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이 좋아 좋아
산에서만 자라왔건만,
멧새는 동산이 좋아
이렇게 날아왔노라.
별보다 아름다운 꽃들.
구름보다 보드라운 잔디.
그래도 멧새는 버들이 좋아라.
꽃보다 풀보다 버들이 좋아라.
꽁지가 짧은 멧새는
이름도 없는 멧새는,
아무 데나 꺾꽂이 되는
버들가지가 좋아라.
동산에 물길을 내고
물가에 버들을 심으리.
멧새는 버들가지에
보금자리를 지으리.
이제 멧새는 파랑새 되어
파랑새 되어 날아오리.
푸른 바람 함께 숨쉬며
푸른 물 함께 마시며.
* ‘멧새는 버들가지’에서 전재
“꼬리를 치는 거야. 붙잡아!”
“여자와 고양이는 사랑해야 따르는 거야.”
그 당시 친구와 동생이 각각 나에게 했던 충고다.
1967년 12월. 이미 서른 고개를 넘어 섰을 때 Y의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함께 영화 ‘初戀’을 보고 차도 마셨다. 이어서 나의 제의로 영화 ‘靑春劇場’을 관람하고,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었다.
나에 대한 연정(戀情)일까? 사랑의 고백(告白)일까? 진실을 탐색(探索)해야 하며, 그 열도(熱度)를 측정(測定)해야 하는가? 학창 시절에 연애편지를 대필(代筆)해주고 ‘연애박사’ 칭호(稱號)까지 받았던 내가 이렇게, 이성(異性) 문제에 관한 한 숙맥불변(菽麥不辨)이었다. 만약 사랑의 고백이라면, 어떻게 반응(反應)․대처(對處)해야 하는지 도무지 난감(難堪)했다. 매일 한 직장에서 만나게 되지만, 사람들의 시선(視線)을 의식, 아무 일이 없는 듯 서로 덤덤하기만 했다.
그는 미모(美貌)는 아니었지만, 그 동안 떠올랐던 여인들 중에서는 가장 나았다. 우선 독실(篤實)한 크리스천이고, 명문 대학을 나온 지성인(知性人)으로서 YWCA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성격도 전형적인 여성상(女性像)이며 근무(勤務)에 충실했다. 나는 조금씩 그의 자기장(磁氣場)에 끌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첫 혼담(婚談)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산추(山隹)는 산에서 날아와 양지(楊枝)에 깃들이고 둥지를 틀고 싶었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의 조건은 다르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해온 내가 아닌가? 연애에 빠질 감상(感傷的)인 소년이 아니고, 결혼해야 할 노총각이라는 잣대로 그를 재어보기 시작했다. ‘분에 넘치지...’ ‘우리 가정에 알맞지 않지...’ ‘몸이 약한 편이지...’ 망설임 속에서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버들가지에서는 새 움이 돋기 시작했다.
해면(海綿)처럼 빨아들이지 못하고, 폭죽(爆竹)처럼 시원스럽게 터뜨리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優柔不斷)함을 그는 이미 간파(看破)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 준비가 아직 안 되었음을 여성 특유의 후각(嗅覺)으로 직감(直感)했을 것이다. 마침내 새봄과 함께 버드나무 가지(楊枝)에서는 꽃이 피고, 멧새(山隹)는 후르르 미련 없이 산으로 되돌아갔다. ‘청춘극장’의 단막극(單幕劇) ‘초연’은 조용히 막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