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07화

끼와 뻔뻔함

by 최연수

끼+뻔뻔함=쇼

이것은 늙어가면서 깨우친 공식이다. 원래 끼가 있는 데다가, 늙어가면서 뻔뻔해지다 보니 쇼를 할 수 있더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물론, 젊었을 적에도 ‘끼’라는 말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바람기(氣)’라면 바람이 부는 기운이지만, ‘바람기’라면 착실하지 못하고 실없는 장담이나 하고 다니는 ‘바람둥이’를 뜻했다. 특히 여자들 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며 치근덕거리고, 헤프게 돈을 쓰며 그네들과 놀기 좋아하는 플레이보이(Play-boy)를 연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차 나이가 들면서 ‘끼’가 ‘재주’라는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스스로 나의 ‘끼’를 시인하며 가까운 사람들에겐 스스럼없이 내세우게 된다.

‘전생에 ☓☓꾼, ☓☓쟁이었을 것이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되었으면 대성했을 것이다’는 사람도 있다. 노래․춤․연극․그림 등 주로 예술 분야에 재주가 있다는 말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어렸을 적에 그런 분야에 눈썰미가 있어서 퍽 좋아했으며, 재주꾼이라는 말도 듣곤 했다.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로부터 야단도 맞았다. 점잖은 어른들은 그런 환쟁이나 딴따라 패는 패가망신(敗家亡身) 한다는 생각이었으며, 아버지께서도 심지어 글쟁이는 배고프다는 것이다. 그래서 끼를 살릴 기회가 없어 꽁꽁 묶어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교직에 있으면서 이런 교과를 가르치게 되었으니 끼가 되살아났다. 한편 교회 생활에서도 이런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특별히 배우고 익힌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남보다 나아서 이렇게 널리 쓰이는 것일까? 팔자소관(八字所關)이란 말 외에 다른 말이 있으랴. 더구나 성경을 보면 달란트(Talent)의 비유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대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쓰기 위해 이미 예비해 놓은 재주라는 것이다.

신문을 통해서 최재천 교수의 ‘끼란 무엇인가?’란 칼럼을 읽게 되었다. 그도 예술하는 아내가 과학 하는 자기에게 예술을 했더라면 자기보다 더 잘했을지 모른다며 부추긴다는 것이다. 시인․화가가 되고 싶었으며,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춤꾼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고백하였다. 어쩌다가 과학자가 되어 호시탐탐 튀어 오르려는 끼를 애써 억누르고 사는 자기가 가끔 안쓰럽다는 말도 했다. 내가 할 말을 그가 대신한 것 같다.

영어 사전은 ‘끼’를 ‘talent’로 번역한다. 그리고 ‘talent’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재주’이다. 그러나 재능은 있어 보이지만 그걸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을 ‘끼’가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끼’는 분명 재능 이상의 속성이다고 말했다. 곧 재주는 연마할 수 있지만 ‘끼’는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학생들의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 교육’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육계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모르지만 참으로 신선한 말이 아닐 수 없다.

70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연극․영화․무용 등을 배우고 공연도 하며, 특히 전통 문화인 판소리, 한국무용, 풍물을 매우 즐긴다. 갤러리에 들러서 전시회도 보고 이따금 수채화 수묵화 그림도 그린다. 이를 곧잘 흉내 내어 잘한다는 평을 받고 솜씨가 좋다는 말도 듣는다. 그때마다 끼+뻔뻔함=쇼라는 공식을 들먹이며 은근히 ‘끼’를 내세운다. 법관을 꿈꾸며 법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도, 만일 법관이 되더라도 문학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비록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으나, 노년에 늦바람이 나서 꽁꽁 묶어둔 끼를 풀어내며 생활하게 된 것을 여간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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