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길 2 10화

새야 새야

by 최연수

어렸을 적에 포구에서 살았다. 너울너울 고깃배를 따라다니며 새우∙멸치 달라고 조르던 갈매기들, 까막섬 푸른 숲을 눈처럼 하얗게 뒤덮은 채 까놓은 새끼들 백일잔치로 군무(群舞)를 추었던 왜가리․황새들.... 눈을 감으면 지금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스라하게 떠오른다. 늦가을 달무리를 등에 업고, 흐트러짐 없이 < 모양으로 줄지어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떼들이 무슨 안신(雁信)이나 가져오지 않나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삼짖날 무렵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앙증맞은 새끼를 낳아 길렀다가, 늦가을 빨랫줄이나 전깃줄에 음표가 되어 앉아 ‘작별’을 합창하며, 강남행 채비를 하던 제비들을 귀엽게 바라보았다.

농촌 외가에 가서는 허수아비 앞에서 “훠어이 훠어이” 참새 떼를 쫓고, 솔개가 공중에서 빙빙 돌면 병아리들을 어리 안으로 몰아넣던 일. 뽑은 젖니를 초가지붕 위로 힘차게 던지며 까치더러 새 이빨 달라 외치던 일, 보리밭 종달새 둥지를 훔치다가 하느님께 고발하겠노라고 구름까지 치솟으며 울부짖던 어미 새. 하늬바람을 가르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에어쇼를 하던 수 천 마리의 까마귀 떼, 영문도 모르게 바구니 속에 갇혔다가 콩 주머니를 맞아 바구니가 터지면 푸드득 날아올라 만국기 위를 선회하며 운동회를 축하하던 비둘기 떼, 동전을 주니 ‘百花爛漫(백화난만) 하니 蜂蝶隨香(봉접수향)’이라는 알쏭달쏭한 점괘를 물어다 주던 영조(靈鳥=박새 종류)...

어렸을 때부터 공상이 많았던 나는 유난히 새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사를 꿈꾼 적은 없으나, 새를 토템으로 숭배한 북방 유목민족의 DNA를 이어받았는지, 동네 입구에 서있는 솟대를 내 가슴 어귀에도 세웠다. 죽은 조상의 혼령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라, 다만 높은 하늘을 향한 나의 꿈을 새처럼 날려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도 수묵화를 그릴 땐 꼭 새를 그려 넣곤 한다.

세계 2차 대전 막바지에 불사조(phonix)가 관심사였다. 자살 특공대 かみかぜ(카미카제=神風)의 옥쇄(玉碎)를 영웅담으로 치켜세우던 일본은, 불사조가 되어 다시 살아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500년 만에 잿속에서 어린 새끼로 부활한다는 이집트의 전설을 믿는 유가족이 몇이나 되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벤누(Bennu)란 태양신의 영혼으로서 불멸의 새로 여기었는데, 불사조는 신의 제단에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가, 윤회(輪廻)하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해방이 되어 우리 민족은 분열되었다. 우익(右翼)과 좌익(左翼)은, 날마다 시위와 테러로 세상이 소용돌이쳤다. 이 와중에서 나에게 우익이란 딱지를 붙여 좌익 아이들이 따돌렸다. 새가 어찌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있단 말이냐는 목소리는 양 날갯짓 소리에 묻혀버렸다. 한쪽 날개만 있다는 비익조(比翼鳥)는 좌우 한 쌍이 가지런히 맞대어야 날 수 있다는 상상의 새다. 부부간의 사랑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새인데, 좌․우익 두 날개도 가지런히 맞대어 날아야 한다는 주장이, 어린 나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렸다.

이웃에 중화음식점이 있었다. 그 집에는 수금조(漱金鳥)를 기르고 있었다. 진주 가루와 거북이 머릿골을 먹이면 좁쌀만 한 금 부스러기를 토해내는데, 이를 거두어 젓가락이나 왕비의 비녀를 만들어 임금님께 바치면, 큰 벼슬을 내린다고 했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시절 그 신기한 수금조를 기르면 우리도 부자가 될 것 같은데, 진주와 거북이 머릿골을 어떻게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금조는 중국 위나라 ‘拾遺錄’에 나오는 상상의 새임을 성장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 새도 종달새였다는 것이다.

