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사랑받고 싶던 너에게.

힐링 에세이

by 봄볕

타인의 문제가 방송을 탈 때,

때론 우리는 너무 쉽게 관찰자이자 판사 같은 입장이 되곤 한다.

아동 심리를 공부하던 시절,

'금쪽같은 내 새끼'를 즐겨 보던 나 역시 그랬다.

얽힌 실타래처럼 어둡게 흔들리는 부모들의 눈빛을 보며

적당한 거리에서 동정의 한숨을 내쉬고,

화면 속 불행을 유리창 너머의 비바람처럼 구경하곤 했다.

그런 나의 오만한 시선이 산산조각 난 것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그 화면 속에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등장한 날이었다.

그곳에서의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한 채 충동에 휘둘리며,

수업에도 전혀 마음을 두지 못하는 낯선 아이로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속이 상해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내가 아는 그 아이는 분명 달랐다.

수업 시간에 눈을 맞추며 귀엽게 웃을 줄 알았고,

애교 섞인 말투로 내 입에 간식을 쏙 넣어주며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하고 와락 안기던 다정한 아이였다.

물론 참을성이 바닥나는 날도 있었지만,

언제나 화면 속 모습처럼 막무가내인 아이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방송은 아이의 수많은 조각 중

가장 극단적인 단면만 떼어내어 보여주고 있었다.

편집의 가위질은 내가 알던 다정한 순간들을 무참히 잘라냈고,

아이를 단 하나의 문제로 압축시켰다.

방송을 보는 내내 묘한 불편함과 안타까움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TV 화면이 꺼지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문제'란 결국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얼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난 찰나의 단편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너무 쉽게 재단하고 평가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를 함부로 문제라 부르는 건

그저 내 시선이 머문 찰나가

하필 그 사람의 가장 춥고 시린 겨울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누군가의 삶을 섣부른 가위질로 편집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매서운 겨울을 견뎌낸 이에게 기어이 봄꽃이 피어날 때까지,

한 사람의 온전한 사계절을 그 계절대로 볼 줄 아는

깊고 다정한 눈을 가진 어른이 되기를.

오래도록

그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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