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7월 : 쿠르스크 전투

프로호로포카의 대 전차전

by 전략 문학

(이 글은 '대체역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주세요)

Chapter 1 July 1943. Battle of Kursk  Clash at Prokhorovka cover.png

[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3년의 장

제1장. 쿠르스크 전투 : 프로호로포카의 대 전차전


프롤로그 : 늑대소굴과 자포리제

‘1943.7. 우크라이나, 자포리제, 남부집단군 사령부.

만슈타인 원수가 수화기를 잡고 말을 이어갔다.

‘총통. 현재까지의 전선 돌파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돌파의 선봉에 선 부대는 최소한이나마

정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초기의 돌파구를 확장하고, 전과를 확대하려면 반드시 기갑예비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예비대의 투입을 허가해주십시오.’

수화기 반대편의 상대의 목소리는 흥분한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내가 그때 치타델레 작전을 밀어붙이자고 한 거였지 않나?!

이제 와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걸 알아챘군.’

만슈타인은 눈을 감았다.

‘예. 총통 각하의 통찰이 다시금 증명되었습니다.’

히틀러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예전에도 그랬었지. 폴란드도, 프랑스도 그랬지 않나? 그런데도 당신들은 항상 늦는다, 항상!’
‘예, 총통. 총통 각하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기갑예비대의 투입을 허가해주십시오.’

‘...좋다. 당신 방식대로 해보라. 실패하면 누구 탓인지 알겠지.’

만슈타인은 다시 눈을 떳다.

‘감사합니다. 총통. 성과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리고, 만슈타인이 지시했다.

‘벨고로드로 이동 중인 AKO 기갑집단에 즉시 연락하라.

기동 위치는 프로호로포카. 전개 목적은 곧 투입될 소련 예비 기갑군—즉 보로네즈 전선군과 스텝 전선군의 기갑예비를 결정적인 전장으로 유인, 격멸하여 차후 오보얀으로 진격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덧붙였다.

‘소련군은 회랑으로 유도될 것이다. 전차를 그 회랑에 묻을 준비를 하라.’

무전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야흐로, 결전이 시도되려는 순간이었다.

‘전과는 당신의 선견지명 덕이요, 실패는 우리 무능 때문이라... 그 연극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가.’

만슈타인은 조용히 속으로 되내였다.

phase 0.png

본편 : 붉은 망치, 검은 모루

‘부대는 즉각 프로호로포카로 이동하라. 고지대와 개활지를 선점하라.

항공정찰사진에서 확인한 대전차호와 회랑은 반드시 점거하라.’
바이어라인이 무선으로 지시했다.

‘통로도 깔끔하게 표시되었고, 하늘도 깨끗합니다. 심지어는 잔적이나 패잔병도 없군요. 금방 가겠습니다.’

네링은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AKO 기갑집단은 프로호로포카에 도착하였고, 대전차호와 회랑을 점거하였다.

그들은 대전차호와 회랑을 점거하고, 위장과 사거리표 작성, 예비포탄 준비에 착수했다.

전투준비가 마무리될 때 즈음, 정찰보고가 접수되었다.

‘소련 전차 접근 중! 최소한 200대 이상! 계속 이어집니다!’

얼마 전, 오보얀 남부, 제5근위전차군 본부.

'로트미스토프 동무,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지.'

'...예, 스탈린 동지. 영광입니다.'

‘그대가 이끌어온 제5근위전차군, 아니, 거기 더해 제1근위전차군. 그대 손에 맡기지.

자네가 책임지게. 물론, 잘 할 수 있겠지.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모든 예비 병력을 말씀이십니까...?'

'모두다. 승리하라. 그리고 직접 전화하게. 내가 먼저 승리 소식을 들어야 하네.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래야 내가 잘 자지. 안 그런가?’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승리의 영광을. 소비에트 연방 붉은 군대 전차군의 영웅,

쿠르스크의 영웅, 파벨 로트미스트 소장.'

'예, 스탈린 동지. 영광을.'

전화는 끊혔다.

참모들은 침묵했다. 몇몇은 눈을 피했고, 몇몇은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가장 당황한 이는 따로 있었다.

로트미스토프, 그 자신이었다.

지휘체계 조정은? 공세 목표는? 철수 예상 시기는?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제엔-답이 없다.

phase 1.png

5일 뒤, 다시 프로호로포카.

'적 전차! T-34! 거리 1600... 아니 1400.. 아니, 그냥 1000부터 2000까지 다 전차다!'

'지표면 굴곡, 1600. 포신 편차, 1400. 너는 1600, 나는 1400. 내가 먼저 발사.'

발사음.

포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전방의 소련 전차 한 대가 꺾였다.

'좌로 훑자. 속도는 동일. 표적은 줄어들지 않는다.'

중전차 소대장이 말했다. 감정은 없었다.

적 전차들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었다.

