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 시간은 흐르는가, 구성되는가

제9장 - 시간은 흐르는가, 구성되는가

by 리얼흐름

카페에는 시계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고,

진우는 앞으로도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커피가 식는 속도,

음악이 끝나는 길이,

누군가 한숨을 쉬는 간격 같은 것들로

‘시간’을 잴 수 있었다.


먼저 문을 연 이는 베르그송이었다.

검은 셔츠에 코듀로이 재킷을 입었고,

왼손엔 오래된 손목시계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계는 멈춰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그는 말했다.

“흐른다고 믿는 건 착각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지속’이죠.

수치가 아닌, 감각입니다.”


진우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말하는 ‘1분, 1시간’ 같은 건 뭐죠?”


“측정 가능한 건 공간입니다,”

베르그송은 미소 지었다.

“시간은 측정하려는 순간 공간으로 바뀝니다.”


곧이어 두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아우구스티누스.

어깨를 덮는 로브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앉자마자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사라집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기억하고 기대할 뿐입니다.”


베르그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철학자이자 시인이군요.”


그 순간, 세 번째 손님이 문을 열었다.

마르틴 하이데거.

회색 외투와 진한 푸른 목도리.

그는 늦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은 존재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시간 위를 걷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입니다.”


카페디9베르그송,아우구스티누스,하이데거.png


라빈이 물었다.

“그럼 시간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건가요?”


하이데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시간은 우리가 죽음을 향해

사유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틀,

그게 시간입니다.”


진우가 천천히 물었다.

“그럼 우리가 느끼는

‘흘러가는 느낌’은 착각인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무겁게 입을 떼며 말했다.

“그건 마음이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기억은 과거를, 기대는 미래를 불러오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현재를 구성하죠.”


베르그송은 확신이 있는 목소리로

“시간은 직선이 아닙니다.

그건 멜로디처럼 이어지지만

자르거나 되감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하이데거는 단호하게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만,

진짜 ‘지금’을 인식합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시간을 삶으로 만듭니다.”


하이데거의 단호함에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한 참을 생각하던 라빈은

무언가를 말하는 대신 조용히 음악을 껐다.

마침 음반의 마지막 곡이 끝난 순간이었다.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구성되지도 않는다.

내가 흐르며, 나를 구성하는 것의 일부가 시간일 뿐이다.'

그러곤 한참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노트의 시간도 다 되어가는 것 같았다.

서랍 속의 새 노트를 꺼냈다.

새 노트의 뻣뻣함이 하루의 마지막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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