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2 17화
라이킷 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맞선 본 후

by 최연수 Jan 09. 2025

맞선 본 후로

마주 볼 새가 있었나요.

낯도 익힐 겸

훌쩍 떠났지요.     


창에 입김이 서렸으면

그려보기라도 할 걸.

차가 덜컹거리면

이내 지워지던 얼굴.   

  

멋쩍은 웃음 하나

사람 틈새로 비집고 나올 때야

아가씨로구나 했지요.

몰라본 척 하려다 웃었지요. 

    

느닷없이 팔짱을 끼는 바람에

휘청했지요.

먼저 손이라도 잡아줄 걸

한 발 늦었지요.

                                 

*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




 맞선 본 후 20일만에 부산행 초특급(超特級) 관광열차에 몸을 실었다. 경부선 열차는 처음이었다. 차창 밖으로 전개(展開)되는 새봄의 훈기(薰氣)를 느끼며, 설레는 마음으로 약혼녀의 얼굴을 더듬어 나갔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실루엣(silhouette)처럼 떠오르다가, 덜커덩거리며 열차가 흔들리면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날 알아볼 수 있을까?’

 어느 소설처럼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꽂고 나타날 수도 없고, 어떤 제스쳐(gesture)로 나를 나타낸담... 땅거미가 조용히 내리는 저녁 무렵 도착했다. 부산은 처음이다. 마중 나온 무리들 중에, 학(鶴)처럼 목을 치켜세우고 있는 아가씨! 학수고대(鶴首苦待)란 말이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난 대뜸

 “안녕하셨어요?” 

손을 내밀었다. 서양 사람들 같으면 kiss를 했겠지. 젊은 여인과의 악수(握手)는 처음이었다. 홍당무가 된 얼굴로 얼떨결에 손에 잡힌 그는 우물쭈물 했다. 결혼식 예행(豫行) 연습 겹 팔짱을 끼고 걷자고 넌지시 말을 건냈으나, 그럴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 택시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케익(cake) 한 상자만을 사서 택시를 탔다. 금방 보수동 집에 내렸다. 많은 가족 친척들이 반가이 맞이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10시가 되어 우리 둘은 집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막 돌아서는데, 갑자기 아가씨는 팔을 내 왼 팔 안에 끼어넣는게 아닌가? 내 몸의 중심이 순간(瞬間) 흔들렸다. 대담(大膽)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했던가? 역시 밤이 좋았다. 서투른 보조(步調)를 맞추면서, 그 유명한 국제시장에 들어섰다. 어머니와 언니를 불러내었다. 보석(寶石) 가게에서 결혼 예물(禮物)을 반지를 맞추었다.

이전 16화 구름다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