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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길 1 13화

개 미

by 최연수

거실에 개미들의 장사진이 또 나타났구나. 손가락으로 누르면 흔적도 없는 작은 불개미 군단이다. 사탕 조각 때문인데, 화분이 소굴인 것이다. 사탕을 치우고 대열을 흩어 놓아도 좌왕우왕 할 뿐 금방 흩어지려는 낌새가 없다. 오히려 사탕 조각을 흩어놓고 그들을 유인하여 한 데 모아 한꺼번에 죽인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병원을 짓다가 개미집을 발견하고 설계를 변경했다는데... 아무리 미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다 귀중하다는 그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 사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요놈들이 귀찮고 싫은 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나는 성자커녕 잔인한 살의자(殺蟻者)가 된다. 히틀러와 아이히만과 같은 대 학살범으로, 이미 여왕개미 폐하께 보고되고, 보복의 명령이 하달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개미들을 몹시 싫어했다. 불속에서나 없지 아무데나 설치고 다니면서 음식물에 꾀고, 불개미들이 물면 몹시 가려웠다. 보는 대로 죽이고, 더듬이를 끊어서 갈팡질팡 하도록 귀찮게 굴었다. 어렸을 적에 농촌 외가에 자주 오갔다. 여름철 점심때가 되면 소쿠리에 담아놓은 보리밥을 꺼내어, 냉수에 말아서 훌훌 먹기 일쑤였다. 기둥 높이 메달아 놓은 소쿠리인데, 어떻게 마당 한 구석의 개미떼들이 알아차리고 대장정에 오르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개미 한두 마리 묵어둬라. 개미 묵으믄 심 세단다.”

외할머니께서 등을 또닥거리면서 말씀을 하셔도 밥맛은 떨어졌다. 물에 뜬 새까만 개미를 떠내고 떠내어도, 또 몇 마리는 뜨기 마련이었다. 늘 일손이 달린 농촌에서는 어린애도 힘이 세어야 하는데, 콩나물 같이 가냘픈 내 손을 보노라면 측은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개미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제 몸보다 훨씬 큰 먹이를 잘도 날랐다. 신기하기만 했다.


“개미가 열 마리!”

일제시대 학교에 다니면서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그렇게 했다. 일어로 개미는 아리(あり)라 하고 10을 도(と)라고 하는데, “아리가도(ありがとう)”는 고맙다는 인사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유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잘했다. 개미들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만날 때마다 인사하는 모습이 일본인들과 똑 닮았다.


해방이 되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배웠다. 여름 내 개미들은 땀 흘려 일하는데,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에서 노래만 부른다.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없는 베짱이는 개미집을 찾아가 동냥을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가련한 베짱이 신세를 닮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를 닮으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성경에도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7)’고 하였다.


중2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엔 나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 친척 집에 피신을 했는데, 인민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뒷산으로 도망을 갔다. 민둥산이 되어 그늘은 없고, 억새풀 속에 자리를 잡고 숨을 죽이며 숨었다. 정수리에 꽂히는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그런데 햇볕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개미 떼들이었다. 왕개미들이 모여들어, 심지어 사타구니와 정수리 끝까지 안 기어 다니는 곳이 없었다. 난쟁이 나라에 온 걸리버로 생각했나? 반동분자를 수색하러 온 인민군인가? 죽이기도 하고 비질하듯 손바닥으로 계속 쓸어내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개미 소굴에 잘 못 든 것 같아 장소를 옮겨야 했으나, 총소리까지 들은 마당에 微動(미동)도 못한 채 견뎌야 했다. 이런 개미들에게 걸리면 뱀도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는 말이 그럴듯했다.


아이들에게 개미와 벌에 대해서 가르치게 되면서, 그들의 생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위계질서와 농사짓기, 일에 있어서의 분업과 협업, 그리고 근면성과 장래를 대비하는 저축 등.... 참으로 가르칠 덕목이 많다. 유리그릇에 넣고 개미들을 관찰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손자들과 함께 상품화된 ‘ANTUNEL’을 사다가, 길러도 보았다. 위층에 먹이(젤리)가 깔려 있어 모을 수고는 필요 없고, 굴을 뚫어 옮기는 일만을 부지런히 하는데, 그런대로 좋은 관찰 거리였다. 다른 집 개미를 집어넣으면 곧 물어 죽인다거나, 굴속에서 식구가 죽으면 밖으로 끌어내어 그 주위에서 조상(弔喪)하는 듯한 모습, 빈둥빈둥 노는 놈이 있는가 하면 일하는 놈은 따로 있다는 것, 유유자적한 베짱이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들의 수명이 길다는 등...


