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45년. 4학년에 진급하여 한자(漢字)도 배우기 시작하고 일본 역사(歷史)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모두들 잔뜩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으며, 여름 방
학인데도 근로봉사(勤勞奉仕)를 위해 학교에 가는 일이 많았다.
그 날이 8월 15일이었는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에 없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분명 못 부르게 한 조선 노래인데.....2층의 상급생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오면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열려진 유리창 너머로 활짝 웃는 그들의 모습 속에는 기쁨이 가득 차있었다.
“야들아 나와. 일본이 항복했단 걸 모르냐?”
“일본이 항복했단 말이여.”
“.......”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일본이 전쟁에 졌다는데 왜 저리도 좋아한단 말인가? 매월 8일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에는 전쟁에 대한 칙어(勅語)를 읽으며 일본의 승리를 다짐하고, 그날도 등교할 때, 아직 짓고 있는 운동장 동쪽의 봉안전(奉安殿)을 향해서 경례를 하였으며, 그토록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많이 했는데 일본이 항복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은 일터에 나가지 않고 상급생들은 우르르 교문 밖으로 몰려나갔다. 영문도 모르고 우리도 따라 나갔다. 조선말로 마음껏 떠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훌륭하신 천황폐하가 도깨비 짐승같은 미국 영국(米英)에게 항복(降伏)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일로(日露) 전쟁 때의 영웅 *とぅごけんすい(東鄕元帥=도고원수)와 *のきたいしょう(乃木大將=노기대장)의 자손인 일본, 육탄3용사나 오장(伍長=하사?) 마쓰이 히데오(松井 )와 같은 かみかぜ(카미가제=神風) 특공대(特攻隊)가 옥쇄(玉碎)하는 일본이, 야만적인 귀축(鬼畜) 미영(米英)을 쳐부수지 못하고 전쟁에 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거리의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아부지, 왜 우리나라가 졌다요?”
“이 놈아, 우리나라가 아녀.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란 말여.”
“...........”
“우리나라는 조선이여. 우린 조선 사람이여. 이젠 독립된 거여.”
“...........”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이제는 조선말을 써도 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떠졌다. 조선 말 쓴다고 매 맞고 벌서는 일이 없다니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천황 내외(內外)의 사진과 かみだな(가미따나=神棚)를 뜯어내고, 국기함(國旗函)에서 일장기를 꺼내어 버렸다. 나는 가슴이 떨렸으나,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는 듯했다.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서 기쁜 얼굴로 떠들었다. 다만 일본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고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우리 조선이 일본에게 36년 동안이나 억눌려 살아왔는데, 이제는 독립(獨立)을 했으니 일본 사람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우리 조선 사람들끼리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었다. 처음으로 조선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백로지(白鷺紙=갱지(更紙))에 커다란 조선반도 지도를 그려서 가게 유리문에 붙였다. 그러나 어느 날 총부리에 칼을 꽂은 일본 군인이 오더니 당장 떼라고 소리쳤다. 물론 떼어냈다. 쫓겨온 일본 관동군(關東軍) 패잔병(敗殘兵)이라고 했다.
비행기가 날아와서 전단(傳單)을 뿌렸다. 이것을 주워보려는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8월 6일과 8일 각각 ひろしま(히로시마=廣島)와 ながさき(나가사끼=長崎)에 원자탄(原子彈)이 떨어지고,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히로히도(裕仁) 천황이 연합군(聯合軍)에게 항복선언을 했으며, 따라서 조선은 해방되고 독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이 사실을 확인한 무리들은 거리에 나와 어깨를 펴고 큰 걸음으로 걸으며 만세를 불렀다.
아버지는 재빨리 인쇄(印刷) 기구를 만들었다. 태극기(太極旗)를 찍어내기 위함이었다. 나무
로 태극(太極)과 사괘(四卦)를 잘라 붙이고 그 위에다 고무를 덧붙인 것인데, 빨강, 파랑, 검정 물감을 묻혀서 미농지(美濃紙)에 한 장씩 찍어내는 것이다. 나도 옆에서 도와드렸다. 빨강 파랑 태극이 꼭 들어맞지 않고, 잉크 짙기가 고르지 못했으나 아버지는 신나게 일을 하였다. 3.1 독립만세 운동 때도 이렇게 찍어낸 태극기로 만세를 불렀겠지.
*태극기! 태극기가 우리 조선의 국기라니 ひのまる(히노마루=日の丸=日章旗)보다 훨씬 멋있었다. 그러나 태극이나 네 개의 괘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며, 그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어떤 이는 괘가 넷이 아니라 여덟이라야 된다고 하면서도, 그 자리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본 강점(强占)하던 해 출생했는데, 어떻게 태극기를 알고 있었을까? 1919년 독립만세 때도 아직 10살이었는데, 그 때 보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궁금하다. 태극기는 박영효(朴泳孝)가 1882년 일본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건너갈 때 배 위에서 만들어, 도착한 직후부터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 후 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무튼 태극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해방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우리가 만든 태극기가 거리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부지, 우리나라 이름이 뭐라요?”
