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둥 떠있기도 하고
외줄 타고 맘대로 재주부리고...
자넨 곡예사일세.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기도 하고
집을 짓기도 하고...
자넨 뛰어난 재줏군일세.
그런데 사람들은
개미․꿀벌보다 못 하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으니
자네 억울하지 않은가?
난 하나님 뜻대로 태어났으니
생긴 대로 가만 두세요.
자연대로 살고 있으니
있는 대로 가만 두세요.
너무 알아서 의뭉스럽고
너무 잘 나서 재주 피운 사람들.
탈놀음 작작 하고
민낯대로 바로 사세요.
어렸을 적에, 거미집을 거두어 매미채를 만들곤 했지만 허공에 매달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曲藝(곡예)와, 교묘하게 집 짓는 妙技(묘기)에 흥미를 가졌다. 그런데 6.25전쟁 때였다. 반동분자를 색출하는 공산당을 피해 마루 밑에서 은신해 있는데, 해묵은 먼지 투성이 거미줄이 얼굴을 감싸고 있어, 마른 기침과 頻尿(빈뇨)로 견딜 수 없었다. 한편 수복과 함께 복학하여 거처를 위해 어느 집 허술한 문간방을 가까스로 얻었다. 장판도 깔리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안은 거미줄로 꽉 차있었다. 그래도 이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정든 내 보금자리였다.
누에는 입에서 나온 분비물로 실을 뽑아내어 비단을 짜는데, 거미는 꽁무니에서 뽑아낸 실로 베를 짜는 것인지, 집을 짓는 것인지....길쌈을 잘 하는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한테서 배운 바 없는 특기라고 뽐내었다. 아테나는 이 건방진 아라크네의 교만의 죄를 알라며 짠 베를 그만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반성을 한 아라크네는 그만 나무에 목메어 죽었는데, 불쌍히 여긴 아테나는 그를 다시 살린 후 교만하지 말라며, 세상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매달린 채 계속 실을 짜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거미로 변신한 아라크네는 자기 몸에서 가느다란 실을 뽑아내며 매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다.
학창 시절 개똥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개미․꿀벌․거미등을 예로 들며 거미 철학을 부정적으로 평가절하한 사람들이 있었다. 뽑아낸 실을 되는대로 걸쳐놓고, 눈 먼 곤충을 기다리다 운 나쁘면 쫄쫄 굶는 合理論者(합리론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꿀벌은 있어야 할 곤충, 개미는 있으나마나한 곤충, 그러나 無爲徒食(무위도식)하는 거미는 있어선 안 될 존재라고 揶揄(야유)하는 것이다. 그럴싸한 이 비유를 생각하면서 종종 나를 비추어 보았다.
그러나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그 질긴 실을 이용하여 섬유를 만들 수 는 없을까 간혹 생각해보곤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고강도 첨단 신 素材(소재) 섬유 기술을 개발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 명예를 회복시키는 快哉(쾌재)가 아닐 수 없다. 해충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창조한 생물이요, 莊者(장자)에 의하면 있는 그대로 두라는 在有(재유)의 삶은 사는 생활철학자가 아닌가? 너무 알아서 탈이요 너무 재주 많아서 탈이요, 탈 쓰고 온갖 못된 짓 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