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눈이 앞에 있으니 망정이지
뒤에도 있었다면
앞으로 제대로 걸을까?
앞만 바라보고 달려도 버거운데
언제 뒤돌아볼 새가 있느냐고,
숨 가쁘게 달려왔노라.
나이 들어 걸음이 느려지면서
가다 쉬고 가다 쉬노라니,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되는구나.
그림자처럼 살아왔는데
무슨 발자국을 남겼다고,
뒤돌아보며 걸으니 게 걸음이구나.
게 눈처럼 움츠렸다가 나왔다가
백미러를 달고 앞으로 잘 걷는다지만,
게는 게 걸음이지.
어렸을 적에 머리 뒤쪽에도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뒤돌아보며 걷다보면 빨리, 똑바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이 앞에 있으니 망정이지, 뒤쪽에도 있었다면 우리 생활이 아마 몹시 분주하고 복잡했을 것 같다. 오히려 실수도 많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엔, 달리기 경주처럼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도 버거운데, 언제 뒤돌아볼 새가 있느냐며 인생 落伍者(낙오자)로 살지 않겠노라고 늘 다짐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걸음 걸이가 느려지고, 가다 쉬고 가다 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곤 한다.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과거에 執着(집착)하여 뒤돌아보게 되면, 미래를 바라보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을까?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고(창19:26), 손에 쟁기를 붙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는다(눅9:62)고 성경은 말 한다. 그리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빌3:13)고 바울은 고백했다. 未來指向的(미래지향적)인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龜鑑(귀감) 삼아 미래를 설계하게 된다. 뒤돌아보는 일은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함이지, 뒷걸음치자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백미러(back mirror)의 기능과 역할이 그것 아닌가? 그런데 이것에만 의지해서 앞길 보다 뒤쪽만 바라보고 운전한다면 사고의 위험은 뻔하다. 게 눈은 움츠렸다 나왔다 自由自在(자유자재)다. 그러나 앞으로 똑바로 걷지는 못한다. 그게 게 걸 음이다. ‘제 버릇 남 주랴’는 속담처럼 게 걸음 남 주겠는가?
600여 년전의 임진왜란, 100여 년전의 동학혁명, 70여 년전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서, 그 원인이 王朝(왕조)의 무능과 지도자들의 政爭(정쟁)․腐敗(부패)에 있음을 看過(간과)한 채, 충무공과 義兵(의병)의 애국심․충성심, 식민지의 피해만 浮刻(부각)시킨다면 역사의 偏見(편견)이고,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고자 하는 역사의 歪曲(왜곡)이요, 欺滿(기만)이다. 특히 지도자들이 게 눈같은 백미러를 달고, 이런 역사만을 뒤돌아본 채 앞을 내다보지 못하면 곧 국가의 위기다. 이렇게 게 눈을 달고 앞뒤를 잘 보고 있노라지만, 게처럼 옆으로만 걷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앞으로 똑바로 걸으라고 닦달하면, 게들이 열 손을 다 펴서 손뼉을 치며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