“글씨...조선이재”
글쎄라니 어찌된 일인가? 사람들이 들고 나온 프랑카드(placard)에는 ‘大韓獨立萬歲!’ 라는 것도 있고, *‘대동진공화국(大東震共和國)’이라고 씌어있는 것, ‘朝鮮’ 등 별별 글자가 우리들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태극기도 역시 가지각색이었다.
학교가 어수선했다. 이제 일본 사람을 왜(倭)놈이라야 한다고도 했다. 키가 작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장이는 矮다) 왜놈 교장이 한국인 선생들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둥, 왜놈 선생들은 모조리 잡혀갔다는 둥 끝도 갓도 없는 소문들이 파다했다. 아닌게아니라 3년 동안이나 우리를 담임했던 ながさき(나가사끼=長崎) 선생이 안 보이는 게 아닌가? 그가 왜놈이라는 말도 있었고, 조선인인데 나쁜 친일파(親日派)란 말도 있었다. 아무튼 그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선생님을 보지 않게 되었다니 훌훌 날아갈 것 같았다. 그 대신 이(李)선생이라는 연세가 지긋한 분이 가르쳤다. 학도가(學徒歌)를 가르쳐주셨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壁上)에 괘종(掛鐘)을 들어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오니
인생의 백년각(百年刻)이 순간 같구나.
오르간(organ)도 치지 않고 느릿느릿하게 가르쳐주셨는데, 노랫말이 참 어려웠다.
산곡간(山谷間)에 흐르는 맑은 물가에
저기 앉은 저 표모(漂母) 방망이 들고
이 옷 저 옷 빨 적에 하도 바쁘다.
해는 져서 어두워 서산을 넘네.
이런 노래도 가르쳐 주셨다. 아무 거리낌 없이 조선말로 가르치는 그 모습 속에서 그야말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을 느꼈다.
출석부(出席簿)가 다시 만들어졌다. 물론 되찾은 우리 성명이었다. やまくちれんしゅ(야마구찌렌슈 =山口連洙)는 최연수(崔連洙)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련수’라고 했다가 ‘년수’
라고 했다가 한 동안 갈팡질팡 하였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연수라고 부르니 그렇게 쓰자 해서 ‘연수’로 결정되었지만, 흔히 있었던 일이었다.
“최 연수!”
“하이”
교실이 떠나갈 듯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거나 이름을 부르면 습관대로 일본말로 대답했던 일이 흔히 있었다. 오히려 조선말이 서툴러 일어를 섞어가며 말을 하다가, 선생님의 핀잔을 받거나 아이들의 비웃음을 받는 우스꽝스런 일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 말 구구단이 어려워, 일어로 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둡고 괴로워라 밤이 길더니
삼천리 이 강산에 먼동이 텄네.
동무야 일어나라 함께 나가자.
산 넘어 바다 건너 현해탄 넘어.
아-아 자유의 자유의 종이 울린다.
노래다운 노래를 배웠다. 누가 지은 노랫말이요 곡인지 알 수 없으나, 학도가나 표모의 노래보다는 쉽고 재미있었다.
역사 있는 민족은 멸망이 없고
국가는 흥망성쇠 때가 있고나.
금수산 옛 터전에 봄이 오더니
삼천리 방방곡곡 꽃이 피도다
대동진 공화국 만세 만만세!
태극기를 흔들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는데 참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 모두가 이북으로 넘어간 작가의 노래라는 말도 있으나 확인된 건 아니다. 꿈에서도 황국(皇國) 신민(臣民)으로서 천황에게 충성을 다짐했던 우리가 어느새 반일(反日) 애국지사(愛國志士)로 돌변하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きみがよ(기미가요=君が代) 대신 이 애국가(愛國歌)가 스코틀랜드(Scotland)의 민요 곡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에 맞추어 불리어진 것은 한참 후이었고, 현재의 안익태(安益泰) 곡으로 부른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태극기(太極旗)...
흰색 바탕: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
태극의 원형:태일(太一) 곧 지극히 큰 하나로서 단일민족과 통일의 정신
태극의 음양(陰陽 �):우주의 근본인 태극이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어지고, 이 음양의 두 가지 힘으로 우주 만물이 창조되 듯 우리 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냄.
건괘(乾卦☰):하늘, 곤괘(坤卦☷):땅. 우리나라의 국운도 천지와 함께 ‘영원무궁’하자는 뜻.
이괘(離卦☲):해, 감괘(堪卦☵):달. 해와 달처럼 빛나는 나라를 만들자는 광명의 뜻.
*東鄕平八郞元帥(とぅごへいはちろ けんすい=도고헤이하찌로 원수)...1904년 러일전쟁 당시의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 원수.
*乃木希典大將(のきまれすきたいしょう=노기마레스끼 대장)...러일전쟁 당시의 일본 육군대장
메이지천황(明治天皇)의 죽음을 애도하여 자결함.
*きみがよ(기미가요=君が代)...임금의 치세(治世), 일본의 국가(國歌)
*대동진공화국(大東震共和國)...해방 당시 안동시 예안 장터에서는, ‘대동진공화국 만세!’를 외 쳤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