표적이었고, 사거리였고, 궤적이었고, 파괴되어야 할 수치였다.

그는 조준하지 않았다. 조준기는 이미 그를 대신해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오늘로 4일째였다.

티거 중전차 소대는 포탄 보급 외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탑재된 조준기를 통해, 동일한 각도로, 동일한 파괴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차호 안에서 그는 숨 쉬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으로서의 호흡인지,

엔진의 공회전인지,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 벨고로드 인근의 AKO 기갑군 사령부.

'미친건가? 상식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군.'

바이어라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적이 미쳤다면 좋은거죠. 이건 미쳤다기보다, 그냥 이성을 잃은 겁니다.'

네링은 미소를 띤 채 보고서를 넘겼다.

'4일... 700대. 하하, 정정하죠. 미친 게 맞습니다. 4일 동안 전차들이 대전차포마냥 주저앉아

포만 쐈습니다. 하지만 탄약이나 전투지원장비 보급은 한계. 주포 탄약 소진율 82%,

기관총탄은 어제 전부 소진. 슬슬 적들이 철수해주었으면 합니다만...

몇 백 대만 더 오면 깔려죽겠습니다.‘
그의 미소는 여전했지만, 표정은 굳어있었고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적들이지. 하지만 곧 한계일거다. 최초의 열의가 초조함으로 변한지 오래니까.’

바이어라인의 음성은 낮았고, 표정은 예나 지금이나 차가웠다.


비슷한 시간, 오보얀 북부.

로트미스토프는 대충 걸터앉은 채 한 장의 작전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러나 눈은 더 이상 문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차, 810대, 완전손실. 손실. 손실.

.....손실.

그 숫자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누구의 탓인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사령관 동무, 카투코프 중장께서 오셨습니다.'

당번병이 떨면서 이야기했다. 그는 양방향에서 압박을 느끼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이야기 좀 하지, 로트미스토프 소장.'

문이 벌컥 열리고, 1근위전차군 사령관 카투코프 중장이 들어왔다.

'…수백 대의 전차가 불탔소. 그중 절반은 명령을 듣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졌지.'

'예.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로트미스토프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라고? 그게 전부인가? 전차 800대!'

카투코프가 고함쳤다. 로트미스토프의 부관은 당번병을 조용히 내보냈다.

그리고 문이 다시 닫혔다.

'제5근위전차군 전멸! 제1근위전차군 가용 전차 150대! 전투 돌입 직전 전차 1000대!

뭐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설명하라!'

'카투코프 중장님. 제가 설명하는게 아니라 입을 맞춰야죠.'

로트미스토프는 덤덤했다.

'입을 맞추자고? 그거야말로 미친 소리야. 정치장교, NKVD... 지금 당장 자네가 체포되어도 할 말 없어.'

'이대로라면 어차피 체포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공격명령을 내렸습니까?’

'자네가, 자네가! 스탈린 동무의 전화를 받고...! 아....'

카투코프는 입을 열려다 말았다. 입을 맞춘다는 말이, 입을 닫게 만들었다.

'네. 입을 맞춘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프로호로포카 탈환 실패. 하지만 파시스트 전차

약 600대 파괴. 그 중 중전차가 100. 적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음. 이해하시겠습니까?'

'아니... 아니.. 그래도, 그건... 아, 그래. 실제 전과는 어떻소?'

카투코프는 600이라는 숫자에서 희망을 가졌다.

'저도 동무와 같습니다. 보고받은 것이 없습니다.'

로트미스토프의 말은 단두대처럼 낙하했다.

침묵.

'그래... 그렇게 하자... 또 모르지, 우리 애들이 생각보다 더 잘 싸워줬을 수도 있고,

독일놈들이 주저앉아준다면... 그가 믿을지도... 아니... 우리 애들 정말로 잘 싸운 걸지도 모르지 않소…”

카투코프가 고개를 떨궜다.

'믿겠죠. 믿지않으면 어쩝니까? 그의 책임도 큰 것을.'

phase 2.png


분석 : 고철 더미 위에 선 강철

1. 작전 구상과 배치

독일군은 남부전선의 주도권 회복을 위해, 전략예비로 편성되어 있던 AKO 기갑집단을

벨고로드–프로호로프카 축선에 전개시켰다. 작전의 목적은 쿠르스크 전투의 남부지역에서 이미 돌파된

소련군 방어선을 넘어서 기갑부대를 투입하여 소련군의 전략예비를 유인, 방어전으로 소멸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AKO는 제3기갑군단(15기갑사단 중심), 제24기갑군단(21기갑사단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전차대대(s.Pz.Abt.503), 중구축전차대대(s.Pz.Jäg.Abt.654)는 기갑군 직할로 배속되어 운용되었다.

포병은 독립 운용이 아닌 포병집중운용(H.Arko) 체계에 따라 통제되었고,

전방 화력대신 고지대 및 회랑 후방에서 일괄 사격을 집중시키는 방식이 적용되었다.