학교에서 공생(共生)을 가르칠 적에는 개미와 진딧물을 예로 들기도 한다. 곧 진딧물은 식물 속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데, 개미는 진딧물을 풀의 줄기까지 옮겨다 주고, 진딧물의 꽁무니의 꿀샘에서 나오는 단물을 먹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미는 익충인지 해충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최근호에서는 개미와 흰개미를 풀어놓은 농장에서는 36%의 수확량을 높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렁이가 좋은 농부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개미도 훌륭한 농부라는 것이다. 호주 연방과학원과 시드니대 연구진이 밝힌 바에 의하면, 개미들이 파놓은 굴속 깊이 빗물이 들어갈 수 있게 하므로 뿌리가 깊은 곳까지 뻗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미는 위장에 질소를 잡아두는 세균을 갖고 있는데, 이 세균들이 땅에서 질소를 모아주는 역할을 하며, 진딧물을 잡아먹는 농약을 대신하므로 훌륭한 익충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三千浦)로 빠지는데, 개미의 허리를 보고 있으면, 끊어질 듯 말 듯한 그 가는 허리로 어떻게 음식물이 들어가 배가 저리도 불룩한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그런 허리 라야 살 것이라는 게 아닌가? 그렇잖아도 호리호리한 허리인데, 더 이상 가늘어야 한다니.... 꿈에 맹수에 둘러싸여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흑인이 던진 말이었다. 살기 위해서 그를 따라가는데 지붕이 없는 허름한 창고로 들어갔다.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을 붙잡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허리가 고무줄같이 늘어지는 게 아닌가? 정말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되면서 금방 뚝 끊어질 것 같이 아팠다. 천만다행으로 밧줄이 바위까지 내려와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살아났다. 꿈이었다. 이 꿈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당시 꿈을 풀어주며 전도한 할아버지는, 사람의 힘은 허리에서 나오는데 허리에서 힘을 빼어야 새 사람이 된다고 했다. 신의 도움 없이 내 능력만으로 살아가겠다는 오만과, 별로 보잘것없는 우월감을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곧 예수를 믿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개미허리를 보면 의례 생각나는 꿈이다.


2010년 임진각 평화누리의 경기평화센터에서 ‘개미제국 탐험전’이 열렸다고 한다. 이화여대 최재천 행동생태학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면적에 비해 120여 종의 개미가 사는데, 40여 종이 사는 영국․핀란드에 비해 상당한 생물 다양성의 분포라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영향 때문인지 뜻밖에 개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행사를 열게 되었다고 했다. 메이 베렌바움의 ‘벌들의 화두’는 곤충이 주인공인데, 14년 간 개미를 키운 과학자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다양한 의사를 주고받는다. 개미학자들은 페로몬과 유사한 화학물질을 합성하여,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개미들이 우리에게 대꾸만 하면, 드디어 쌍방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개미 사회가 여왕개미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통치되는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사회에도 반체제 세력이 있다고 한다.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상대 종족을 말살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다른 종의 여왕들과 합종연횡(合從連衡)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개미 사회에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인맥관리 서비스)인 페이스북․트위터를 닮은 네트워크가 있음을 발견했다는 흥미 있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즉 개미 세계에도 인간 사회에서의 정보의 중심인 허브(hub)가 있다는 것이다. 개미 한 마리는 지능이 거의 없지만, 수 천 수 만 마리가 모이면 세상 어느 생물보다도 효율적인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개미가 모은 정보가 군집 전체로 퍼져 일종의 ‘집단지능’을 이루기 때문이란다. 1억 4000만 년 전에 걸쳐 진화한 1만 4000여 종의 개미들이, 열대 우림에서 도심의 보도블록까지 온갖 생태계에서 번성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집단 지능 덕분이다.


개미가 더듬이를 맞대고 비비는 것은 인사가 아니라 바로 페로몬을 감지하는 행동이다. 미 스탠퍼드대 핀터-월먼(Pinter-Wollman) 교수는 더듬이의 접촉을 분석하여 군집의 정보 전달 과정을 밝혀내었다. 실험실에서 개미의 군집을 키우면서 각각의 개미가 더듬이를 접촉하는 횟수를 분석한 결과, 한 군집에서 총 4628번의 접촉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40번 정도의 접촉이 있었으나, 10%는 100번 이상 접촉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100번의 접촉을 가진 개미들은, 페이스북에서 수천 명의 친구를 가진 소수처럼, 정보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영국 왕립학회 ‘인터페이스저널’(2011.4.12)에 실었다.

