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멧새 2 18화

밤마다 놓는 무지개 다리

by 최연수

호랑이 자네 장가가는가?

여우 아가씨도 시집간다네.

달빛에도 여우비 내리면

무지개가 뜬다네.



나도 이젠 장가간다네.

무지개 다리를 오작교 삼아,

견우 직녀 되어

밤이면 살짝 만난다네.


까마귀 까치 부를 게 뭐 있나?

나 혼자서 다리를 놓지.

청실 홍실 엮어서

곱게 곱게 놓는다네.


간밤에 선녀가 건넜나보네.

발자국이 나있군 그래.

아무렴 어떻나

건너라고 놓는걸.


자고나면 이내 사라진 다리.

밤이 되면 다시 놓는 다리.

호랑이 여우 신방 꾸미는 날.

난 무지개 다리를 놓는다네.




미혼 시절에는 일기가 다리였다. 이 일기를 통해서 혼자 대화하고, 혼자 왕래도 하며....외나무다리라도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1970년 2월 28일 맞선을 보았다. 오후에도 또 다른 처녀와도 선을 보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에 앞서 별안간 오전에 보게 된 것이다. 이원근 장로(長老)님의 손녀(孫女)다. 부산에 사는데 볼일이 있어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으니, 맞선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승용차(乘用車) 안에서 잠깐 보고, 이튿날 어머니와 함께 냉천동을 방문하여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 날 오후에도 예약한 대로 다른 처녀와도 맞선을 보았다. 이후 두 사람을 두고 저울질 하다가, 일주일 후 세 번 째의 만남에서 0순위(順位)인 영순(永順)양으로 낙점(落點)을 했다. 그 후 3월 8일 중매인들과 합석한 자리에서 실질적으로 약혼(約婚)까지 했다. 맞선 본지 8일만이다.

이후 한 달 동안 밤마다 편지를 썼다. 얼굴도 확실하지 않은 약혼녀에게, 날마다 아롱진 무지개다리를 오작교(烏鵲橋) 삼아 건너갔다 오곤 하였다. 학우(學友)들 연애편지는 대필(代筆)해 보았지만, 이건 청소년(靑少年)들의 감상적(感傷的)인 연애편지가 아니다. 장년(壯年)인 노총각이, 약혼녀인 노처녀(老處女)에게 보낸 정중한 서신(書信)이다.

연애(戀愛)도 아니고, 약혼 기간이 긴 것도 아닌 우리의, 불과(不過) 한 달 후의 결혼을 준비(準備)하는 사전 정지(整地) 작업이다. 피차 이성교제가 없던 풋나기들의 어색함을 덜고, 짧은 시일에 친밀(親密)해지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戰略)인 셈이다.

이 무렵 우리 아파트 앞으로 동작대교(銅雀大橋)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너편 이촌동과 이쪽 동작동에서 커다란 교각(橋脚)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한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상판(上板)이 놓여 연결(連結)이 되면 자유롭게 왕래(往來)하게 될 것이다.

나는 교각도 없는 무지개 다리를 밤마다 놓았다. 회답(回答)이 오거나 말거나 상관(相關)없이.

keyword
이전 17화맞선 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