소련군은 보로네즈 전선군과 스텝 전선군 예하 전략예비로 제5근위전차군 및 제1근위전차군을 편성하였다. 이들 부대는 쿠르스크 지역 남부에 형성된 돌파구의 차단을 위해 전장에 투입되었으며, 작전통제는 명목상

제5근위전차군이 담당하였다. 제5근위전차군은 오보얀에서 프로호로포카로 남진했고, 제1근위전차군은

동측 측면에서 후속 투입되었다.

총 1,000대 이상의 전차가 동원되었으며, 제18·29기갑군단과 제6기계화군단 등이 선봉을 담당하였다.

2. 교전 양상

공세는 1943년 7월 11일, 소련군이 프로호로프카 남방 회랑을 따라 다축 기갑공세를 개시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휘체계의 혼선과 통신 미비로 인해 부대는 순차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었고,

이는 전면적인 돌파가 아닌 고립된 단위별 교전으로 전개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독일군 AKO는 회랑 상부의 고지대와 대전차 회랑을 선점한 채, 사격통제선을 구축하고

방어태세를 완비하였다.

중전차 및 구축전차대대는 고정 사격 진지에 선제 배치되어, 교전 이전부터 명확한 사격각과 포착선을

확보하고 있었다.

소련 전차군단은 좁은 회랑을 따라 병렬 진입을 시도했으나,

집중 화력과 포격으로 각 기갑단위가 분산되었고, 돌파력은 개별 전투 단위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특히 근위전차군의 돌파 실패는, 공세 이전부터 통합 지휘와 화력조율이 부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3. BDA(Battle Damage Assessment) 요약

BDA 한글.png

※ 소련군은 단기간의 돌파를 위해 전략예비를 소모했지만, 전술적·작전적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독일군은 방어선과 전력의 대부분을 보존한 채 차후작전 여지를 확보하였다.

4. 작전적 효과 : 기갑예비의 상실과 전선 주도권의 전환

소련군은 전선 돌파를 목표로 전략 기동 예비를 투입하였으나,

해당 전투력은 지휘 단위별로 분할되어 축차적으로 소모되었고,

조직적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제5근위전차군은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제1근위전차군은 기능적으로 보조 전력으로 전락하였다.

그 결과, 쿠르스크 돌출부뿐만 아니라 남부전선 전체에서

소련군의 기계화 예비는 작전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갈되었다.

반면, 독일군은 지속적인 작전 유지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작전 수준에서 주도권을 회복하고 후속 작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였다.

이는 전술적 방어를 통한 작전적 승리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5. 전략적 의미 – 소련군의 전차 집중운용 붕괴와 기동전의 퇴조

프로호로프카에서의 소련군 손실은 단순한 병력·장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전투는, 소련군이 ‘전차를 집중할 권리’를 잃은 순간이었다.

전차는 일정 수 남아 있었지만, 전차군 편제를 재구성할 수단이 소멸되었으며

중앙 집중적 기갑 운용 능력은 장기간 정지되었다.

스타브카는 기계화 예비를 타 전선군에서 차출하거나

소규모 단위로 분산 편제해야 했으며,

이는 이후 작전의 일정 지연과 전략적 지체로 연결되었다.

결과적으로 프로호로프카는 전차의 수량이 아닌 전차 운용 철학의 붕괴를 보여준 전장이었다.

이 전투는 ‘전술적 방어를 통한 작전적 승리’라는 독일군 성공모델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으며,

소련군은 중앙 집중 기갑 작전의 실행 능력을 상실한 채

전차를 더 이상 돌파 수단이 아닌 보병의 보조 수단으로 운용하게 되었다.


에필로그 : 휴식은 짧다

포격이 멈췄다.

불현듯 찾아온 정적이, 오히려 더 불길했다.

궤도 위에 남은 진흙은 햇볕 아래 서서히 굳어갔고,

야전 주둔지엔 간이 침상이 하나둘 들어섰다.

전투는 끝났다고들 말했다.

정비병은 궤도와 장갑 사이에 낀 파편을 긁어냈고,

탄약병은 탄피를 주워 담으며 남은 재고를 헤아렸다.

보급 차량이 곧 도착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람들은 탄약이나 연료보다 식수 보급을 기다렸다.

지휘관들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다음 명령을, 혹은 아무 명령도 없기를 바랐다.

누군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막았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

그러나 아무도 짐을 싸지 않았고,

총검을 닦는 병사도 없었다.

탄약 상자는 여전히 보급로 위에 남아 있었다.

승리는 있었다. 하지만 종료는 없었다.

그 누구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엔드지크' 소개문 : 전략문학으로 읽는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결말

https://brunch.co.kr/@721d268ebf35471/5/write

'엔드지크' 장 설명

https://brunch.co.kr/@721d268ebf35471/6/write

keyword
이전 02화오프닝 : 동부의 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