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타령
밀 보리밭 깜부기는
눈에라도 잘 띄지만
논바닥 피들은 벼를 닮아
피사리가 어려워라.
잡초는 누가 씨를 뿌렸기에
짓밟고 뿌리 채 뽑아도
나고 자라고 붇고 퍼지고...
이다지도 생명이 질길까?
거둘 때까지 기다리라지만
잡초 판치는 논밭인데
여물지 못한 곡식이나마
몇 줌이나 건질 수 있으랴.
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벼 같은 사람으로 살라지만
피가 벼로 둔갑술을 부리는데
쑥대밭과 뭐가 다르랴.
요즘은 除草器(제초기)를 쓰거나 除草劑(제조제)를 뿌려 잡초만을 손쉽게 없앤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는 손수 잡초 뽑는 일은 중요한 농사의 하나였다. 이렇게 농촌의 여름철은 잡초 뽑기로 몹시 바빴다. 논에서 피를 뽑는 일, 밀․보리밭에서 깜부기(黑穗病) 뽑는 일은 쉬운 편이었지만, 뙤약볕 아래서 호미나 괭이로 김매기 하는 일은 어른들도 힘들어 했다.
누가 씨를 뿌렸기에 잡초는 우릴 이렇게 귀찮게 하나? 투덜거리고 짓밟으며 뿌리 채 뽑아도 비웃기라도 하듯, 비가 오면 금방 다시 나와 억세게도 잘 자라고 널리 퍼져 강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잡초가 무성하면 곡식의 성장은 멈추어 收穫(수확)을 기대할 수가 있나? 惡貨(악화)는 良貨(양화)를 몰아낸다는 그레셤Gresham)法則(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세계는 아마도 곡식과 잡초의 관계리라. 따라서 잡초와의 全面戰(전면전)은 농촌의 사활이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가라지(tares=잡초)가 생겼는지, 이를 뽑아야 하지 않느냐는 종들의 말에 주인은 가만 두라고 한다. 이유인즉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한다는 것이다. 추수 때는 어차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으리라는 것이다.(마13:24~30) 사람의 短見(단견)으로 섣불리 선악을 판단하는 위험을 경계하는 뜻이리라. 마지막 심판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실 테니까.
가치관의 혼동 때문에 세상이 여간 혼란하지 않다. 선악을 구분하고,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다. 사람의 본성 자체가 선악이 함께 있고, 따라서 이 세상이 선인과 악인이 共存(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극히 소수인 악한 雜人(잡인)이 다수의 선인을 몰아내는 그레샴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라지 비유를 납득하기란 참 힘들다. 겉보기에 화려한 양귀비는 독도 되고약이라도 되지만, 독성만 있는 독버섯을 식용 버섯이라고 요리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모든 사회 현상을 20:80으로 설명하는 팔레트(Paredo)법칙을 우리나라에 적용, 인구 상위 20%의 집권 세력이 나머지 80%를 맘대로 左之右之(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법과 정의의 디케(Dike)여신으로 자처하며, 뽑지 않은 소수의 잡초가 다수의 곡식을 망쳐놔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면 참으로 씁쓰레하다. 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벼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지, 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피 같은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이여, 추수 때가 바로 내일임을 깨달을 진저. 겉보기에 곱고 강한 색채를 띈 독버섯이여,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탄의 꾐이 곧 죄요,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