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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길 1 17화

짝퉁과 흉내내기

by 최연수

일본 도쿄에 가면 유명한 붕어빵 집이 있다고 한다. 하나만 사 먹더라도 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니 짐작할만한 명품인 모양이다. 먹어본 사람 이야기인즉 과연 맛있다고 했다. 절반이 팥인데 다른 붕어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붕어빵은 국화빵과 함께 길 가다 사 먹는 서민들의 군것질거리이다. 특히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눈길을 걷다가, 따끈따끈한 붕어빵을 사 먹으면 추위가 물러간 듯한다. 서로 닮은 사람들을 붕어빵 같다고 할 정도로, 이 말은 오랜 세월 우리들의 사랑을 받아온 정든 단어의 하나이다. 그런데 붕어빵이나 국화빵 모두, 모양만 흉내 냈을 뿐 그 속에 붕어나 국화꽃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호두과자는 그건 아니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라면 마땅히 그 속에 호두가 들어있어야 고소한 맛이 난다. 그런데 언제인가 여행 중에 사 먹은 호두과자는 모양만 호두일 뿐 호두는 안 들어있는 것이다. 물론 고소한 맛도 없었다. 속은 것이다. 비단 호두과자뿐일까? 5,60년 대 참기름이 그랬다. 직장에 온 장수에게 참기름 한 병을 샀는데 온통 물이었다. 맛을 볼 때는 분명히 고소한 참기름이었는데...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만 참기름인 것이다. 말만 참기름이지 거짓기름이다. 꿀도 그랬다. 죽은 벌까지 들어있었지만 설탕물 고아 놓은 것이다. 세상 물정(物情) 몰라 어리숭한 나는 늘 그렇게 속았다. 이렇게 가짜에 속고 바가지를 쓰다 보니까 물건 사는데 겁이 난 것이다. 그리하여 웬만하면 사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요즘은 짝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가짜 상품을 이르는 말인데, 이 상품의 거래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OECD 보고에 의하면 이 상품의 거래로 인한 피해액이 2007년에는 250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온 라인 판매나 국내 거래액을 합치면 6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경우는 GDP규모의 20%인 1조 달러로 추산하기도 한다.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서 무허가로 만든다고 하여 ‘산짜이(山寨)’라고 하는데, 달걀․고기 같은 식품과 심지어 비아그라 같은 약품까지 진품처럼 만들어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오스트리아의 유명 관광지 할슈타트(Hallśttat)를 그대로 복제한 짝퉁 관광단지를 광둥(廣東) 성에 조성하고 있어, 할슈타트 주민들이 몹시 불쾌해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으니, 그 재주와 발상은 혀를 내두를만하다.

중국제 짝퉁을 아무리 단속하여도 오히려 시장에서 넘쳐나는 것은, 수요자가 많기 때문이다. 루이뷔통 가방은 ‘3초 백’, 구찌 가방은 ‘5초 백’ 이러고 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3초 만에 한 번, 5초 만에 한번 본다는 뜻이다. 이렇게 소위 명품이라면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도 四足(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짝퉁인 줄 빤히 알면서도 겉모양만 번드레하면 가짜 상표를 붙여 놓아도, 우쭐댈 수 있다는 얕은 생각을 버리지 않은 한, 앞으로도 짝퉁 시장은 나날이 번성할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나 경제 성장의 초기에는 외국 기술이나 상표를 도용하는 단계를 거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침체에 있던 일본 경제가, 6.25 전쟁의 특수 덕분에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재봉틀 미제 ‘Singer’를 모방하여 ‘Seager’라는 인장을 찍어 팔았다. 심지어 규슈 지방의 우사(宇佐)라는 소도시의 싸구려 물품 생산자들은 ‘Made in Usa’라는 라벨을 붙여 미제인양 팔았다고 한다.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아크라이트도, 수력방적기로 막대한 돈을 벌고 기사 작위까지 받았는데, 사실 어느 무명 발명가의 기술을 훔친 것이다. 이후 이 기술은 미국으로 유출되어 뉴잉그랜드의 직물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참기름․벌꿀을 위조한 것을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일제 상품과 기술을 도용했던가? 그런데 이렇게 다른 나라 상품을 모방하던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오히려 다른 나라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나라 것을 베꼈다는 일부 상품이 일본 상품의 짝퉁이라니, 짝퉁의 짝퉁이란 사실은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다.

짝퉁은 상품뿐만 아니다. 문화도 그렇다. 선진국의 문화를 흉내 내느라고 고유한 전통문화를 잃어버린 민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퇴패 풍조까지 문화라는 이름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어와, 우리의 전통문화를 오염시키고 있었음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품과 문화가 다른 나라에 상륙하여, 환영과 찬사를 받고 있다니 고무적인 일이다. ’ 60년대 초 가발․돼지털․오징어류의 수출을 弧矢(호시)로, 오늘날 육대주를 누비는 학국산 자동차, 오대양을 누비는 한국산 선박, 세계인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산 전자제품, 세계인을 미남 미녀로 만드는 성형술...

우리의 영화와 TV드라마가 일본과 동남아(東南亞)를 휩쓸더니, 마침내 K-pop으로 유럽에 쓰나미를 일으키고,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19명 입상자 중 성악․피아노․바이올린 등에서 5 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중요 부문 상(賞)을 휩쓸었다니, 젊은이들의 한류(韓流)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짝퉁 나라의 오명을 깨끗이 씻어낸 쾌거(快擧)이다. 다만 외국의 싸구려 짝퉁에 속아 비싸게 사야 하고, 싸구려 짝퉁 때문에 우리의 정품․진품이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가짜 박사 가짜 학위 논문과 함께 모든 짝퉁 제조를 확실하게 정리할 때가 되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독교의 복음도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 한류 돌풍을 일으켜, 해외 선교사 파송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라는 짝퉁 기독교가, 요즘 각 교회에 몰래 스며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건 국산 짝퉁이지만, 한편 세계적인 짝퉁 종교인 시한부종말론이 또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고대 마야 달력을 근거로 2012년 12월 21일 지구가 멸망하므로, 프랑스 부가라치에 숨겨져 있다는 UFO 기지에 몰려들어, 외계인과 함께 지구를 탈출하자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인터넷 검색이나 신문 스크랩을 통해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어 인용한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는 책을 통하는데, 이것이 내가 연구한 진품․정품이 아니라면 짝퉁인가 아닌가? 레크리에이션모임에서 또한 자칭 ‘돌팔이 무형문화재’라 하면서 고전무용 춤을 곧잘 추는데, 이것도 짝퉁인가? 정식으로 전공했느냐고 물으면 ‘어깨너머 학교’에서 ‘귀동냥 선생’으로부터 ‘흉내내기’ 학을 배웠노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이 흉내내기(mimicry)와 따라잡기(catch-up)가 과연 짝퉁일까 아닐까?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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