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빛나던 눈알.
힘차게 활개치던
새들.
내 벗들.
간다지 어디론지.
짝 지어 날아간다지.
원앙새 되어.
원앙새 되어.
가거라 다들.
다들 가거라 그들 보금자리로.
다들 가면 나는 나는
한 마리 학이 되어,
긴 목을 치키고 서 있으리.
조각달 쳐다보며.
외다리로 서 있으리.
이렇게 서 있으리.
(1964.1.18)
*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
“다른 사람은 못 와도 너만은 꼭 와야 한다. 멋있는 축사가 있어야 한다.”
그가 신신 당부했다. 나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한다는 청첩장(請牒狀)을 받고도 참례는커녕 축전(祝電) 한 통 못 치고 말았으니, 배신(背信)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은 우정(友情)의 귀중함과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예를 들기도 하고, 성경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흉내는 낼 수 없을지라도, 우정을 노래하는 시들이 많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시가 없다. 그만큼 우정의 농도(濃度)가 짙지 못해서인지...하기야 사람이 못나서 친구라고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자그마한 키에 귀공자(貴公子) 같은 용모(容貌)로, 원만(圓滿)하고 유순(柔順)한 성품이다. 겸손(謙遜)하고 의리(義理)가 있었다. 동향(同鄕)이며, 중학시절부터의 학우(學友)였고, 사회에 나와서 고시(考試)의 동지였다. 내가 사직하고 홀로 공부할 때, 산간벽지(山間僻地)까지 찾아와 외로움을 달래주었으며, 계속되는 낙방으로 절망할 때 위로(慰勞)와 격려(激勵)를 해 주었다. 응시원서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곤경(困境)에 빠졌을 때, 수입인지(收入印紙)까지 사 보내었다.
그가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 동안 진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절호(絶好)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교통비조차 없을 정도로 한계상황(限界狀況)이었다. 축사(祝辭)를 써야 할 시간에 시를 썼다. 축시(祝詩)가 아니라 노총각(老總角) 신세타령(身世打令)이요, 나의 고독(孤獨)을 자위(自慰)하는 독백(獨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