한편 벨기에 자유대 마르코 도리코(Dorico) 교수는 2001년 컴퓨터에 인공 개미를 만들어 실험한 결과, 실제 개미처럼 동료가 제공하는 간단한 정보에 바탕을 둬 길을 찾았다고 했다. 인공 개미가 푼 23 개의 과제 중 13 개가 최적의 해결책으로 나타났고, 6개는 그 전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렵게 풀던 것을, 간단한 정보만 가진 개미가 단숨에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많은 기업이 개미 모델을 네트워크 문제 해결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화물의 수송망에 이용하고 있으며, 가스 판매사인 아메리칸 에어리퀴드도 가스 사용 고객과 수송 업무 시스템에 접목해 년간 2000만 달러를 절약했다고 했다. 마당 한 구석에서 어떻게 높은기둥 위의 소쿠리까지 쉽게 대장정을 펼칠 수 있었을까 궁금했던 의문이 이렇게 풀렸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솔제니친의 ‘모닥불과 개미’라는 짤막한 수필에 실린 이야기다. 타오르는 모닥불에 통나무 한 개비를 던져 넣었다가, 그 안에 개미집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황급히 끄집어내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개미들이었는데, 다시 불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았다. 솔제니친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활활 타오르는 자기 집으로 다시 기어 올라가 바동거리다 그대로 죽어가는 것일까?’고 적었다. 이 글을 읽은 고2의 최재천 교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으로 입문했다. 학문의 중심 과제는 ‘자신이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어떻게 남을 돕는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가?’이다.

현재까지 이타주의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가장 탁월한 것은, ‘해밀턴의 법칙’이라고 하여 ‘친족 선택’이란 가설을 내세웠다. 곧 암컷이지만 일개미는 알을 낳지 않고, 자매관계인 여왕개미를 도와줌으로, 자신은 번식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이 얻는 유전적 이득이 자신의 치르는 희생의 대가보다 크기만 하면, 이타적 행동도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보다는 내 가족을 먼저 챙기기 마련이다. 스위스 연방공대 다리오 플로레아노(Floreano), 로잔대 로렝 캘러(Keller) 교수 연구진은, 과학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Plos Biology)’ 최신호에서 개미와 인간은 물론 로봇 사회에서도 진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로봇 ‘엘리스’도 진화 실험 결과 소프트웨어가 비슷한 ‘친족’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즉 이타적 현상은 유전자 수준에서 보면 결국 이기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과학 분야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반복하여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인도의 한 은행에서 궤짝에 넣어둔 우리 돈 2억 5000만 원어치의 루피 지폐를 흰개미가 먹어치웠다는 뉴스가 있었다. 흰개미는 식물성 섬유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를 먹고사는 곤충인 만큼, 나무로 만든 지폐는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일 뿐 돈을 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흰개미는 흰색 개미가 아니라 메뚜기와 바퀴벌레에 가까운 곤충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동안 흰개미의 가장 가까운 사촌은 민벌레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는데, 최근 ‘사회성 바퀴벌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강원대 박영철 교수의 연구는 갑옷바퀴가 바퀴벌레 중에서도 유전적으로 흰개미와 가장 가까운 걸로 나타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아무튼 흰개미는 해충임은 분명하다. 곤충학자들은 대체로 철도의 침목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과정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 문화재의 21.8%에 달하는 목조 문화재가 현재 흰개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메이 베렌바움 저 ‘벌들의 화두’에, 곤충학자들은 셈을 좋아하여, 곤충들의 방귀에서 방출되는 메탄의 총량까지 계산하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흰개미들이 배출하는 메탄은 연간 50.7테라g(1테라g=1012g)에 달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생산되는 메탄의 약 10%가 흰개미 엉덩이에서 나오는 셈이다.


중남미 열대우림에서 버섯 농장을 경영하는 잎꾼개미는 이모작 삶을 살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잎꾼개미 사회의 대형 일개미들은 톱날처럼 생긴 턱으로 나뭇잎을 둥글게 썰어 집으로 물어 나른다. 그러면 소형 일개미들이 그 이파리들을 더 잘게 썰고, 그 위에다 버섯을 길러 먹는다. 그런데 미국 오리건대학의 곤충학자들은, 최근 평생 나뭇잎을 써느라 톱날이 무뎌진 늙은 잎꾼개미 일개미들은, 젊은 일개미들보다 나뭇잎을 써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당장 퇴물 취급을 당하여 은퇴하는 건 아니고, 대신 동료들이 썰어놓은 나뭇잎을 집으로 운반하는 부서로 옮겨 여전히 사회에 기여한다고 발표했다. 인생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즈음, 만일 현재의 정년 제도를 고수하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건 뻔한데, 잎꾼개미 사회에서의 이러한 지혜와 시스템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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