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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사랑

아내 팔순기념집

by 최연수

‘해골 곳’이라는 으스스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서있다. 다른 것과는 달리 머리에 가시 冕旒冠(면류관)을 쓰고 말이다. 그리고 녹슨 못이 아직도 박혀 있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瘠薄(척박)한 땅, 이 십자가에 기대어 한 그루 나무가 자라고 있다. 오얏나무다. 素服(소복)처럼 하얀 꽃이 피어있다. 그리고 주검을 찾아다닌다는 까마귀 한 마리 얼씬하지 않은 이 곳 십자가 위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꽁지가 짧은 걸 보니 멧새다. 친구커녕 먹이조차 얻을 수 없는 이 곳에....

뭐라고 재잘거린다. 외로움에 지쳐 흐느끼는 것일까? 배가 고파 울부짖는 것일까? 귀를 기울였다. “주여! 주여!”

눈을 지그시 감고 다만 이 소리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 때마다 오얏꽃 잎이 파르르 떤다. “아멘! 아멘!”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아내는 할아버지 적부터 믿어온 母胎(모태) 신앙이지만, 나는 스믈아홉 살에 믿게 된 꺾꽂이 신앙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두 늦깎이들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십자가만 바라보고 걷기로 팔짱을 끼었다. 걸어온 길은 꽃길․잔디밭만은 아니었다. 자갈 밭이 있었고, 가시나무 떨기가 얽히고설킨 길도 있었다. 겨자씨 만큼의 믿음도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우리 죄를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렸던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같은 십자가를 쳐다보자 했으면서도, 한눈을 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서로 눈을 흘기기도 하고, 곁눈질 하기도 하고...새와 꽃이 서로 다르다고 토라지기도 하였지. 그러나 십자가는 雷聲霹靂(뇌성벽력)에도 끄떡 없이 그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안아주었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둥둥 구름이 떠있다. 그리고 한 구름에는 돼지와 토끼가 멧새와 오얏꽃에게 번쩍 손을 흔들며 있지 않은가? 어디로 가는 건가? 그래 맞다. 하늘나라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한 생활(살전5:16〜18)을 하더니,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가는 게 분명하다. 멧새와 오얏꽃도 이런 소망을 잃지 말자고 서로 다짐한다.

*1935년 乙亥(을해)년생은 돼지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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