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작가시점의 소설: 최초 흑인 자화상이 나오기까지의 역사
클림트는 말했다. 아이는 곧 커서 괴물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갈 힘이 있기에 절대로 아이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이는 곧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멋과 행동대로 했다. 그의 이름은 클라라였다.
클라라는 사실 어린 유년 시절부터 교육을 매우 잘 받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으며 역사를 배우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대는 낭만적인 1810년대, 여성의 지위는 한도 끝도 없이 낮았던 시대였다. 그녀는 배우기를 선택하고 싶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당장이라도 끌려갈 듯이 결혼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에 개탄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생존 방법이자 유일한 수단임을 알기에 18살부터 자신을 꾸미기 시작했다. 영국 사교계 시즌에 들어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곧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풍부한 지식과 말솜씨, 그리고 수려한 외모 덕분이었다. 그해에는 결국 구혼자들이 그녀의 집을 계속해서 두들겼고 결국에 그녀는 왕족의 사촌인 아담스와 결혼을 했다.
아담스와 결혼하자마자 그들은 세 명의 아이를 덩달아 낳았다. 케이티, 한나, 그리고 베스였다. 마치 그녀는 자신이 영국의 여왕과 왕들처럼 어질고 착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고귀하고 특이한 이름을 붙였다. 당시 유명하지 않은 이름인지라 아이들은 왕실에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니 어미였던 클라라는 얼마나 독보적이었을까.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소양을 갖추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남편은 그러나 그녀의 화려한 빛으로 인해 자신의 명성이 가려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은 늘 아내와 함께 비교되었고 그 역시 그녀 못지않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뛰어난 재능을 넘지 못했기에 그는 언제나 아내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발간되었다. 그 당시에 그녀의 소설은 너무나 센세이션했고 재미있었으며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니 클라라 역시 읽으면서 동요되었고 자신이 이 위치에 있는데 그런 소설이나 그림 한 작품을 내놓지 않은 것에 대한 회의감에 휩쓸려서 몸져눕게 되었다. 사교계에는 그로 인해 큰 영향이 있었다. 그녀의 옷 스타일이었던 연분홍색에 꽃 장식과 레이스 달린 헤어스타일이 더 이상 이목을 끌지 않게 되었다. 클라라는 그런 사회의 움직임이 희한하게 생각하고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그림 소질은 없었지만 캔버스에 자신의 창틀 밖에 있는 풍경들을 따라서 그리니 금방 늘었다. 그녀의 화려한 사계를 다 그리자 출품하면서 조금씩 사교계에서도 클라라의 작품을 가지려고 서로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때였다. 둘째 딸인 한나가 8살이 되면서 결핵에 걸렸다. 그 결핵은 워낙 심했던지라 방문하는 의사들도 다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라는 아들을 위해 결국 자신의 세계를 펼치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시 어머니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린 그림인 <한나를 위하여>는 지금 21세기가 되어서도 회자되고 있다. 클라라는 강렬한 붓 터치와 미끄러지듯한 선으로 한나의 고통을 승화시키듯이 그림을 그렸으며, 이 그림은 훗날 초현실주의적 풍에 맞물리며 시초가 되었다.
클림트는 그런 클라라를 보면서 어머니로서의 자질을 보고 안심했다. 클라라가 결국 자신의 세계를 버린 것에 대해서 흡족해했고, 결국에는 왕족과 결혼하여 호화로운 삶을 이어나가 부와 명예를 집안에 떠넘겨줬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핸리가 결국 20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자 상실감에 빠져 클라라는 결국 남편인 아담스와 관계가 소홀해지고 방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방탕함은 소문이 들썩거릴 정도로 소식지에 안 나오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오늘의 호외요!” 하면서 들었던 소식지를 보면 온통 클라라의 불륜을 했으며 정외자도 낳았다는 추측이 계속해서 나오며, 심지어 흑인 노예 신분이었던 사람과도 사랑을 나눴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자 결국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파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케이티와 베스는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런던의 사교 모임이나 거대한 성에서 살 권리가 있었으나, 클라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클라라는 결국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혼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법정에서는 그녀의 파혼 선고를 인정했으며 귀족의 신분을 박탈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였던 클림트 역시 딸을 거두지 않았다.
클라라는 그때부터 매춘으로 얻은 돈으로 그림과 글을 다작하기 시작했다. 글은 제인 오스틴의 문체를 많이 닮아간 소설을 집필했으며, 서민들 사이에서는 꽤나 명성이 자자했다. 그녀의 글은 사실적이고 거리낌 없었으며, 더러운 말들로 가득했기에 더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 작품을 계속 연재하게 되자 그녀가 얻은 것은 자신의 세계였다. 미지의 세계를 다 탐험하게 된 클라라였다. 왕족이었다가 매춘부까지 내려갔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비록 어머니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성숙하게 잘 자라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매춘하면서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낳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총 6명이었다. 그리고 모두 어머니를 닮아 외모가 출중했다.
그 아이들 중 흑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 아이를 앨리엇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앨리엇은 어머니의 솜씨를 유일하게 받은 핏줄이었다. 앨리엇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 옆에서 모든 그림을 섭렵했다. 그리고 에드가 드가의 발레 그림들을 보면서 수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흑인 최초의 자화상으로 여겨지는 <앨리엇의 자화상>은 지금도 현대사에서도 귀중히 여겨져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내용은 소설입니다. 논픽션이기 때문에 재미나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