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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길 1 18화

잡기장과 스크랩북

by 최연수

유리구슬․딱지 등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상자는 어린 나에게는 보물 상자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 만지작거리면서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5일 장에 가면 잡화상이 가장 볼만했다. 웬만한 생활필수품이 옹기종기 다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도 많았지만, 살 수는 없고 눈요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성장해서는 잡지가 좋았고, 잡념도 많았다. 잡(雜) 자가 ‘섞이다, 자질구레하다’는 뜻이므로 여러 가지가 섞여있을 뿐, 나쁘다거나 하잘 것 없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신문용지를 밑씻개로 쓰던 어린 시절, 시골 외갓집에 갈 때는 밑씻개용으로 신문을 가져간 게 선물이기도 했다. 그만큼 종이가 귀했다. 학교에 입학하면 공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잘 사는 아이들 외에는 지물포에서 白鷺池(백로지)를 사서 꿰매어 쓰는 것은 고급이었고, 나는 쓰고 남은 裏面紙(이면지)를 꿰매어 공책으로 썼다. 이 공책을 雜記帳(잡기장)이라고 했다. 국어․산술 등 종합장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귀한 학용품이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잡기장은 筆記帳(필기장)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의 판서를 그대로 베꼈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시험 문제가 출제되어 또한 상전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학우들에게 빌려주어 인심도 샀다. 이렇게 필기장으로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잡기장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판서 외에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이 잡기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에 드는 美辭麗句(미사여구), 명사들의 名言(명언) 등을 적어놓았는데, 작문을 쓸 때 곧잘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을 그때 그때 기록해 두었는데, 이것이 중학교 시절에 일기장으로 발전했다. 백로지를 꿰매어 만든 이 일기장이야말로 나에게는 귀중한 보물이었다. 사범학교 시절에는 이 잡기장이 노트북(note-book)․메모랜덤(memorandum)․스크랩북(scrap-book) 세 갈래로 탈바꿈했다. 영어를 써야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했기 때문에 일찍이 신문광이 되어, 주로 사설과 칼럼 등은 스크랩북을 만들고, 중요 사건 기사와 정보는 비망록인 메모 카아드로 만들었다. 신문은 버리면 쓰레기지만 모으면 재산이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는 참고로 할 수 있도록 색인표도 만들었다. 저널리스트(journalist)나 문학가라는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 작업으로 알았다.

비록 풋내가 났지만, 꿈과 열정이 영글어가던 당시의 그 자료들은, 두 차례의 화재와 잦은 이사로 말미암아 아깝게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메모하는 습관은 아직도 남아, 잡기장과 스크랩북은 책상 위에 자리 잡은 지식과 정보의 寶庫(보고)가 되어있다. 글을 쓸 적에는 많은 인용과 예화가 필요한데,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웬만한 내용은 이 보고를 열어 활용한다. 마치 은행 예금을 인출하듯이. 잡동사니 같지만 나에게는 寶貨(보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면 늘 마음에 걸린 게 있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은 남이 연구해 놓은 결과물인데, 이를 인용하다 보면 짝퉁인 것 같다. 더구나 여러 가지 내용을 끌어다 붙이고 보면, 마치 모자익 작품 같기도 하고, 퍼즐 맞춰놓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脚註(각주)를 달고 출처를 밝히기도 하지만, 지식과 정보는 공유해야 할 자산들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 변명하기도 한다.

내 잡기장을 들추어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빼곡하다. 그리고 스크랩북을 열면 먹다 남은 음식처럼 온갖 신문 조각들이 너저분하게 붙어있다. 이 책을 펼치면 머리를 든 채 경기장에 나갈 수 있도록 자기를 뽑아주기를 바라는 후보 선수들의 눈동자들 같다. 주전 선수로 언제 어떻게 뽑힐지 기약은 없으나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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