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알로고스_투어
(통영 동피랑마을)

with 클레 Paul Klee, 고흐 Van Gogh

by 리얼흐름

KTX를 타고 마산역에 내린 뒤, 시외버스를 갈아타 통영으로 들어왔다. 바닷바람이 살짝 비릿하게 스며드는 오후, 시내버스를 타고 동피랑 입구에 도착하니 바람이 골목 사이를 훑었다.

좁은 계단길을 오르자 파란 벽, 고양이 그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골목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앞, 노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 깊게 파인 눈빛.


고흐: “벽에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은 그 벽을 다시 보게 되죠.”

진우: “그림이 벽을 바꾼다… 네덜란드에서 그린 해바라기도 그런 효과가 있었나요?”
고흐: “사람들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놓았을 뿐입니다.”
진우: “여긴 원래 철거하려던 동네였다더군요.”
고흐: “그림이 집을 구했군요.”


모노톤의 회색 코트를 입은 파울 클레가 천천히 걸어왔다.

클레: “예술은 도시를 채우기도 하고, 사람을 숨 쉬게도 합니다.”
진우: “숨 쉬게 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
클레: “사람들이 자기 삶을 이야기하게 하는 거죠.”
고흐: “그렇다면 이곳은 이미 성공했네요.”
진우: “동네 사람들이 직접 그렸대요. 살기 위해서.”
클레: “그럼 이건 그들의 선언문입니다.”


벽에 그려진 파란 물고기 그림 앞에서 세 사람은 잠시 멈췄다.

고흐: “이 물고기는 바다를 꿈꾸고 있군요.”
클레: “바다는 여기서 몇 걸음만 가면 보이는데 말이죠.”
진우: “벽을 넘어서도 그 바다가 이어져 있다는 걸 알리는 건지도요.”
고흐: “좋은 해석입니다.”
클레: “예술은 해석을 강요하지 않죠. 각자의 바다를 보여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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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으로 내려가는 길, 골목 옆 작은 찻집에서 유자차를 사서 들고 나왔다.

진우: “한 모금하시죠. 통영 유자 향이 참 진합니다.”
고흐: “향이 해를 품고 있군요.”
클레: “겨울바람 속에 달콤함이 스며드는 맛입니다.”
진우: “이 맛도 동네가 만든 예술 같네요.”
: “맞아요. 예술은 입에도 남습니다.”


세 사람은 통영항 방파제에 앉아 충무김밥을 풀었다. 김밥 속의 단무지와 오징어가 바다내음과 어우러졌다.

진우: “예술은 누구 편이어야 할까요?”
고흐: “모두의 편이어야 하죠.”
클레: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아무 편도 못 됩니다.”
진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클레: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겁니다.”
고흐: “그리고 그 목소리를 색으로, 선으로 남기는 거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종이컵이 굴러갔다. 항구 건너편에 조각배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진우: “예술이 권력이 될 수 있나요?”
클레: “됩니다. 하지만 되면 안 됩니다.”
고흐: “권력이 되면 생명을 잃습니다.”
진우: “그럼 예술의 힘은 어디에 있죠?”
고흐: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클레: “그리고 그 시선이 삶을 바꾸게 하죠.”


다시 골목으로 올라가 벽화를 바라봤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진우: “벽은 원래 경계잖아요.”
고흐: “하지만 여긴 통로가 됐습니다.”
클레: “누군가는 여기에 자유를 그렸으니까요.”
진우: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을 붙였겠죠.”
고흐: “또 누군가는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남겼을 겁니다.”
클레: “그 마음이 도시를 다시 그립니다.”


진우는 한참을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고흐와 클레를 뒤로하고 동피랑 마을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골목골목 그림으로 가득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벽의 질감이 아닌 그림의 질감이 느껴졌다.

“벽은 나를 막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거기에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붙이고,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남긴다. 예술은, 그렇게 도시를 다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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