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뿜으며 달구지를 끌고 언덕길은 올라가는 소․말을 보면 참으로 불쌍했다. 저렇게 헐떡거리다가 푹 꼬꾸라질 것 같은데 채찍찍질을 하다니... 매정한 마부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뙤약볕 내리쬐는 한 여름 무거운 똥장군을 짊어지고 들에 나가서, 진땀 흘리며 농사 일을 하는 농부들이 참 측은했다. 하루 3,40리 먼 산에 가서 산 더미만한 나무를 지게에 짊어지고 와, 저자에서 팔고 있는 나무꾼을 보면 또한 측은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똥장군이나 나무 지게를 져야 한다니...
아버지의 훈계는, 곧 위협이요 나에게는 가위 공포였다. 약골인 나에게 무거운 짐은 폭탄 같았고, 힘센 친구들은 나의 우상이었으며, 제 몸보다 훨씬 큰 짐을 끌고가는 개미들은 신비로운 곤충이었다. 이와 같이 짐은 생존경쟁의 한 수단이요, 살아가는 방편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엄한 훈계가 또 하나의 짐이 되어, 내 등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으니, 나의 반생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짐이 폭탄이라면 나는 이미 폭사하여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에서 도태되어야 할 사람이 아닌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일제 시대 일이다. 농사 짓는 외가에 자주 갔다. 보리밥이라도 넉넉히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가의 안방 한 구석에는 천정에 닿을만큼 고구마가 쌓여 있었다. 구황식물(救荒植物)이라 하듯이 점심 대용으로, 또한 선물용으로도 쓰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외가에 다녀오는데, 선물로 받은 고구마를 자전거에 싣고 왔다. 땅거미가 내렸는데 40리 길을 아버지는 자전거를 끌고 나는 뒤따라 걸었다. 그런데 귀찮게 고구마들이 자꾸 삐져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아까워 주워오는데, 아버지는 그만 내버리라는 것이다. 끙끙대며 자전거를 끌던 아버지께서도 드디어 길가에 고구마를 마구 버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 속에서, 아버지의 지친 삶을 엿보았다. 무거운 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 똥장군을 지고 가는 농부, 나뭇짐을 지고 가는 나무꾼,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나. 눈 앞에 어른거리는 측은한 모습들과 귀바퀴를 맴도는 훈계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6.25전쟁이 일어나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피란을 가는데, 긴 장대에 미숫가루 자루를 메달고 밤길을 걸었다. 어깨가 뻐근하고 힘들었지만, 살기 위해서이니 고구마 버리듯 버릴 수야 있나?
6.25전쟁 후 복학하여 자취를 하는데 끼니를 잇기 힘들었다. 고향에서 보내온 양식이 넉넉할 리가 없어 늘 허기졌다. 버스편으로 쌀을 보내오면 20리 길 버스 정류장에 나가 찾아 오는 것이다. 이를 어깨에 메고 오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깨는 무너질 것 같았다. 전봇대마다 짐을 내린 채 숨을 고르며 어깨를 두들기는데, 왜 그리 전봇대도 많은지...그러나 흐뭇했다. 굶지 않는다는 안도감은 짐을 가볍게, 힘을 세게 해주어, 가다가 쓰러져도 좋으니 더 많았으면, 더 무거웠으면 하였다. 어깨에 멜 수 없으면 온종일 개미처럼 끌고라도 가자고. 짐이 무거웠던 날은 고단하기는커녕 신이나서 더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였다.
스무 고개를 올라서기 직전,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관상을 보았다. ‘이십평생 수마중태(二十平生 瘦馬重駄)’라는 한 구절이 뒤통수를 쳤다. 20대는 여윈 말이 무거운 짐을 실었다는 게 아닌가? 머리가 명석하고 재능도 많다는 말을 들으며, 열심히 노력한 만큼 학업 성적도 좋았는데... 그리하여 청운의 꿈을 꾸고 있던 나에게 이런 불길한 예언이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여 일소에 붙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스무 고개를 넘자마자 중중첩첩(重重疊疊) 높은 산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쳐다만 보아도 현기증을 느꼈다. 기어코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어질수록, 운명의 여신은 히죽이죽 웃으며 내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옛날 채찍에 맞아 휘청거리며 달구지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가던 말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여윈 말은 쓰러지고 말았다. 관상가의 예언대로 무거운 짐에 눌려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빈사 상태에 빠졌다. 이 때 저 높은 산 위에서부터 발자국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가슴츠레 눈을 떠보니 그가 예수님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하지않는가? 그에게 짐을 대신 지운 채, 손목을 잡고 일어서 함께 고갯길을 올라갔다. 물론 처음엔 내 짐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 것이 죄의 짐이란 걸 깨달았을 때에, 뉘우치고 나는 새 사람이 되어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부판(蝜蝂)이란 상상 속의 곤충이 있다. 길에서 물건을 만날 때마다 등에 짊어진다. 갈수록 무거워져 견디기 어려워도, 힘을 다 할 때까지 지고 가다 끝끝내 죽고 만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부판전’에서, 사람들은 이미 쌓아놓은 재물을 잊고, 더 쌓지 못 한 것만 조바심 한다. 덩치 큰 사람이 작은 벌레나 다름 없으니 슬프다고 했다. 나의 청운의 꿈이 무거운 짐이었고, 나의 20대는 부판이었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건 제2의 부판은 죽기 직전 짐을 벗어버린 셈이다.
막이 오르면 짐꾼이 지게에 짐을 잔뜩 지고 간다. 지나가는 길목마다 사탄이 몰래 짐을 하나씩 둘 씩 더 지운다. 영문을 모르는 짐꾼은 짐이 무거워질수록 마냥 좋아한다. 늘 허기졌던 학생시절 무거운 양식을 어깨에 메고 좋아하던 나의 모습이다. 비실거리다가 마침내 쓰러지고 만다. 그 때 예수가 나타나 그 짐을 대신 짊어진다. 홀가분해진 짐꾼은 그 짐이 죄의 짐이란 걸 비로소 깨닫는다. H교회에서 청년부를 맡고 있을 때, 내가 꾸며 공연한 연극이다. 크리스천이 죄의 짐을 벗어버린 후 천성에 입성하는, 죤 버년 작 ‘천로역정’에서 모티브를 잡은 것이다.
지금도 무거운 짐을 보면 지레 어깨가 무거워진다. 화분을 들다가 척추를 다친 후로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가볍건 무겁건 짐을 들지 않고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욕심의 짐에 눌려 죽어버린 부판이 되거나, 죄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순례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