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식은 땀 흘리며 넘던
보릿고개 마루에 앉아,
파랗게 팬 보리밭 굽어보며
종달새를 쳐다보았지.
구름까지 치솟으며 우짖는 소리에
허기를 달랬지.
삼년고개 넘다 데굴데굴
이제 삼년밖에 못 산다고
꺼져가듯 한숨 쉬었지.
두 번 구르면 육년 세 번이면 구년...
얼마를 굴렀기에
팔순 고개까지 넘어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넘으며,
나를 두고 가신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못 잊어 불렀던 그 노래
이따금 불러보았지.
깔딱고개 마루에 앉아
내리막 길 굽어보니,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쉬운 길은 아니네.
학처럼 훨훨
하늘로 날아갔으면...
2차 세계대전 막바지와 40, 50년대 어린 시절, 하루 세 끼 밥 먹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 따라 들녘에서 나물을 캐다가 버무리를 해먹거나,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다가 묵을 해먹거나 메밀응이를 쑤어 먹곤 하였다. 특히 보릿고개를 넘을 때 몹시 힘들었다. 어서 보리가 파랗게 패면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어야 하는데...보리밭에서 하늘 높이 치솟으며 우짖는 종달새를 쳐다보면서 虛飢(허기)를 달래곤 하였다. 종달새는 어린 우리의 꿈이었다. 나의 동화 ‘보릿고개 종달새’는 바로 이 이야기다.
교과서에서 전래동화 ‘삼년고개’를 배웠다. 삼년고개를 넘다말고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면 3년 밖에 못 산다고 했다. 얼마나 절망했으랴. 그런데 두 번 구르면 6년, 세 번 구르면 9년...이 말에 용기와 희망을 갖고, 계속 굴렀다는 이야기다. 해방 후부터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삼년고개에서 미끄러져 굴렀다. 여․순(麗․順)사건, 共匪(공비)의 放火(방화), 특히 6.25 전쟁...3년은커녕 1년도 기약이 없는 절망의 세월! 이런 山戰水戰(산전수전) 다 겪으며 팔순고개까지 넘어왔으니 몇 차례나 굴렀을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민요를 입버릇처럼 부르며 자랐다. 우리 민족의 恨(한)이 서린 哀切(애절)한 離別歌(이별가) 같은데, 흥겹게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아리랑은 르완다 어 아리(ari) 곧 처녀요, 랑(rang)과 함께 失戀女(실연녀)라고 한다. 그리고 고개(gogora)는 갈린 곳 곧 발길이 잦아져서 깎이고 다져져서 길이 난 산등성이라고 하며, 아라리요(urina=과거형 uriye)는 아리랑이 산 너머 가버렸다는 의미라고 한다. 아무튼 나의 戀人(연인) 아리랑은 희귀하면서 콧대 높은 高等(고등)씨 집안의 생각이 깊은 考試(고시)양이었다. 줄다리기하다 情(정)만 주고 떠나간 짝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 지금도 이 노래를 이따금 부르곤 하지만, 옛 추억의 片鱗(편린)일뿐 부른다고 옛 사랑이 돌아오랴.
지금 90을 바라보는 깔딱고개 마루에 앉아있다. ‘꼬불꼬불 첫째고개...’부산 지역 언어유희 같은 민중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리막길을 굽어본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쉬운 길은 아니다. 고개 너머 또 고개 힘겹게 이 깔딱고개까지 넘어왔는데, 또 다시 아픈 다리를 끌면서 저 길을 걸어야 하나? 아니야, 학처럼 활짝 날개를 펴고, 훨훨 하늘로 날아가겠지....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 앞 길에 장애를 두려워 말라.
성령이 너를 인도하시리니 /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 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 앞에 기다려 서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