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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극

새우타령

by 최연수

점잖은 얼굴 우람한 허위대

인자한 웃음으로

바르고 착하게 백성을 다스린다.

송곳처럼 삐죽이 나온 저건

호랑이 발톱 아닌가?

검댕 칠한 얼굴 나뭇잎으로 가린 투구

번쩍이는 七支刀(칠지도)로

튼튼하게 나라를 지킨다.

두터운 저 발바닥

곰 발바닥 아닌가?

천사의 얼굴 함박꽃 웃음

왕 앞에서 굽실거리며

뭐라고 조아린다.

저 간드러진 웃음

암내 난 고양이 소리 아닌가?


야들야들한 얼굴 야무진 모습

맑은 산새들 목소리로

태평성대를 노래한다.

빨간 저 엉덩이

원숭이 엉덩이 아닌가?

고운 얼굴 호리호리한 몸맵시

홀리는 무희들의 눈매

왕자와 함께 광란의 춤을 춘다.

꽁무니를 흔드는 저 꼬리

여우 꼬리 아닌가?

울긋불긋 조명 아래

사람의 탈을 쓰고

넓은 무대를 누비는

동물 왕국의 가면극.

발 구르며 손뼉 치는 무리는

사람들 아닌가?




마스크를 쓴 관객들로 극장은 빈 자리가 없다.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가면극이라니, 두 눈이 모자랄 판이다. 막이 오른다. 돼지들의 등장을 예측했던 사람이, ‘동물왕국’이란 간판을 보고, “동물 왕국? 동물 농장인데...” 아마도 George Orwell(죠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예상했을 것이다. 이윽고 위풍당당한 왕이 인자한 웃음으로 등장, 善政(선정)으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런데 옷자락 사이로 삐져나온 건 호랑이 발톱이다. 검댕 칠한 얼굴과 나뭇잎 僞裝(위장)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나라를 튼튼히 지킨다. 슬쩍 비치는 발바닥이 곰 발바닥이다. 왕 앞에서 교활하게 조아리는 간신의 웃음소리는 고양이 목소리다. 귀여운 얼굴, 맑은 새 소리로 太平聖代(태평성대)를 노래하는 아이들. 바지 가랑이 사이로 드러난 건 빨간 원숭이 엉덩이 아닌가? 만취한 왕자와 함께 狂亂(광란)의 춤을 추는 絶世美人(절세미인) 舞姬(무희)들! 그런데 꽁무니와 함께 흔드는 저 꼬리는 여우 꼬리가 틀림없다.

넋을 잃고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관객이 더러 눈에 띈다. 사람들이 동물 탈을 쓰고 가면극을 할 줄 알았는데, 온갖 동물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가면극을 하고 있으니...막이 내리자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면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무리들이 태반이다. 아닌게아니라 평생 동안 언제 그런 가면극을 구경했으랴.

나도 탈 쓰고 춤추며 연기를 많이 했다. 민낯보다는 뻔뻔해서 쉽고, 관중들도 그 諷刺(풍자)와 諧謔(해학)에 빠져든다. 요즘 직경 0.1µm 밖에 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마스크를 쓴 채 결혼식을 해야 하는 희극을 보며, 그 바이러스를 막는 마스크의 위력에도 또한 놀란다. 나도 요즘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에 서 있어야 한다. 이렇게 防疫(방역)을위해 마스크를 써야하고, 塗裝(도장)한 집에서 化粧(화장)하고 살며, 僞裝(위장)한 채 싸우며, 扮裝(분장)하고 연극하며 假裝行列(가장행렬)로 축제를 하고, 變裝(변장)으로 竊盜(절도)하고 覆面(복면)하고 强盜(강도)질하며.....마스크 없이, 假飾(가식)없이 못 사는 이 失樂園(실낙원)을 창조주는 이미 알고 있었지 않았나.

人面獸心(인면수심)이라 한다. 낮엔 보육원에서 봉사하고, 밤엔 아동 성 착취를 하는 厚顔無恥(후안무치)의 鐵面皮(철면피)가 어찌 조주빈 뿐이랴. 지금 마스크를 쓴 채 이 가면극에 열광하는 관객 또한, ‘新唐書(신당서)’ ‘간신열전’에 나오는 人猫(인묘) 李義府가 되어, 무대 아래서 그 助演(조연)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Edgar Allan Poe의 ‘붉은 죽음의 가면 무도회’처럼 무대 아래서 붉은 죽음으로 죽어가거나, 시체 같이 창백한 가면을 쓰고 무도회에 잠입하여 왕자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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