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우울

by 후드 입은 코끼리

늘어나면 좋은 것들이 몇몇 가지 있다. 한 예로 돈, 명예, 사랑, 긍정적인 에너지 등 그렇게 있는 것 같다.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집평수가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팬층과 늘어나는 사랑을 받은 사람일수록 우울의 정도가 적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마음의 바다는 알 수가 없는 법. 공감이 될지 모르겠지만 연예인들의 우울감에 대해서 언제나 나는 고민이 된다. 이 사회에 대중들 앞에서 서커스를 하는 그들에게 부와 명예는 충분히 받는다. 하지만 그 사생활과 그 자신 안에 파괴되는 시계를 가지고 사는 듯 싶다.


나는 설리때로 돌아가고 싶다. 설리가 살아있을 적이 그립다. 설리의 자유분방함이 너무 좋았고 내 친구의 친구라는 점에서 조금의 친분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돌연 사망소식. 그녀의 자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리고 아름다웠던 아리따운 한 딸기가 갑자기 꺾이고 말았다. 나는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애도가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 감시받고 노브라라는 이유로 여성성을 짓밟혔던 적이 너무 어린 아이에게 가혹했다.


그 죽음이 2019년이었던가? 구하라도 이젠 세상에 없다. 그리고 또 이선균도, 우리 곁을 자살로 마무리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다 죽어야만 이 사건사고들이 덮이는 것인가? 왜 이리 많은 분노가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항상 의문이었다. 그냥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마음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누구를 집중 공격을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우울은 우리 인간의 내면에 가장 악에 바친 감정 같다. 그 우울이 나를 집어 삼킨다면 분노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는 사회가 너무 우울하다고 본다. 그 우울한 정도의 척도가 가십거리에서 나타나고 사람들의 댓글창에 나오는 욕설로 가득 매우는 걸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그들의 생각이 다 악에 바친 우울로 덮여 있는 것일까?


지금 말하면 나는 욕을 먹겠지만 김수현 사건도 그렇게 보인다. 물론 미성년자와 사귀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법의 심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기에 고인을 들먹이면서 계속 추락하는 그의 이미지를 볼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람 자체가 걱정된다. 한 순간에 10년 이상 이어왔던 커리어가 이렇게 추락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잘못을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아서 죽어 마땅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친구랑 대화 한 적이 있다.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어찌보면 한국인들의 우울감과 분노가 표출되는 유일한 통로여서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는 테라피 즉 심리상담을 자주 받고 많이들 받는다. 그걸로 조금씩 사람들의 사회적 분노를 억제하고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나는 우리 사회도 밀집되어있는만큼 쌓여가는 분노를 풀 방법을 이렇게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대화를 하고, 순환하고, 인정이 많은 사회로 변모해야 우울이 줄어들어 한 개개인이 살아가면서 우울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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