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절도 없는
호젓한 골짝에,
누굴 건네주려고
홀로 걸쳐 있는가?
곁에 애기똥풀 피어 있다만
설마 애기가 건너갔으랴.
노루오줌 피어있는 걸 보니
아, 노루가 건너갔나보군.
나무꾼 도련님아,
솔가지 한 뭇 떨어뜨리고 가소.
눈 내린 겨울 밤
모닥불이나 쬐게.
산나물 캐는 아가씨야,
고사리 한 줌 놓고 가소.
깊은 밤 출출하면
나물 무침이나 맛보게.
꼿꼿이 서있는 나무들아,
키 자랑만 하지 마소.
이렇게 엎드러져 있어도
아무나 건네주는 다리라네.
혼자 사는 날이 많았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년 간 재수(再修)할 때, 아버지는 직장, 누나는 학업으로 말미암아 광주에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마을가는 일이 잦았다. 홀로 집에 남아 공부하였다. 쓸쓸했다. 학창생활 때도 중2때부터 사범학교(師範學校)를 졸업할 때까지 혼자 자취를 하면서 공부하였다. 서울에서 교직(敎職)에 있으면서 첫 해를 빼고는 또 자취를 하였으니 혼자일 수 밖에. 후에 동생이 와서 둘이 되었지만. 물론 외로웠다. 사직을 하고 집에서 독학(獨學)할 때도, 아버지는 타계하고 어머니는 딸을 잃어 외손자(外孫子)들 양육(養育)하느라고 시골 계셨다. 큰 동생은 군에 입대(入隊)했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자취하였으니, 대화할 사람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다.
더구나 고시 공부를 위해서 은신(隱身)하다 시피했으니, 오히려 사람을 기피(忌避)한 채 대인관계를 넓힐 수 없었다. 그래서 고독(苦毒)했으나 고독(孤獨)은 내 숙명(宿命)이었다.
어렸을 적에, 오솔길을 따라 산속으로 가다보면, 골짜기에서 외나무 다리를 건너게 된다. 깊은 골짜기, 긴 다리는 아니지만 중심을 잡고 조심조심 건너야 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잘도 건넜다. 나뭇짐을 지는 사람, 나물 바구니를 이는 사람...그리고 산토끼나 노루들도 가끔 건넜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문득 외나무다리를 돌아다보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 짐승들이나 뻔질나게 다니면 좋으련만, 껌껌한 밤이나 눈 내린 겨울에는 홀로 있기 마련일 테니, 얼마나 외로울까? 한국 산수화(山水畵)에 흔히 나타나는 외나무다리는 한가(閑暇)롭게 운치(韻致)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걸쳐있는 외나무다리는 다듬어지지 않아 엉성하고, 손질이 되지 않아 보잘 것 없다. 그런데도 누가 걸쳐놓았는지, 쓸모가 있어서 놓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