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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이 열렸어요

by 최연수 Jan 03. 2025

“학감님, 지퍼가.....”

 푸른대학(노인대학)에서 어르신네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어느 분이 작은 목소리로 귀띔을 해주었다. 

 “어? 남대문은 불타고 없어졌는데......”

시치미떼고 너스레를 떨면서, 뒤돌아서 지퍼를 올렸지만 내심 겸연쩍었다. 명색이 학감이요 장로인데, 늙은 여학생에게 지적을 당했으니... 아무튼 고마웠다. 모르고 지나쳤으면 온종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을 게 아닌가? 나이 든 탓인지 나도 가끔 이런 실수를 한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남대문을 잠그지 않은 채 나오면 건망증이요, 국보 제1호를 보고 나온 사실조차 모르면 치매(癡呆)라고 한다는데, 아직은 건망증인가보다.


 30여 년 전이다. 본동 시장에서부터 고지대에 위치한 학교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였다. 언덕길을 오르면 달동네에서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는 학부형도 끼어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많은 남자들의 남대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가슴츠레한 눈과 부스스한 머리털로 보아서, 두 다리를 펴지 못한 채 밤새 새우잠을 잤을 게 뻔하다. 그 중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宿醉(숙취)에서 덜 깬 채,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부랴부랴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날 품팔이의 고된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 미쳐 남대문까지는 신경을 쓸 것 같지 않았다. 

 “남대문 열렸어요!”

 “...............”

 차마 지나칠 수 없어 귀띔을 해주면서, 무슨 선행인양 반응을 보게 마련이다. 물론 무표정하게 한참 걸어가다 지퍼를 올린 게 다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큰 죄나 지은 양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화들짝 놀라며 고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고맙다는 눈인사는커녕,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는 듯 째려보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실수를 깨닫고 고치면 되는데, 어떤 것은 습관으로 굳어 고치기 힘들고, 어떤 것은 무신경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린다. 가장 고약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고 착각하여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일러주면 역정을 내며 고집스럽게 버틴다.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 나온 이명비한(耳鳴鼻鼾)이란 귀울음과 코골기이다. 곧 이명은 저는 듣는데 남이 못 들어서 문제이고, 코골기는 남은 듣는데 저는 못 듣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코골기는 남이 지적하면 언제 코골았느냐고 역정을 낸다는 것이다.

 가장 민망한 것은 간덩이가 어지간히 큰 남성들이다. 남대문을 열어둔 채 쌍방울표 팬티에게 시원한 바람을 쐬어 주며 걷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거시기를 내보이는 노출증(exhibitionism)은 아니기에 煽情的(선정적)이라 할 수 없지만 嫌惡感(혐오감)을 준다. 여성들의 경우 보라는 듯이 과감한 노출로 남자들에게는 눈 요기가 되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들의 정욕은 視覺的(시각적)인데 독립문표 속옷으로 추파를 던지면서, 성 희롱 또는 성 추행을 했노라고 남성들을 고발하는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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