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崔參判) 댁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미색인가 하면 연분홍 빛깔로도 보이는 능소화를 최 씨 문중의 명예를 상징하는 꽃으로 묘사하고 있다. 꽃말이 명예․영광이라니까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이렇게 능소화는 양반집에만 피어 있어 ‘양반화’라고도 하는데, 상민(常民) 집에 이 꽃을 심었다간 양반집에 불려 가 곤장을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며칠 전 삼청동공원에 가면서 양반촌이었던 북촌 한옥마을을 지나가는데, 돌담 넘어 늘어진 능소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는 선비들의 기개를 닮았을까, 하루 이틀만 피었다가 초라한 모습 보이지 않고 미련 없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아빠, 왜 우리 집 능소화는 피질 않아?”
“작년에 너무 늘어진 가지를 쳐주었더니 좀 늦겠지. 네 생일날엔 활짝 필 거야. 두고 봐”
다른 곳 능소화는 벌써 만발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궁금했으리라. 해마다 딸내미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났던 꽃이기에 기다려졌겠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5년이 지났는데, 7월이 되면 바로 현관 앞의 능소화가 수양벚꽃처럼 늘어져,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미소(媚笑)를 선사하는 귀여운 꽃이다. 꽃 이름을 몰라 이따금 묻곤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생소한 이름이긴 한다. 능(凌) 자는 ‘능가할 릉’이라, 다른 것과 비교하여 뛰어날 때 쓰는 것이고, 소(霄) 자는 ‘하늘소’ 자이다. 옥편을 펴도 한참 찾아봐야 할 희귀한 글자다. 따라서 소양지간(霄壤之間) 혹은 소양지차(霄壤之差)라 할 때는, 하늘과 땅 사이만큼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말할 때 쓴다.
오늘은 가족 축복새벽기도회다. 손자들도 데리고 오겠다 했는데, 억수로 쏟아질지 모르는 장맛비 때문인지, 미쳐 단잠을 깨지 못했는지 아무 소식이 없어, 딸내미와 세 식구만 참석했다. 오늘따라 목사님의 말씀(이사야 44장)이 참 은혜로웠다. 가족들 생일 축하 예배 때는 나도 어김없이 이 말씀을 인용하곤 했지. 오늘도 그럴 예정이었는데, 목사님께서 미리 말씀을 한 것이다.
“얘, 네 생일이니 너도 안수기도 안 받을래?”
예배를 마치고 옆구리를 쿡 찌르며 넌지시 물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과년한 처녀라 쑥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목사님은 결혼 문제는 살짝 비켜가면서, 현명하게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그도 만족해했다. 돌아오면서 능소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봐라, 네 생일날 필 거라 했지? 축하해 준 거야.”
몇 송이 꺾어다 꽃병에 꽂았다. 화사하다. 이제 능소화는 ‘恩珍花’로 굳혀졌다. 두 오빠들 식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33회 생일 축하 예배를 드렸다. 이사야 44장의 야곱과 이스라엘 대신 고모로 바꾸어, 조카들이 낭독을 했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면서, 능소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옛날 소화라는 이름을 가진 궁녀가 단 한 번의 승은(承恩)을 입고 빈(嬪)이 되었으나, 그 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은 임금이 그리워 기다리다 못해 요절했는데, 그 넋이 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그 하염없는 기다림이 아직도 여전한지, 능소화는 지금도 연방 담 너머를 기웃거린다고 하였다. 그 화려함 뒤에는 그런 애절함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딸내미는 아직도 담 너머를 기웃거리면서, 사랑하는 님이 어디선가 나비처럼 날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느긋하게...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듯이.
능소화는 어사화(御使花)라는 별명도 있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의 화관에는 이 꽃으로 장식하기도 했다니, 딸내미도 능소화로 장식한 너울을 쓰고 혼례를 치를지 모른다. 서양 사람들은 이 꽃을 ‘아침 고요=Morning Calm’라 한다는데, 오늘 새벽기도회 다녀올 때 같이 모두들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을 이 고요한 아침에, 큐피드(Cupid) 신의 화살이 그의 하아트를 맞힐 것이다.
능소화의 학명은 campsis grandiflora라고 하는데, campsis란 ‘굽은 수술’이라는 뜻이란다. 손자들에게 꽃송이를 관찰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암술 하나에 2쌍의 수술이 있는데, 그중 1 쌍은 암술 위에서 다른 1쌍은 아래쪽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암술을 위아래로 감싸고 있다.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4 사람의 신랑감이 그를 향해서 기도하고 있는지 누가 알랴. 중국 생물학자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위쪽 수술에는 꼬마꽃벌이, 아래쪽 수술에는 말벌이 꽃가루를 각각 옮겨간다는데, 일편단심 임금만 그리고 있는 이 꽃을, 두 종류의 총각들이 집적거리고 있지나 않을까?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의례 능소화를 예닐곱 송이 주워온다. 얼룩 한 점 없이 싱싱한 데다가 통꽃 그대로 곱게 떨어져, 아무 나무 잎사귀에 그대로 얹어 놓아도 피어 있는 꽃과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이렇게 열흘 이상 집안을 화사하게 장식하면서, 그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고마운 하늘꽃이여!
지금까지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초조․불안하지 않았던 것 같이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어젯밤 기도회 때 목사님의 말씀처럼,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길어다 돌 항아리 아귀까지 채우는 것은 종들이 하지 않았는가? 그런 연후에 주님께서 최상급 포도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요 2:1〜11) 우리도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중매도 부탁하고 선도 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내년에는 딸내미의 새 가정에서 생일 축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로 예배를 마쳤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