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남의 것 훔친다고,
남이 버린 것 줍는다고
누가 손가락질하랴.
두리번거리며 부지런히 줍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휘휘한 들판
해가 설핏한데,
이삭을 줍는다.
시레기를 줍는다.
머릿속에 차곡차곡
가슴 속에 켜켜이
손아귀에 빠듯한
이삭들 시레기들.
내 금싸라기들.
이삭 줍던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건만.
“우리 조상은 넝마주이었나?”
후손들의 소곤거리는 소리.
요즈음은 헌 상자나 종이 종류를 리어커에 가득 싣고,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흔히 보는데, 이전에는 麻袋(마대) 자루를 지고 다니는 넝마주이라고 했다. 입지 못할 헌 옷을 넝마라 했는데, 헌 종이류와 함께 주워 모아 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렸을 적 농사철 외가에 가면 몹시 바빴다. 손이 모자라 나같은 고사리 손도 아쉽게 쓰이었다. 일이라야 고작 벼를 베고 난 후 휘휘한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이다. 88번의 손이 가서야 거둘 수 있는 귀한 쌀이라며, 한 톨이라도 귀한 판에, 이삭은 대단한 것이다. 소년 시절에는 프랑스 밀레(Millet)의 ‘晩鐘’(만종)과 ‘이삭 줍기’의 서양화를 흔히 보았다. 명화라고 했다.
6.25 전쟁을 겪고난 어려운 중학교 시절, 自炊(자취)를 했는데 밥도 밥이려니와 김치가 몹시 먹고 싶었다. 어느 해 가을걷이가 끝난 휘휘한 들판으로 갔다. 김장철이 되어 배추 무우는 거의 뽑고, 이곳저곳 시래기들만 널려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가방에 주워 담아 왔다. 훔쳤다면 도둑이요, 주웠으니 거지인데, 돌아와 소금에 절이고 고춧가루를 뿌려 김치랍시고 눈물과 함께 먹었다.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기사․멋있는 문장, 좋은 지식이나 정보를 스크랩하고, 雜記帳(잡기장)에 기록하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잡동사니 같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금싸라기요, 寶貨(보화) 가득한 倉庫(창고)다. 내가 연구하여 쓴 것이 아니고, 이삭 줍듯 시래기 줍듯 남이 흘린 것 줍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요할 땐 은행 예금 찾아 쓰듯, 꺼내어 요긴하게 쓴다. 역시 훔쳤다면 剽竊(표절)이요 도둑질이요, 주워 담아 썼다면 求乞(구걸)인 셈이다.
룻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고, 다윗과 예수의 조상이 되었지 않았나? 그런데 남이 흘리거나 버린 지식과 정보의 이삭과 시래기를 주웠던 넝마주이는 과연 누구의 조상이 될까? 내가 한 말, 내가 쓴 모든 글들은, 이렇게 해서 지어진 잡곡밥이요 시래기국이다. 시장할 때 먹어야 제 맛이 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