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2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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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by 최연수 Jan 09. 2025

봄이 오면 하던 대로 

또 숲속을 거닐게 되리.

아기자기한 멧새들 이야기에 홀려

하마 길을 잃을지도 모르리.  

   

어느 새는 장가들고 어느 새는 시집가며

누구누구 새는 둥지 지어 세간났다는 소식.

어느 새는 세 쌍둥이 알을 낳고,

누구 새는 맏아들 돌잔치 했다는 소식.

아, 얼마나 흐뭇한 이야기랴.  

   

내 얘기를 좀 들어달라고

새 아씨들 짓궂게 졸라대면,

두 눈을 가슴츠레 감고

또 빙그레 웃어줘야지. 

    

어느 말을 먼저 들어줘야 할지

그저 손을 흔들어 보이며,

멧새들 조잘거리는 숲길을 

나 혼자 거닐게 되리.          




 고시의 응시(應試)⟶낙방(落榜)⟶응시⟶낙방....그리고 입대⟶ 귀향⟶ 입대⟶귀향...이런 악순환(惡循環)으로 방황할 때, 안정된 생활 속에서 친구들은 속속 화촉(華燭)을 밝혔다. 나도 늦어도 29세 까지는 결혼하겠다고 계획했다. 그러나 계획서는 휴지통(休紙桶)에 버려졌다. 결혼은 커녕 가솔(家率)들 먹여 살리는 일조차 힘에 부치고, 내 한 몸 지탱할만한 친구들 결혼 축사(祝辭) 한 마디 할만한 여력(餘力)도 없다. 부러운 마음뿐이었다. 

 체질적(體質的)으로 경제적으로 추위가 싫어, 봄을 기다렸다. 한강 얼음이 풀리기가 바쁘게 산책을 하였다. 잔설(殘雪)을 비집고 나온 새싹들과, 물 오른 나목(裸木)의 가지들에서 새 봄의 숨결 소리를 듣는 뿌듯함!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반갑고 정답기는 산새들이다. 생에 대한 찬미(讚美)와 봄에 대한 환희(歡喜)가 그들에게 있다. 유현(幽玄)한 종교도, 오묘(奧妙)한 철학도, 심오(深奧)한 사상도 없이, 그저 평범한 얘깃거리로 조잘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옛날 시골 사랑방이나 우물가에서 흔히 듣던 이야기들. 한 때 스스로 고고(孤高)한 척, 천박(淺薄)하고 저속(低俗)해 보였던 그런 일상사(日常事), 비루(鄙陋)하고 비천(卑賤)해 보였던 그런 잡담(雜談)들이, 오히려 소박(素朴)하고 친밀(親密)했다. 

 범부(凡夫)로서 평범(平凡)하게 살지도 못한 주제에,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무엇이며, 용인(庸人)으로서 용렬(庸劣)하게 살지도 못한 주제에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또 무엇이란 말인가?  스물 여덟 살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보니, 시집가고 장가가서 아들 낳고 딸 낳으며, 오순도순 사는 저 산새들과 나의 친구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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