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알로고스_투어
(공주 공산성)

with 한비자

by 리얼흐름

흐린 봄하늘 아래 시외버스가 공주 터미널에 멈췄다.

진우는 버스에서 내려 성곽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었다. 바람은 약간 강했고, 벚꽃 잎이 길 위로 흩날렸다.

돌계단을 오르니 공산성의 성벽이 나타났다.

오래된 성벽 너머로 공주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성벽 위 산책로를 따라 걷다, 진우는 전망이 좋은 벚꽃나무 아래에 앉았다.

배낭에서 꺼낸 주먹밥 도시락의 김향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때, 옆에 앉은 남자가 눈매를 번뜩이며 책 한 권을 손에 쥔 채 말을 걸었다.


한비자: “나라를 움직이는 건 도덕이 아니야. 법과 형벌, 그리고 권위지.”
진우: “… 한비자?”
한비자: “맞네. 오늘은 이상보다 현실의 얘기를 하자고.”

진우: “그래도 국민은 덕으로 다스려야 하지 않나요?”

한비자: “그건 공자님의 이상이지. 현실의 군주는 인간의 악함을 전제로 해야 하지.”
진우: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한비자: “슬픔이 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네. 두려움과 질서만이 나라를 유지시킨다네.”
진우: “그럼 덕은 필요 없나요?”
한비자: “덕은 장식일 뿐이지. 근본은 법과 형벌이다.”


둘은 자리를 옮겨 공산성 정상 부근 벤치에 앉았다.

진우: “지금 시대에도 그런 사고방식이 필요합니까?”

한비자: “인간은 달라지지 않아. 법과 감시가 없는 곳엔 반드시 부패와 혼란이 싹튼다네.”
진우: “하지만 도덕 없는 국가는 공허하지 않나요?”
한비자: “공허한 이상보다 확실한 처벌이 천 명을 살리지.”
진우: “그건 너무 냉정합니다.”
한비자: “냉정함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현실이지.”


진우는 달래듯이 한비자는 훈계하듯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진우: “형벌이 강하면 국민이 위축되지 않나요?”

한비자: “형벌은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경계선을 그어주는 거네.”
진우: “경계선이요?”
한비자: “넘으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아는 사회, 그게 안정된 사회야!.”
진우: “그럼 선한 사람도 필요 없다는 건가요?”
한비자: “선한 사람도 법 안에서 살아야 하지. 오직 법만이 모두를 위한 질서니까.”

공주공산성(한비자)본문.png


바람이 세게 불어 주먹밥 포장지가 흔들렸다. 일제식 주먹밥을 한 참 바라보던 진우는 약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물고, 공주밤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진우: “법만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나요?”
한비자: “법과 형벌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자가 사는 거라네.”
진우: “그게 차갑게 느껴집니다.”
한비자: “차가움이 차라리 낫네. 따뜻함만으로는 국가가 무너지기 마련이네.”


진우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우: “그럼 법가는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비자: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 본성은 같지. 부패를 막는 건 감시와 처벌뿐이네.”
진우: “그래도 시민의식이 발전하면 다르지 않을까요?”
한비자: “시민의식이 발전했다면, 법을 지키는 게 자연스러워진 거지. 법이 필요 없어진 게 아니네.”
진우: “결국 법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군요.”
한비자: “법 없는 나라는 지도 없는 배와 같은 뿐이지!”


둘은 한참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비자는 책을 읽고 있었고 진우는 한비자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한비자는 책을 덮고 성곽 아래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한비자: “기억하게. 국가는 오래된 이상보다 냉정한 법과 책임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진우: “오늘 들은 말,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한비자: “기억만 하지 말고, 사회를 볼 때 쓰게.”

그는 성벽 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그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


주변환경에 개의치 않고 단호한 걸음걸이로 공산성을 내려가는 한비자가 작은 점으로 사라지는 광경이 영화의 페이드아웃 같았다. 가방 속에서 노트를 주섬주섬 꺼냈다.

'공주, 공산성. 시외버스를 타고 온 길, 바람이 강하게 불어 벚꽃 잎이 성벽 위를 스쳤다. 주먹밥의 고소함, 약과의 달콤함, 밤막걸리의 은은한 향이 대화 속에 스며들었다. 한비자는 법과 형벌을 국가의 뼈대라 했다. 처음엔 차갑게 들렸지만, 어쩌면 그것만이 인간의 어두움을 견디는 유일한 질서일지도 모른다. 따뜻함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 국가라면,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길 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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