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추운 겨울을 바라며
옷장 앞에서 나는 분주해진다. 가을 옷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초겨울에나 입는 경량 패딩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다. 아직 10월인데 날씨가 무섭게 춥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완연한 가을 날씨였는데 이번 주 들어 갑자기 기온이 확 떨어졌다. 가을이 아니라 가을과 겨울 사이 어딘가 '갸울'쯤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아니, 가을이 있었는데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
10월에 맞는 바람 치고는 너무 낯설다. 흡사 이대로 겨울이 올 것만 같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계절의 시간표가 겨울로 바뀌어버리니 추워도 너무 춥다. 이러다 봄, 여름, 겨울, 겨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을의 짧아짐이 못내 아쉬운 것은 기껏 사놓은 가을 옷을 못 입어서만은 아니다. 봄이 여름을 향한 준비를 하는 것처럼, 가을은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가을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그만큼 겨울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려면 가을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동안 가을 단풍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미처 몰랐었다. 자신을 뽐내기에만 바쁜 줄 알았는데 계절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해준 고마운 계절이었던 것이다.
자연의 계절이 바뀌듯 인생의 계절도 바뀌기 마련이다. 한껏 푸르름을 내뿜으며 생기를 움켜쥐었던 젊은 날은 가고 이제는 그 쥐었던 것들을 놓아야 할 때가 다가온다. 나에게도 인생의 가을인 '중년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가을이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듯, 중년의 시간도 다가올 노년을 대비하는 시간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청춘의 꿈과 희망, 자신했던 건강, 소중했던 관계들도 언젠가 반드시 우리를 떠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뤄내는 것'에 익숙했다면 이제는 '잃어가는 것'을 배워가야 한다.
노년이 이별의 시간이라면, 중년은 그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어느 것 하나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헤어짐은 없기에 그것을 앞서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적응해 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을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가을의 시간 덕분에 우리 모두는 겨울의 시간을 준비할 수 있다. 소중한 존재들과의 이별은 아무리 해도 적응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필연이고 숙명이라면 조금씩 받아들이는 방법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덜 춥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인생의 가을은 꼭 필요하다.
Photo by Alex Padurariu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