠나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거대한 절망이나 드라마 같은 사건이 아니어도,
사람은 무너진다.
그저 너무 외로워서.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내가 사라져도 아무 일 없을 것 같아서.
매일 똑같은 하루가 나만 빼고 흘러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무너진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하지만 반대로,
살아남는 데에도
대단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그 노래에서 배웠다.
단 한 사람의 말.
뜻밖의 전화 한 통.
눈 맞추며 웃어주는 사람.
아무것도 아닌 듯 건넨 말 한마디에
사람은 다시 살아갈 마음을 품는다.
결국 사람은
삶을 버틸 이유를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작고 다정한 것들에서 찾는다.
햇살 한 줌,
창밖에 핀 꽃 한 송이.
따뜻한 국물 한 숟갈,
그리고 "너 때문이 아니야."라는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
그것이면 충분한 날이 있다.
그 손이 있었기에,
신랑도 지금을 살아내고 있고,
웃음을 되찾았다.
마음은 말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마음은
거대한 사건보다,
작은 외면 하나에 더 쉽게 부서진다.
그러니 우리는,
말없이 사라져 가는 마음들을
조금 더 자주 바라봐야 한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살아갈 이유가 되니까.
죽고 싶었던 이유들이
그토록 작고 조용했다면,
살아가야 할 이유도
그만큼 작고 조용한 것에서
충분히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오늘을
붙잡고 있는,
살구꽃 한 송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