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화라지에 동그마니
멧새 한 마리.
꽃샘바람이 스칠 때마다
움츠리는 날개.
머루송이 쪼던 그 부리인데
비늘잎 훌훌 못 벗기랴.
부풀은 꽃 꿈이 마냥 귀여워
가슴츠레하는가?
네 노래에 산나리 피고
산딸기 익는데,
이젠 노래마저 잊은 듯
조는 듯 앉아있구나.
멧새야,
소곤거리기라도 하렴.
밤새 보슬비라도 내리면
꽃들이 활짝 필 텐데...
새의 한자(漢字)는 두 가지가 있다. 새조(鳥)는 꼬리가 긴 새이고, 새추(隹)는 꼬리가 짧은 새이다. 높을최(崔)자가 메산(山)과 새추(隹)로 이루어졌으니, 꼬리가 짧은 ‘멧새’이다. 곧 나는 꼬리가 짧은 멧새이다.
매화나무 화라지(긴 가지)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멧새는 퍽 외롭고 쓸쓸하다. 어찌하여 홀로 있는 것일까? 아직 어려서 짝을 찾지 않은 것인가? 뭔가 모자라서 찾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보기 좋게 딱지 맞았거나, 늙어서 이미 짝을 잃은 것인가?
9살 때 작은 천사(天使)로 처음 만난 베아트리체(Beatrice)를, 9년 만에 기혼자(旣婚者)가 되어 우연히 거리에서 재회한 후, 평생 연모(戀慕)했던 단테(Dante)의 신곡(神曲)을 읽고 Platonic한 사랑을 예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화담(徐花潭)과 황진이(黃眞伊)를 떠올리며 정신적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대 초 결혼 문제가 처음 대두(擡頭)했을 때,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앞섰던 것을 자성(自省)했지 않았던가? 그 후 이성(異性) 문제는 보다 신중하고 냉철(冷徹)하며 침착(沈着)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청혼(請婚)과 중매(仲媒)에 둔감(鈍感)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사랑이 그렇게 논리적(論理的)이며 관념적(觀念的)이어야 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시기를 놓치면, 연애건 결혼이건 주가(株價)가 폭락(暴落)할 것은 뻔한데, 저 멧새는 활짝 핀 꽃송이보다, 봉오리를 좋아하나보다. 꽃눈이 스스로 몽실몽실 부풀기만을 기다리며 청승맞게 혼자서 조는 듯 앉아있구나. 밤새 보슬보슬 봄비라도 내리면, 비늘잎 훌훌 벗고 금방 피어버릴 텐데, 때는 이미 늦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