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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길 1 11화

천벌인가?

by 최연수

이번 일본 대지진(2011.3.11)은 한 마디로 큰 충격이었다. 3,600 명의 사망과 26,000여 명의 부상 그리고 20만 명의 이재민을 낸 한신대지진(고배 1995.1.17)의 상처가 아직도 아릴텐데 말이다. 리히터 규모 9.0이라면, 세계제2차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5,000개의 위력이라니까 짐작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역사상 초유의 대지진인데, 세계 역사상으로는 4번째라고 한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의 파고가 38.9m, 시속 115Km였다고 한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28,000 여명의 사망․실종과 360,000 여명의 이재민이 생겼으며, GDP의 40%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의 천재지변(天災地變)이라고 하지만, 이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放射能) 누출 사고는, 인재(人災)로서 그 위험성이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어 있다. 재난에 관한 한 안전천국이라는 일본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을 본 각국 정부는, 25년 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떠올리면서, 자기 나라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다. 한편 원자력 발전(發電)에 대해서 평가절하(平價切下)를 하면서, 이후의 계획을 백지화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의연(毅然)히 대처했던 일본의 국민성을 온 세계가 극찬을 하였다. 한편 관동(關東) 대지진(1923년) 때의 악몽을 깨끗이 덮고,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구재에 적극 협력하여 또한 세계가 놀라와 했다. 물론 우리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해 주고, 하루 속히 복구할 것을 진심으로 기도하며 특별 헌금도 하였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 이런 대 재난이 일어났을까에 관한 갖가지 말들이 오갔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복음을 외면한 채, 경제대국을 넘어 군사강국을 노리며 또다시 패권을 쥐고자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다.


때마침 조용기 목사님은 성경적인 입장에서, 일본 국민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한데다가, 일본의 개인주의에 대한 천벌이라는 자국의 도쿄(東京) 이시하라(石原) 도지사(都知事)의 질타(叱咤)에, 일본 언론이 들끓었다. 곧바로 이시하라는 사과하고, 조목사님도 진심이 왜곡되었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는 것 만큼, 아픈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되어 그들의 분개도 쉬 가라앉지 않은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본 일본의 우상숭배는 대단하다. 10여 년 전 일본 여행 때 나도 실감한 점이다. 우주를 왕복하는 이 시대에 곳곳에 널려있는 우상과, 이들에게 배례(拜禮)하는 군중 속에서, 기도하기 위해 교회를 찾고, 기념품으로 일어 성경을 사러 헤매는 나는 이방인(異邦人) 그대로였다. 이미 그들의 식민지 통치 밑에서 살아봤던 나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풍습을 조금은 알고는 있었지만, 일찍 서양 문화를 수입하여 문명국이 되고, 현재도 선진국 대열에서 국제사회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높이려는 일본의 현주소가 이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엔도 슈사크(遠藤周作)의 소설(침묵)을 통해서, 일본의 천주교 박해(迫害)를 익히 알고는 있지만, 에도막부(江戶幕府) 시대의 천주교 탄압은, 조선 대원군 쇄국정책(鎖國政策)과 맞먹는 핍박(逼迫)이었다. 마침내 천주교 금지령(1613년)까지 내렸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았다. 그 후 우리나라는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1884년) 이후 기독교는, 기독교 역사상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 오늘에 이르렀다. 왜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웃나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몹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번 재앙을 바라본 것이다.


국난이건 개인의 환난(患難)이건, 그 원인을 그들의 죄로 인한 형벌로 속단하는 일은 삼갈 일이다. 노아의 홍수, 바벨탑의 무너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등 구약(舊約)의 사건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은 쉽사리 이런 잣대로 재게 되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의 얕은 신앙으로 어떻게 잴 수 있다는 말인가? 이탈리아 폼페이 대지진(A.D.62년)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審判)과 같은 관점에서 보지만,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대지진(1755.11.1)은 그와는 전혀 딴판이다. 카톨릭 최고의 축일인 만성절(萬聖節=All Saint's day)을 맞아, 수 만 명의 시민이 성당에 모여 있었다. 미사가 시작된 직후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3분 간격으로 일어나 두 번의 지진과 세 차례의 지진 해일(海溢), 대화재로 리스본 시내의 85%가 파괴되고, 27만 명 시민 중 3-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왜 하느님은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이요 기도하는 시간에, 이런 재앙을 내리는가? 성당과 수도원 수로 볼 때 리스본은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인데... 엔도의 소설에 나오는 ‘하나님은 왜 침묵하는가?’의 회의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와 투쟁하다 순교한 본훼퍼(Bonhoeffer) 목사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의 절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에 왜 김일성 독재정권이 수립되어 기독교를 탄압했는가? 의 의문부 모두가, 그런 정신적인 공황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혁명이었다고 주장한 사람은 니콜라스 시라디였다. 그는 ‘운명의 날-유럽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의 저서에서, ‘건전한 의심과 이성(理性)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했으며, 신의 섭리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의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고’했다. 곧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본 것이다.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구가(謳歌)하며 인간의 이성(理性)을 신뢰한 채, 휴메니즘의 기치(旗幟)를 높이 흔든 르네상스(Renaissance)의 구호와 너무 닮았다. 한편 장 자크 룻소는 ‘지진의 피해는 자연을 거슬러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도 ‘지진을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의 응징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3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후, 아니 리스본 대지진 이후, 세계사는 핵(核)무기․미사일을 만들어 놓고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어른거리는 ‘인류의 종말(終末)’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9.11 테러(2001.9.11)의 배후로써 악명 높은 그가 죽었다고 서방 세계가 환호화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요 테러의 대명사인 알카에다의 지도자가 죽고 정의가 승리했으니, 이제 테러와의 전쟁은 끝났을까? 제2의 악독한 빈 라덴이 또 등장하고, 더 참담한 제2의 9.11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도 신을 대치한 인간의 이성을 과연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의 지진은 이성(理性)의 빛에 눈먼 인간의 오만에 자연이 복수를 한 셈이라 한다. 따라서 인류 문명사가 환경의 노예였던 인간을 주인으로 바꾸는 과정이라면, 일본 지진은 이와 같은 문명사의 궤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경고라고 한다. 원자력 안전장치와 높이 쌓아올린 방파제는 모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다. 인류의 오만이 쌓은 바벨탑의 무너짐과 무엇이 다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룻소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처방전을 내놓기도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한다.


중국 쓰촨성(四川省) 대지진(2008.5.12), 아이티 대지진(2010.1.12)을 비롯해서, 최근 부쩍 대지진 발생의 빈도가 높아졌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이렇게 처처(處處)에 지진과 기근(饑饉)과 전염병이 휩쓸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개인의 종말처럼 인류의 종말도 필연적인 사실로 적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 이후에 도래(到來)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굳게 신앙을 지키자고 한다. 지진은 천벌이라거나, 불신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조차 오만이 아닌가? 오히려 겸손하게 자기의 신앙을 돌아보는 성찰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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