6.25 전쟁으로 우리 가족은 100일 동안 음지식물로 살았다. 야산 잡초 속에 은신하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문득 비서새 이야기를 꺼내었다. 뱀을 잡아먹는 큰 새지만, 땅에 내려와 먹이를 찾다가 맹수의 습격을 받으면, 이상하리만치 날지 못하고 뛰기만 하다가 그만 잡혀 먹힌다는 것이다. 위기 때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Secretary

bird는 볏이 깃털 펜을 귀에 낀 비서를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프리카의 큰 독수리 종류임을 이 또한 성장해서 알게 되었다.

밤에만 운다는 야명조(夜鳴鳥). 히말라야 설산에 산다는 새다. 낮에는 따뜻한 햇살에 배부르게 먹으며 즐겁게 놀다가, 밤이 되어 혹독한 추위가 닥치면 깃털이 없어 견디다 못해, ‘내일엔 꼭 집을 짓겠다’고 다짐하며 슬피 운다는 게 아닌가? 원효대사는 ‘병 중 가장 큰 병은 내일로 미루는 병이다’고 했다. 한편 지옥의 감옥으로 보내진 빠삐용의 죄목은 ‘인생을 낭비하는 죄가 가장 큰 죄니라는’는 재판관의 판결을 받는다. 내일로 미루는 큰 병,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야명조가 되지 않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고 공부했던 학창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루에 9만 리를 난다는 대붕(大鵬). 날개를 펴면 3천리나 되어 구름과 하늘을 뒤덮고, 바람을 일으키면 3천 리에 이르는 파도를 일으킨다니... 청년시절 나도 대붕처럼 되겠노라고 꿈의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나 추락한 것엔 날개가 있다지만, 난 날개마저 갈기갈기 찢긴 채 추락했다. 마침내 쪼그라진 새장 속에 갇혀있는 작은 감장새로 변신한 내 모습! 아, 살아서 무엇하랴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감장새 작다고 대붕아 웃지 마라.

구만리 장천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

두어라 일반 비조이니 네오 내오 다르랴

그러나 이택의 시조를 읊으면서 나를 달래고 추스렸다. 세속의 삶 ‘鯤(곤)’에서 벗어나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상태인 ‘鵬(붕)’ 으로 거듭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맘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대붕이라고 했다. 나도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또 다른 모습의 소붕(小鵬)으로 부화되었다고나 할까?

그 무렵 봉황(鳳凰)에 업혀 칠선녀와 함께 금강산에 다녀왔다는 친척 아우가 있었다. 오동나무에서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영천(靈泉) 물을 마시며 산다는 상상의 새가 아닌가? 이 새는 기린․거북․용과 함께 사영(四靈) 또는 사서(四瑞)에 속한다는데, 덕이 높은 천자(天子)가 나오면 나타난다고 전해온다. 청와대 집무실 뒷벽에 그려진 이 새에 업혀, 대통령이 아닌 옥황상제(玉皇上帝)를 뵙고 왔다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사이비 종교에 빠졌거나, 환영을 본 것이 아닌지 무척 안쓰러웠다.

자식들을 기르면서 어렸을 적에 그토록 길러보고 싶었던 새를 기르게 되었다. 십자매․잉꼬․문조․비둘기․닭... 이들이 곧 마테를링크의 희곡 틸틸(チルチル)과 미틸(ミチル)이 찾아 헤맨 행복의 파랑새가 아닌가? 공상의 날개로 구름 위로만 날다가, 이와 같이 땅 위의 조롱 속으로 돌아오기까지 반생이 흘렀다. 요즘 딸내미가 앵무새를 기르자고 하지만 내가 손사래를 한다. 언제인가 또 기른 정 떼어야 하고, 장송곡을 부르며 상주 노릇 할 일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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