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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壽無疆(만수무강)

아내 팔순기념집

by 최연수

과연 100세 시대가 열린 것인가?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라 읊은 杜甫(두보)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던 모세(시90:10)의 기도가 머쓱해졌겠다.

70에 저승사자가 찾거든 지금 외출 중이라 말하시오.

80에 저승사자가 찾거든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하시오.

90에 저승사자가 찾거든 그렇게 보채지 말라고 말하시오.

100에 저승사자가 찾거든 때를 보고 가겠노라고 말하시오.

발전해가는 이 ‘백새인생 노래’를 노인 암살단이 들으면 이를 갈 게 아닌가?

아내의 양친(아버님 만92세, 어머님 만87세)은 장수하셨으나, 나의 양친(아버님만 50세, 어머님 만 75세)은 단명한 편이셨다. 수명도 DNA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내외는 팔십 고개를 넘었다. 덤으로 산 것은 분명하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기도한대로 나보다 아내가 그 양친처럼 건강하게 장수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거나, 자녀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만 그게 복이지.

산수화(수묵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萬壽無疆(만수무강)을 주제로 더러 그렸다. ‘人壽百年(인수백년) 松樹千年(송수천년) 鶴壽萬年(학수만년)’이라 꼭 썼다. 소나무와 학처럼 천년․만년은 못 살아도 백년은 살고싶은 소망과 기대를 안고, 노인은 손자와 함께 산에 올라 송학을 가리키고 있다. 문득 아내의 얼굴을 눈여겨 본다. 팔순이 되고보니 다 속여도 나이는 못 속인다. 염색 덕분에 머리는 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곧 희끗거린다. 부지런히 화장을 하지만 거미줄치는 주름살을 펼수 없고, 허리․다리가 아프다고 끙끙거린다. 과연 젊음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기도는 꾸준히 해오고 있으나 이 그림 한 점으로 될 리가 없다. 좋아하거나 말거나 팔순을 축하하는 뜻에서 붓을 들었는데, 우선 내 팔 힘이 빠지고, 두 눈이 시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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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위 동서의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똑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기도하는 마음으로 ‘張志碩(장지석) 장로님 만수무강하소서!’ 하고. 이걸 선물로 드렸지만, 20일 만에 학처럼 훌쩍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너무 허무해 머쓱해졌다. 이 그림이 符籍(부적)이나 생명보험 증서․장수 보증서이겠는가? 아내에게도 선물하지만 어쩐지 空手票(공수표)를 한 장 떼어준 느낌이다. 부디 용쓰며 그린 이 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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