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라운 털옷에 감싸여
3월은 아직 쌀쌀한데,
누굴 배웅 하는가
누굴 마중하는가.
망울도 아닌 것이
봉오리도 아닌 것이,
몽실몽실 부푼 것은
무르익은 꿈 때문인가?
향내 솔솔 풍겨
벌 나비 안 부를 바엔
바람이나 불어야
하늘거릴 것을.
개나리처럼
진달래처럼
환히 피지 않는 건
꽃샘바람 때문인가?
꽃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건
잎이 아니라도 싱싱한 건
네 꿈이 무르익어
부푼 탓이려니.
활짝 벌어지지 말고
방긋하지도 말고,
곱디고운 꿈이나마
소복소복 담으려무나.
* ‘멧새는 버들가지에’에서 전재
복직(復職)을 하였다. 청운(靑雲)의 꿈을 접고, 교정(校庭)으로 되돌아왔다. 다시는 분필(粉筆)을 쥐지 않겠다던 결심에 붕대(繃帶)를 감고, 송충(松蟲)이는 솔잎을 먹으랬다고 중얼거리며.
우선 굶지 않고 빚을 갚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망가진 내 몸을 추스를 수 있고, 가족들 떳떳하게 거느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이는 어느덧 만 28 세. 서른을 코앞에 두었다. 모두들 나에게 노총각 꼬리표를 붙여놓고, 총각당(總角黨) 당수로 불렀다. 학부모(學父母)들과 직장 동료(同僚)들의 중매(仲媒)가 있었으나, 결혼할만한 여건(與件)이 익지 않았다. 모두 사양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버들개지를 좋아했다. 아직 응달에는 눈이 녹지 않았는데, 몽실몽실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겨울눈(冬芽)이 좋았다.
꽃샘 바람에
감기들까봐,
털옷 두툼히 입고
봄 마중 나왔네.
훌훌 벗어버릴까
단추를 풀다가,
흰 털모자 산을 보고
다시 여미네.
(동시 집 ‘집보는 날’에 게재)
같은 제목으로 일찍이 동시(童詩)를 썼는데, 또 이 시를 쓴 것이다. 꽃봉오리도 아닌 것이, 얼마나 소담스런 꿈들이 부풀어 있기에, 건들면 톡톡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설프게 일찍 피어 꽃샘바람을 만나느니, 그대로 있는 편이 신중(愼重)하고 현명(賢明)한 것 같다. 미혼(未婚)과 만혼(晩婚)을 미화(美化)시킨, 자위(自慰)요 자기 변명(辨明)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