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수영장 앞에서

by 후드 입은 코끼리


며칠 전 친구가 잠원에 있는 한강공원 수영장에 가자고 했다. 요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라 내가 과연 갈 힘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쉼에는 놀이가 곁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실마리 없는 개미 목소리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날짜는 다가오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에는 뚱뚱한 내 모습을 마주하기 싫어 집 안 어딘가에 있던 수영복을 꺼내 입어 보았다. 서너 번이나 입고 벗기를 반복할수록 내 몸에 대한 혐오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수영장에 가는 날이 되자, 이젠 뚱뚱한 몸이고 뭐고 그냥 시원한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밥을 간단히 먹고 잠원 앞 한강 둔치에 주차한 뒤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뛰는 사람, 테니스를 치는 사람, 그리고 운동하고 싶지만 체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 나까지. 부끄러움을 삼키며 걸어가니, 심장은 펄떡거리며 조여 오고 약간의 어지러움과 긴장감이 뒤섞였다.

그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앞이 시커멓게 변하며 두통이 조여 왔고, 인파 때문인지 매스꺼움까지 몰려왔다. 결국 선베드에 누워 있다가 수영을 하겠다고 친구에게 전했다.

수영장 안에는 다양한 몸매의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거리낌 없이 행복해 보였다.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는 사람, 가족끼리 추억을 남기는 사람, 연인과 애정을 나누는 사람. 나는 파란색 바디타올을 두르고 물가에 앉아 노을과 남산타워를 바라보았다. 우선은 그것을 즐기기로 했다.

물에 들어가기 싫은 이유도 다양했다. 누군가 오줌을 쌌을 수도 있고, 샤워하지 않은 채 들어온 땀범벅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강박이 몰려왔다. 공영 수영장이니 수질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오히려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커플들이 행복하게 껴안고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궁금해졌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몇 번의 연애 끝에 달련된 걸까, 내가 느낀 사랑과 비슷한 걸까. 애정 행각이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과시적인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한가운데서 사회자처럼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과 온 엄마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꺄르르 웃으며 노는데, 엄마는 사진 찍어주느라 더 바빴다. 육아는 이렇게 연장이 되는구나 싶으면서도, 동시에 이렇게라도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친구들끼리 온 무리도 있었다. 신나게 공놀이를 하며 정말 인생을 즐기는 듯 보였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인생은 길고 얽힌 실 같다.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비슷한 군상으로 보이고, 디테일은 다르지만 거시적으로는 모두 비슷한 실타래를 끌어안고 산다. 결국 굴곡진 인생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우리의 숙제 아닐까, 수영장 밖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구경만 하느라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하루를 충만하게 살라고 했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요즘 내 인생을 점수로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마이너스 40점쯤. 5점만 되어도 좋을 텐데. 그래도 마이너스에서 시작했으니 이제는 올라갈 길만 남았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인생의 실이 풀어질 것이다.

아홉수가 이렇게 혹독한 걸까? 아니, 사실 내가 과민반응하는 걸 수도 있다. 인생은 내가 모르는 드라마처럼 훨씬 더 혹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메모장처럼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 메모장이 날아가 버릴까, 나는 여전히 묻는다. 인생이란...

혹시 이 글을 일기처럼 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수필·산문 같은 완결된 문장으로 더 다듬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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