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 나는 대로 음악회에 간다. 내가 좋아했던 크라식은 물론, 노․장년들의 추억에 잠기게 하는 흘러간 옛 유행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팝송, 심지어 소년 시절 염불하는 소리 같아 몹시 싫어했던 판소리 등 편식하지 않기 위해 가리지 않는다. 특히 풍류의 멋이 깃든 우리 전통 음악에 맛 들여, 추임새를 곁들이고 민요를 할 적에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막춤도 춘다. 가정․직장․교회 일에 얽매어 젊은 시절에는 加速(가속) 페달만 밟느라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모든 일에 은퇴를 하였으니 핸들을 좌우로 꺾으며, 못다 한 일을 해보고자 한다. 더구나 청력이 더 떨어져 보청기 신세를 지기 전에, 듣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성악가들의 맑고 고운 노래를 들으면서 한 번 만이라도 좋으니, 나도 무대에 서서 그렇게 흉내라도 내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물론 그들은 피나는 발성 연습이 있었겠지만, 목소리는 타고난 것 같다. 원래 음악성이 뛰어난 것도 아닌 데다, 몸이 늙으니 목소리도 낡아져서, 좋아하는 노래 마구 부르면 금방 피로하고, 어쩌다가 높고 센 소리로 몇 곡 부르고 나면 며칠 동안 목이 쉬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게다가 가래가 끼니 음정이 불안정하고, 입속의 침이 마르니 발음도 부정확하여, 나에게 그런 시절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도라지 삶은 물, 백년초 열매 즙을 마시기도 하고, 가끔 용각산이나 사포날 약도 사 먹어보지만,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병원에 가면 물 많이 마시고, 말을 많이 하지 말며 목을 쉬라고 하는 걸로 보아, 늙었으니 하는 수 없다는 뜻인데, 이제 와서 무슨 통뼈라고 팔자에 없는 카루소(Enrico Caruso 伊) 흉내를 내겠단 말인가?
30대 초반 기관지염을 심히 앓은 일이 있다. 거덜 난 家計(가계)를 빨리 일으키려고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병원 치료는 물론 약 사 먹는 일에도 소홀히 하였다. 그 이후로 항상 목이 불편하였다. 말로 먹고사는 교직이요 음악 시간에는 노래 지도도 해야 하며, 더구나 교회 찬양대에서 쉬지 않고 노래 불러야 하는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젊음과 剛斷(강단) 하나로 버텼는데 아마도 성대를 혹사했으리라.
통 큰 악기가 되지 못해, 성량이 풍부하지 못하고 톤이 강하지 못했다. 모태 신앙이 아닌데도 ‘... 못해’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가 팔자는 아닌데도 쉬 악보를 볼 줄 알고, 그런대로 가성으로 고음도 잘 내는 편이어서, 찬양대에서 오랫동안 테너 파트에 몸을 담았다. 엄격한 오디션을 거친 게 아니기 때문에, 봉사라는 명분으로 지금까지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는 있다. 어느 합창단이나 교향악단 특히 교회 찬양대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끼어 있는 걸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잠 16:31)이란 말이 생각나고, 90대 까지도 찬양대에서 헌신하는 모습 앞에서는 머리가 숙여진다.
그런데 어느 사이 테너 파트에서 베이스 파트로 스스로 내려왔다. 강등했다는 생각은 않지만 한 물 간 건 사실이다. 80을 바라보노라니 이제는 힘에 부치기도 하고, 박수받을 때 떠나야 하는데 우물쭈물 망설이다 지금에 이르렀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자부까지 네 가족이 로고스 찬양대에 있어, 부럽다는 말도 듣지만 허세와 客氣(객기)로 보는 사람은 있지나 않는지 눈치를 보게 된다. 딸아이가 시집갈 때까지는 금붕어처럼 입만이라도 벙긋거리려고 하는데, 당초 떠밀어낼 때까지만 하려던 찬양대를 스스로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주연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명연기의 조연 배우를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 하거니와, 오페라나 발레까지도 조연이 더욱 잘하여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베이스 독창이나 첼로 독주의 중후한 맛에 취하기도 하고, 콘트라베이스․첼로가 끼지 않은 관현악이나 튜바․수자폰이 끼지 않는 브라스 밴드의 연주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 역할은 대단하다. 합창 역시 마찬가지다. 엘토나 베이스가 없는 합창을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베이스 파트를 맡고 보니까 그 위치가 참으로 귀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통주저음(通奏低音)이라는 게 있다. 17-18세기 유럽에서 널리 행해진 것으로서, 건반악기 주자가 주어진 저음 위에다 즉흥적으로 화음을 맞추어 보태면서, 반주 성부(聲部)를 완성시키는 방법 또는 그 저음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독주 파트가 쉬는 때에도 저음은 악곡을 일관해서 연주되기 때문에 통주(通奏=continu 伊)라고 하는데, 바로코 음악에서 연속적인 저음을 담당하면서, 조성(調聲)이나 리듬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1598년 로마의 연주 지침에는 ‘조연의 부분에 충실하라’고 했다 한다. 맞는 말이다.
아 카펠라(a capella)는 ‘예배당 또는 성당식’으로, 혹은 ‘성당을 위해서’라는 뜻인데, 악기의 반주를 곁들이지 않는 합창곡이다. 그런데 저음 가수가 정해진 반복으로 “두발 두바...”라 읊조리면서, 고음 성가대가 선율을 자유롭게 부르도록 한다. 곧 저음을 깔아주는 것이다. 한편 베이스 기타의 드럼이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면서 리듬감을 자아내면, 스팅은 이 저음 위에서 맘껏 노래할 수 있도록 한다.
딸아이가 클리네넷을 전공했는데, 원통형 폐관식(閉管式) 목관악기로서 바탕 기음(基音)은 관 길이에 비해 거의 옥타브가 낮는데, 그중 B♭조․A조 클라리넷은 관현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큰 오빠 결혼식 때만 해도 사촌동생 색소폰과 함께 2중주를 했는데, 웬일인지 요즘은 전혀 손대지 않아 참 아쉽다. 그런데 그 저음이 좋은 것이다. 요즘은 국악기 중에서 찰현악기(擦絃樂器)인 아쟁(牙箏)에 관심이 끌린다. 가야금과 같이 기러기발을 괴어 개나리나무 활대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데, 음역(音域)은 좁으나 낮은음 악기로서 그 음질․음량의 장중한 멋에 이끌리게 된다.
고성과 소음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시달려서일까, 차분하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저음이 좋다. 그리고 높은 성부(聲部)를 도와주는 저음이 좋은 것은, 합창에서 저음으로 화음을 살려주고, 사회생활에서 낮은 자세로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나의 인생관과도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